[박석준의 육아父담] 착한 거짓말

15:51

딸아이가 느닷없는 고백을 했다. “아빠, 숨바꼭질할 때 일부러 못 찾는 척하는 거 알고 있어.” 도대체 이게 뭔 소린가. 내가 놀아주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애들이 나랑 놀아줬단 말 아닌가. 밀려오는 배신감과 허무함, 충격이 작지 않다. 정신을 차리고 언제부터 알았냐고 물으니 꽤 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 오랜 시간 동안 생쑈를 했단 말인가? 왜 그러면 말을 안 했냐고 또 물으니 동생과 같이 노는데 분위기 망칠까 봐 그랬다고 한다. 이건 동생에 대한 배려일까, 아빠에 대한 배려일까, 아니면 더 놀고 싶은 자신을 위한 배려일까. 완전 티 안 나게 연기한다고 생각했는데, 기가 막히게 못 찾는 척한다고 생각했는데. 벌써 들통난 나의 거짓 연기는 아이의 거짓말에 그동안 포장되었던 것이다.

이건 약과에 불과하다. 어느 날 야바위(?) 같은 걸 하자고 하더니 종이 뒷면에 ○ 표시를 찾아보라 한다. 한 장을 넘기니 X가 나온다. 또 한 장을 넘기니 또 X가 나온다. 설마 하며 “이거 다 X 아니야?” 하고 마지막 한 장을 넘기니 또 X다. 없는 걸 찾으라니. 정말 야바위다. 자기도 머쓱한지 씨익 웃는다. 이건 거짓말일까? 사기일까? 정말 세상에 믿을 사람 하나도 없다.

아이는 커갈수록 점점 거짓말이 늘기 시작했고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거짓말을 했다. 거짓말을 하면 코가 길어지는 피노키오, 거짓말을 하면 잡아가는 경찰아저씨는 이제는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손 씻었냐 물어보면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씻었다고 한다. 정색하고 다시 물어보면 속일 수 있었는데 아깝다는 표정으로 화장실로 향한다.

핸드폰을 볼 때도 마찬가지다. 분명 보는 것까지만 보고 그만 보기로 했는데 모르는 척 계속 보고 있다. 그만 보기로 했는데 왜 새로운 걸 보냐고 물으면 보던 걸 계속 보는 중이라고 우긴다. 물건을 엎지르거나 망가뜨리면 어두운 낯빛으로 동생이 그랬다고 잡아떼기도 한다. 표정은 ‘내가 그랬어’라고 빤히 쓰여 있는데 말이다. 나 어릴 적 그랬던 것처럼 엄마아빠에게 혼나는 게 그렇게 무섭나 보다.

▲[사진=http://magichanja.com]

하긴 나도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한다. 밥 먹을 때마다 한 숟가락만 더 먹자 하지만 그놈의 한 숟가락은 먹어도, 먹어도 줄지 않는다. 말을 잘 들으면 장난감이나 과자를 사주겠다는 말도 사실은 그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꼼수에 불과하다. 그리고 최강의 거짓말 ‘있다가’ 신공이 있다. “밥 먹고 있다가 놀아줄게.”, “목욕하고 있다가 책 읽어 줄게.” “이 닦고 있다가 방에 가서 해줄게.”, 뭐든지 ‘있다가’만 갖다 붙이면 만사 해결이다.

정 미루다 안 되면 “일찍 자고 아침에 해줄게.” 하며 다음 날까지 미루면 된다. 물론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있다가’는 마찬가지다. 놀아 달라, 책 읽어 달라, 그것도 안 되면 자기들끼리 뭘 하겠다는 아이들의 요청은 항상 ‘있다가’로 밀린다. 가끔 왜 항상 ‘있다가’ 해야 하는지 푸념을 하기도 하지만 상관없다. 그것도 있다가 이야기하면 되니까 말이다.

어느 날 딸아이는 또 다른 고백을 했다. 이번엔 같이 놀아주던 학교 선배, 통칭 삼촌에게 말했다. “우리 엄마는 착한 거짓말을 잘해요. 달리기 시합할 때 항상 져줘요.” 그 삼촌은 진지하게 답했다. “아니야. 진짜 이긴 것일 수도 있어. 엄마는 달리기 진짜 못하거든.” 사실 일리 있는 이야기다. 이렇든 저렇든 간에 아이는 엄마가 달리기를 지는 것을 자신을 위한 배려, 즉 ‘착한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아마 내가 보드게임 할 때 일부러 져주는 것도 알고 있을 것이다. 어차피 져주지 않으면 끝나지 않을 게임, 적당히 겨루다 져주는 것이 속 편하다. 가끔 승부욕에 불타 진짜로 게임을 하다 얼굴이 울그락 불그락, 눈물도 글썽글썽하는 아이를 보면 한번 이겨보겠다고 열 내고 있는 내가 그렇게 못나 보일 수가 없다. 팩트폭행 보다는 착한 거짓말이 가정의 평화, 아이의 동심을 위해서 훨씬 현명한 일이다.

이제 크리스마스다. 또 어쩔 수 없이 착한 거짓말을 준비한다. 엄마아빠 말을 안 들어서 올해는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 안 주실 것 같다고 엄포를 놨다. 하지만 크게 믿지 않는 눈치다. 오히려 산타 할아버지에게 어떤 선물을 받고 싶다고 공공연히 말하고 다니는 것을 보니 산타의 진실을 알고 있음이 분명하다.

의심의 눈초리로 산타 할아버지 있냐고 물으면 외국에는 있다는 모호한 답으로 선물을 받을 여지는 계속 남겨둔다. 산타 할아버지의 선물과 아빠엄마의 선물로 장난감 세트까지 딱 맞췄다. 평소 갖고 싶다고 사정하던 값비싼 장난감이다. 제대로 한몫 잡을 심산이다. 꼼꼼하고 치밀하다.

아이가 커갈수록 거짓말이든 착한 거짓말이든 잘 통하지 않는다. 속이려 하는 엄마아빠를 생각해 그냥 속는 척 할 뿐이다. “엄마아빠 왜 거짓말해?” 정색을 하고 묻는 통에 난처한 일도 많아졌다. 그래도 속아주니 거짓말을 계속하게 된다. 그것이 애쓰는 노력이 가상해서 속아주는 척하는 것이라도 상관없다. 기대에 한껏 부풀어 있는 아이를 실망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게 ‘착한 거짓말’은 속아 주는 ‘착한 마음’이 있는 한 계속될 것이다. 이제는 가끔 ‘있다가’ 보다는 ‘그래, 지금’ 하며 목이 빠져라 기다리는 아이들의 애타는 마음도 헤아려 주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