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보는 3대륙 여행, “공정여행과 젠트리피케이션 돌아보기”

[기고] 김상목 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17:59

이번에는 “여행”과 “관광”을 테마로 하는 3편의 영화들을 소개하려 합니다. 물론 새해 초겨울에 따뜻한 남쪽 나라로 떠난다거나 신세계를 찾는 생기발랄한 모험여행 이야기와는 별 관련 없는 이야기들입니다. 여행 열풍 속에서 우리는 각박한 일상을 벗어나는 찰나의 일탈을 꿈꾸고, 그런 레저 열풍 속에서 국가와 지자체는 경제성장과 지역개발의 부푼 꿈을 꿉니다. 하지만 소개해 드릴 작품들은 그런 장밋빛 환상에 가려진 사각을 굳이 끄집어내어 보여주려는 열망의 산물들에 가깝습니다. 그럼 시작합니다.

전통복장을 한 티베트 대가족이 카메라 앞에 섭니다. 자금성 앞에 선 이들은 시골에서 도회지에 처음 나온 우리가 흔히 상상할 수 있는 그런 관광객들로 보입니다. 사진사는 우리들에게도 익숙한 풍경, 요리조리 자리를 잡고 표정을 주문하고 마지막에는 ‘움직이지 마세욧!’ 외치며 단체사진을 촬영합니다. 그런데 촬영을 마치자마자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이번에는 다른 배경으로 찍어봅시다~” 사진사는 뒤에 배경으로 놔뒀던 실크스크린을 교체합니다. <버터램프>는 그렇게 인상적인 출발로 관객을 놀라게 합니다.

자금성에서 출발한 배경은 티베트 주민들의 정신적 지주인 수도 라싸의 포탈라궁전을 지나 베이징 올림픽경기장, 디즈니랜드, 지중해풍의 저택을 경유해 남태평양 해변으로 향합니다.

▲영화 <버터램프>의 한 장면

전통복장을 한 티베트 주민들은 사진사의 소품 지원으로 정장 차림이나 양복으로 갈아입고 좋아합니다. 결혼을 예정한 듯 보이는 커플은 지나던 마을 유지의 오토바이를 빌리고 사진사는 익숙하게 그 오토바이에 꽃 리본을 달아줍니다. 그렇게 10여 분 간 기묘한 촬영현장이 스크린을 응시하는 관객의 눈 앞에 펼쳐집니다. 영화는 특별한 설명이나 입장을 드러내지 않고 담담하게 진풍경을 보여주는데 집중하고, 가족사진을 촬영하기 위해 고정된 카메라의 방향은 자연스레 관객의 시선으로 이어집니다.

마을에서의 촬영 영업이 끝나고 배경이 되었던 실크스크린들은 다음 영업을 위해 조심스레 말아져 차에 실릴 준비를 합니다. 실크스크린이 사라진 마을의 진짜 풍경은 익히 예상하고 작은 충격으로 다가옵니다. 아주 익숙한 개발의 풍경이지요.

그리고 촬영 내내 고집을 피우며 전통의상을 벗지 않던 한 청년이 다가와 사진사 일행에게 포탈라궁에 무언가를 전해달라는 부탁을 남깁니다. 이를 통해 이 짧은 단편다큐는 전통이 파괴되는 개발과 지금 티베트의 현실을 묵직하게 전합니다.1

<버터램프>가 첫 주자로 나서 전통과 개발 간에 벌어지는 파열음, 사진 찍기가 전부가 되어버린 관광문화에 대한 비꼼, 티베트란 지역에 대한 고찰까지 묵직한 직구를 던집니다. 그리고 뒤를 이어 다음 작품 <가이드>가 관객을 맞이합니다.

여행을 통해 흔히 우리는 일상의 번잡함을 벗어나 찰나의 고독을 즐기거나 새로운 길을 찾으려 애씁니다. 이런 기호에 부응하기 위해 볼거리 많고 편의시설 잘 정비된 서구나 일본이 아닌, 일종의 ‘야만’(문명의 대척점)을 경험하고자 오지를 찾아 떠나는 모험여행 또한 유행하고 있지요. “정글의 법칙”이 왜 그렇게 인기를 끄는지만 살펴봐도 충분한 답이 될 것입니다.

