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수경 칼럼] 혁명으로 노예제 폐지한 ‘아이티’를 ‘거지소굴’로 부른 트럼프

백인우월주의자 트럼프와 인종주의 이민 정책을 극복하자

16:00

“우리가 왜 거지소굴 같은 (shithole) 나라에서 오는 사람들을 받아줘야 해?”

며칠 전 트럼프가 공화·민주 양당 의원들과 회동에서 내뱉은 말이다. 작년 트럼프가 폐지를 발표한 다카(DACA, 청소년추방유예) 프로그램을 대체할 이민 법안을 협상해 온 양당이 트럼프와 만나 합의 내용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법안에 엘살바도르, 아이티, 아프리카의 몇 나라에서 온 사람들에 대한 보호안을 포함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트럼프가 보인 반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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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단어 ‘shithole’은 역겨울 정도로 매우 더럽고 형편없는 곳을 뜻한다. 배설물을 뜻하는 비속어인 ‘shit’과 마찬가지로 함부로 쓰면 안 되는 말이다. 한 나라 지도자 입에서 나올 말은 더더욱 아니다. 이 단어를 특정 국가 사람들을 지목해 썼다. 지독한 모욕과 경멸의 표현이다.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지탄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 도대체 이 저열한 인종차별주의자의 바닥은 끝이 어디인지 보이지 않는다.

트럼프는 논란이 된 비속어가 아닌 다른 ‘거친’ 단어를 썼다고 주장하지만, 정확히 어떤 단어를 썼느냐는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가 던진 메시지이다. 문제의 발언에 이어 트럼프는 노르웨이 같은 나라 사람들을 더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노르웨이는 국민의 절대다수가 백인이다. 아프리카와 아이티는 흑인이 대다수인 나라들이다. 백인은 환영하지만, 흑인 등 유색인종은 받지 말자고 말이다. 아무리 고상한 언어를 사용할지라도 백인우월주의 발언이라는 사실이 변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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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을 통해 여러차례 언급했듯, 트럼프의 인종차별 발언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멕시코 이민자들을 범죄자, 강간범, 마약 딜러로 묘사하고, 모든 무슬림들이 잠재적 테러리스트인양 그들의 입국을 막아야 한다고 했다. 샬로츠빌 극우 테러에 대해 “양쪽 다 책임이 있다”며 사실상 백인우월주의자들을 두둔하고, 인종차별에 저항해 경기 전 국가 연주 때 일어나길 거부한 흑인 선수들에게 애국심이 없다고 쌍욕을 퍼부었다.

이번 발언 이전에도 아이티인들은 모두 에이즈 감염자이고, 나이지리아인들은 미국을 한번 보면 결코 다시는 오두막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고 전해진다.

문제가 될 때마다 트럼프는 매번 자신이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니라고 강변해 왔다. 하지만 백인 이민자를 선호한다는 것을 노골적으로 밝히면서 그가 그동안 했던 말들이 무엇을 의미했는지 분명해졌다. 이제 주류 언론과 정치인들조차 트럼프를 대놓고 인종차별주의자라고 부르고 있다. (이 분명한 사실을 말하는데 이렇게 긴 시간이 걸렸다는 것이 유감이지만)

다시 확인한 것은 인종주의가 트럼프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백악관은 “워싱턴의 특정 정치인들은 외국을 위해 싸우기로 선택했지만, 트럼프는 항상 미국인을 위해서 싸울 것”이라며 트럼프를 옹호했다. 공화당 지도부는 입을 다물고 있다. 그 자리에 있던 의원 중 누구도 그의 발언에 항의해 회의장을 나갔다는 소식은 없다.

트럼프는 지인들과 통화에서 자신의 발언이 지지층에게는 먹힐 것이라고 떠벌렸다고 한다. 슬프게도 SNS에 올라오는 글 중에는 트럼프가 틀린 말을 하지 않았다는 반응도 보인다. 소수라도 트럼프의 ’사이다’ 발언이 속 시원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지 모른다.

노골적인 인종주의자가 아니더라도 많은 사람들은 이주민에 대한 편견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특히, 제3세계 가난한 나라 출신의 유색 인종을 희생양으로 삼는 정치인들의 선동을 트럼프 이전에도 많은 이들이 쉽게 받아들였다. 주류 언론과 정치인들이 앞다투어 트럼프의 발언이 미국의 ‘가치’에 반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실상 미국은 인종주의에 기반해 세워진 나라이고 노예제가 폐지된 후에도 여전히 인종차별은 사회 정책 곳곳에 남아 있다.

특히 이민정책은 철저히 인종주의에 기반해 왔다. 이전의 정치인들과 트럼프가 다른 점은 그가 세련된 언어로 포장하지 않고 거리낌 없이 속내를 얘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자신이 사는 곳이 평화롭고 안락하다면 누구도 그곳을 떠나 미래가 보장되어 있지 않은 불안한 미지의 땅으로 향하지 않을 것이다. 예를 들면, 트럼프가 원하는 노르웨이처럼 복지정책이 잘 되어 있는 나라에서 왜 중산층조차 의료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파산하는 미국 같은 나라로 이주하려 하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이민자 대부분은 정치나 경제 상황이 더 어려운 나라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아서 온다. 하지만 사람들이 삶의 터전을 떠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현실을 탓하기보다 그 현실에 떠밀려 온 사람을 이방인이라고 혐오하고 차별하는 것이 우리 사회 모습이다.