▲영화 <가이드>의 한 장면

그러나 이런 유행 속에서 실제 지역 주민들은 이미 문명 세계와 상업적 관광에 길들어 있는데도 안락의자 여행객들은 막연한 백일몽을 꾸는 부작용이 생기기도 합니다. <가이드>는 그런 부조리한 상황을 재연극으로 충실하게 옮깁니다.2

20여 분 동안 <가이드>는 감독 자신이 분한, 여행가이드로 오인받는 프랑스인 청년과 모로코의 사막 마을 주민들 간에 일어나는 의사소통 해프닝과 동상이몽을 보여줍니다. 액션이나 극적 반전은 없지만, 통역 중 불협화음을 통해 서구와 제3세계(혹은 개발도상국) 주민들의 전혀 다른 목적이 드러나고 그 둘은 결코 합일되기 어려울 것을 영화는 계속 암시합니다.

주민들은 철저히 (서구인의 시각과 잣대로 작성될) 여행 가이드에 마을이 소개되어 돈과 사람이 몰려들기를 희망합니다. 하지만 정작 관광객은 가식적이고 상업화된 관광 풍토에 지쳐 좀 더 오지로 찾아가면 뭔가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덧없는 몽상을 품습니다. 그리고 통역을 맡은, 도회지에서 시골 마을로 이주한 주민은 이들 두 집단을 통역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모순에 빠져들기 시작합니다.

토박이 주민들은 서구세계를 경멸하고 터부시하지만 그들의 돈은 필요합니다. 관광객은 의사소통의 한계로 인해 마을 주민들이 가식적으로 보여주는 친절에 혹하지만, 그 과정을 지켜보는 통역자는 시골 주민들이 품는 물질적인 욕망에 지쳐갑니다. 우여곡절 끝에 관광객은 마을을 떠나고 마을 주민들은 관광객들이 몰려들기를 기대하며 어설픈 마을 꾸미기에 나섭니다.

이 작품에서 악의를 가졌거나 누군가를 해하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다만 마을 사람들은 돈이 필요하고 관광객은 치유의 기회를 찾아 떠돌 뿐이지요. 그러나 마을에 돈과 사람이 몰려든다면 프랑스 청년이 희구하던 목가적 삶은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릴 테고, 주인공과 같은 관광객들은 보다 덜 상업화된 산간벽지를 찾아 훌쩍 떠나버릴 것입니다.

모로코의 사막 마을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압축적으로 재현된 <가이드>는 하나의 우화처럼 관객들에게 다양한 생각거리를 던져줍니다.

이제 마무리 타자가 등장합니다.

유럽에 갈 기회가 있다면 이탈리아의 ‘물의 도시’ 베니스(베네치아)는 꼭 가보고 싶은 첫 손에 꼽힐 도시 중 한 곳이 될 것입니다. 곤돌라와 운하로 상징되는 아름다운 미항이자, 중세 암흑기를 뚫고 르네상스를 견인함은 물론, 지중해의 패권을 둘러싸고 수백 년간 대국들에 맞서 생존을 위해 싸웠던 도시국가의 전통으로도 유명한 찬란한 역사의 도시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 베니스의 구도심 인구는 2008년 6만 이하로 떨어진 후 고작 5만 남짓하며 도시 기능은 소멸하는 가운데 거대한 관광테마파크로 존재할 뿐입니다. 물가와 임대료가 천정부지로 오르는 가운데 원주민들은 외곽이나 타지로 떠나고 그 결과 학교나 병원 같은 공공시설이 다시 폐쇄되는 악순환의 연속입니다.

뜻있는 주민들은3베니스에 재앙을 불러오는 상징이 된 초호화 크루즈 유람선에 맞서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지방정부에 공공서비스 유지를 촉구하는 등의 저항을 조직합니다. 갈등은 계속 격렬해집니다. ‘도시’로 살아남기 위한 베니스 주민들의 노력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요?

▲영화 <베니스 내 사랑>의 한 장면.

<베니스 내사랑>은 70분 남짓한 시간 동안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역사도시 베니스의 현주소를 파노라마처럼 조망합니다.

고대 로마제국이 붕괴하던 시절, 고향을 게르만족의 침략에 잃고 바닷가 늪지대로 쫓겨간 이주민들이 나무말뚝을 때려 박아 뭍을 만들고 그 위에 세운 도시인 베니스의 지반은 계속 유지보수를 해줘도 조금씩 가라앉을 만큼 허약하기 짝이 없는데 수천수만의 관광객들이 탄 초거대 크루즈선의 잦은 정박은 악영향을 준다는 경고는, 작품의 대미를 장식하는 유람선 저지 퍼포먼스에서 ‘지역’과 ‘관광’이 정면충돌하는 극적인 스펙터클로 보는 이들의 시선을 이끕니다.

적극적으로 맞서 저항하는 주민들도 있지만, 일부는 체념하고 관조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도시가 생명력을 잃어가는 점을 아쉬워하지만, 관광객 유치로 부를 창출하는 흐름을 거역할 수 없으니 떠나야지 하는 이들과 선조들의 자긍심과 역사를 계속 이어가고픈 이들의 표정을 비교해보는 것도 흥미로운 볼거리입니다. 운하와 석호, 중세부터 이어져 온 건물들의 아름다운 풍광과 유서 깊은 가면축제는 너무나 아름답고 운치가 있지만, 베니스라는 공간을 둘러싼 격렬한 갈등을 인지한 관객들에게는 묘한 부조리극으로 비치기도 할 것입니다.

그런 화려한 시각적 혼란상과 주민들의 인터뷰가 교차하던 영화는 마침내 대미를 향해 나아갑니다. 베니스 항구로 고대 신화의 괴수처럼 무지막지한 크기의 크루즈 선이 들어오고, 작은 카누와 보트에 나눠탄 베니스 주민들은 불청객을 환영하지 않는다는 현수막을 들고 해상시위에 나섭니다. 하지만 유람선의 관광객들은 그런 주민들의 절규가 다만 사진 찍기 좋은 배경이라 생각하며 연신 카메라를 찰칵거릴 뿐입니다.

이 풍경을 스크린으로 보는 우리들은 과연 그런 몰이해와 무관심에서 자유로울까요? <베니스 내사랑>의 마지막은 무척이나 묵직합니다. 영화가 끝나는 순간, 관객은 스스로 관광객의 입장이 될지, 원주민의 입장이 될지를 짚어봐야 하니까요.

3편의 작품을 통해 우리는 아시아(티베트), 아프리카(모로코), 유럽(베니스) 3대륙을 누비며 세계적인 관광과 여행 붐 속에서 여행객이 잠깐 머물며 즐기는 와중에 그 공간에서 벌어지는 변화에 대해 돌아보고, ‘공정’여행과 관광의 의미에 대해, 혹은 도시재생과 ‘젠트리피케이션’ 대책에 대해 짚어보는 순간을 맞이할 것입니다. 그 순간이 찰나에 그칠지라도 영화를 본 이들의 뇌리에서 작품들이 던진 극적인 이미지와 상념들은 유령처럼 불쑥불쑥 귀환해 우리를 불편하게 만들겠지요. 그런 불편함을 기대해봅니다.

[작품정보]

버터 램프 Butter Lamp
France, China | 2013 | 15′ | Documentary | Director 후 웨이 HU Wei

가이드 The Guide
Belgium, Morocco | 2015 | 24′ | Documentary | Director 프랑수와 힌

베니스, 내 사랑 I Love Venice
Netherlands | 2013 | 71’ | Documentary | Director 헬레나 뮈스켄스, 퀴린 라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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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회 안내]

* 일시 : 2018년 1월 12일(금) 저녁19시30분~
* 장소 : 독립영화전용관 <오오극장>
* 부대행사 : 상영 후 관련분야 전문가 시네토크
* 주최 : 대구사회복지영화제 조직위원회
* 후원 : 서울환경영화제
* 관람료 : 자율후원
* 관람인원 : 50명(사전신청 선착순)
※ 관람신청 및 문의 : 김상목 프로그래머 전화&메일~
☞ 손전화 : 010-8598-1324, 가급적 문자환영
☞ 전자메일 : spanishbombs@hanmail.net
☞ 신청 서식 : “신청인(단체)/인원/연락처” 필수

  1. 이 작품 <버터램프>는 세계의 여러 단편영화제 중에서 최고단계의 지명도를 가진 클레르몽페랑 국제단편영화제 최고상을 받았던 작품입니다. 대구경북에서는 최초상영.
  2. 감독이 직접 주연으로 출연하고 비전문 배우들을 활용해서 재연극 형식으로 만들어낸 <가이드>는 장르 구분이 애매합니다. 상황 설정만 해놓고 배우들이 자연스레 대사를 쳐내면서 연기와 실재를 넘나드는 연출을 적극적으로 구사하기 때문에 픽션이다 다큐다 하는 구분보다는 재연극 혹은 모큐멘터리로 분류될 작품입니다.
  3. 이탈리아는 로마제국 이후 19세기 말 통일국가가 되기 전까지 1,400년 동안 수많은 봉건영주와 도시국가로 쪼개져 있었기 때문에 ‘애국심’보다는 ‘애향심’이 더 강한 전통을 갖고 있습니다. 특히 오랜 기간 자주독립을 유지해왔던 베니스 토착주민들의 지역사랑은 가장 강한 축에 속한다고 알려져 있고, 베니스의 역사를 조금만 찾아봐도 그런 정서가 쉽게 이해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