아이티의 예를 들어보자. 카리브해 섬나라 아이티는 15세기 유럽인이 도착하기 전까지는 풍부한 천연자원을 지닌 축복의 땅이었다. 아메리카대륙 전역에 걸쳐 반복된 것처럼, 아이티 토착 선주민들은 유럽인들의 약탈과 학살, 그리고 그들이 가져온 질병으로 몰살당했다. 유럽의 정복자들이 대체 노동력으로 아프리카에서 노예를 강제로 데려오면서 아이티는 흑인 노예가 인구 대다수를 차지하게 됐다.

노예들은 고분고분하게 운명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저항과 반란이 끊이지 않았고, 마침내 1804년 아이티는 프랑스로부터 독립해 흑인 자유 공화국을 건설한다. 독립운동의 주역들 대부분이 노예 소유주로 독립 이후에도 노예제를 지속했던 미국과 달리, 흑인 노예들이 독립을 쟁취한 아이티는 노예제를 즉각 폐지했다.

▲1791-1804 일어난 아이티 혁명으로 노예제가 폐지되고 아프리카 출신 사람들이 지배하는 최초의 공화국인 아이티가 세워졌다.

1960년대 미국을 뒤흔든 블랙파워운동보다 훨씬 전에 블랙파워가 무엇인지 직접 보여준 아이티는 미국의 프레드릭 더글라스 같은 노예제 폐지론자들에게 깊은 영감을 주었고, 이후 흑인민권운동에 기여했다. 반면 신생 미국의 지도자들에게 노예들이 세운 나라인 아이티는 자신들이 착취하고 있는 노예들에게 불순한 희망을 품게 하는 위험한 나라에 불과했다. 미국은 1862년까지 아이티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았다.

희망차게 출발한 신생국 아이티가 맞닥뜨린 현실은 쉽지 않았다. 식민지 수탈로 인한 산업의 불균형과 프랑스에 대한 막대한 배상금 등은 새 나라 건설에 큰 부담이었다. 전략 요충지인 아이티에 개입할 기회를 엿보던 미국은 1915년 채무상환을 핑계로 아이티를 무력으로 점령해 1934년까지 지배했다. 이후 미국의 지지를 등에 업은 독재자 뒤발리에 부자의 세습 통치로 부패와 빈곤은 더 깊어졌다. 30년 가까이 이어진 뒤발리에 부자의 독재 치하에서 만 명이 넘는 아이티인들이 살해된 것으로 알려졌는데, 악독한 뒤발리에 정권의 장기 집권은 미국의 전폭적인 지원 없이 가능하지 않았다.

▲아이티에 장기 독재 정치인 뒤발리에 부자. [사진=Acento.com.do/archivo./Dos dictadores, Francois Duvalier (Papa Doc) y Jean-Claude Duvalier (Baby Doc).]

1986년 민중봉기로 뒤발리에가 쫓겨나고, 개혁 성향의 아리스티드가 1991년 대통령에 선출되면서 마침내 아이티에 민주화 바람이 부는 것 같았지만, 미국의 묵인과 지원으로 일어난 두 번의 쿠데타로 아리스티드 정권은 실각했다.

설상가상으로 2010년 1월 12일 아이티를 강타한 지진은 아이티를 더 큰 수렁에 빠뜨렸다. 진도 7.0의 강진으로 31만 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정확한 사망자 수 집계가 어려운 이유는 무너진 건물 잔해에 파묻힌 시신을 다 수습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부패한 독재 정권과 다국적 자본은 안전보다 이윤을 우선시했고, 그 결과 안전규정을 지키지 않고 지어진 건물은 성냥갑처럼 무너졌다. 사망자뿐 아니라 부상자도 30만 명이 넘었고, 150만 명이 삶의 터전을 잃었다.

▲2010 년 1월 27일 미군이 아티이에 인도주의적인 재난 구조 활동을 지원하는 모습. [사진=미 해군 사진담당관 제2부 대니얼 바커]

8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아이티는 폐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을 포함해 아이티 재건 명목으로 진행된 국제 사회의 지원은 아이티 국민의 재활을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빈부격차를 심화시키고 있다. 원조물자가 제대로 분배가 안 되고, 미국 등 해외 자본을 살찌우는 데 쓰였다. 주둔한 유엔군을 통해 퍼진 콜레라는 1만 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갔다. 트럼프가 경멸적으로 말한 ‘거지소굴(shithole)’은 이런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아프리카나 엘살바도르 등 다른 제3세계 나라들도 아이티의 경험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식민지 수탈과 학살, 노예무역, 그리고 독립 후에도 계속된 강대국들의 군사, 경제적 개입으로 빈곤과 폭력의 악순환을 겪어 왔고, 그 과정에서 가장 큰 희생을 강요받은 사람들은 우리와 같은 보통 사람들이다. 미국과 유럽으로 향하는 난민과 이주민들은 그 지옥 같은 곳에서 탈출하려는 사람들이다.

미국과 서방 선진국들은 자신들의 제국주의 정책으로 삶이 파괴된 사람들을 인도적 차원에서 조건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 이것은 기본 인권의 문제이다. 트럼프의 발언에 분노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번 기회가 백악관에 백인우월주의자가 앉아있다는 사실뿐 아니라 이민 정책이 인종주의적임을, 그리고 인종차별과 외국인 혐오는 희생양 찾기라는 걸 보게 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그것이 트럼프주의를 극복하는 첫걸음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