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준의 육아父담] 독감 바이러스와 종북 바이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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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면 아이 키우는 일이 더 힘들다. 옷부터 몇 배를 더 입혀야 한다. 외출이라도 하려면 내복, 겉옷, 외투, 모자와 마스크로 몸을 꽁꽁 싸매야만 안심이 된다. 답답하다고 벗으려는 아이와 춥다며 더 입히려는 아빠의 날카로운 신경전이 벌어진다. 또 해는 짧은데 하루는 또 어찌나 길고도 긴지. 바깥놀이가 어려우니 시간이 참 더디게 간다. 저녁 먹고 한참 지난 것 같은데 아직 아홉시도 안 됐다. ‘방콕’하는 아이도 어른도 따분함에 몸부림을 친다. 시간은 많은데 마땅히 할 것은 없고 함께 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육아스트레스는 더 심해진다. 결국 ‘일찍 자’ 짜증 섞인 한 마디로 하루를 강제종료 한다.

그러다 잠깐 방심해서 찬바람이라도 살짝 쐬면 어느새 코를 훌쩍, 기침을 콜록거린다. 이놈의 감기는 좀처럼 떨어질 줄을 모른다. 올해는 A형, B형 독감이 동시에 유행해서 집집마다 비상이다. ‘몸이 부서질 정도로 아프다’, ‘이렇게 아픈 감기는 처음이다’ 등 인터넷과 SNS를 떠도는 괴담을 듣고 나니 벌써 독감 걸린 것처럼 겁이 난다. 살짝 열만 나도 독감인 것 같은 의심이 든다.

몇 해 전 분명 아이가 독감 예방주사를 맞았는데도 독감에 걸려 망연자실한 후에는 완전한 예방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올겨울에도 독감 예방주사를 맞혔지만 절대 안심할 수 없다. 사람 많은 곳은 피하고, 최대한 야외활동은 자제하고 잘 때는 건조하지 않게 매일 빨래를 돌려 방안에 널었다. 싸워 이길 자신이 없으면 독감 바이러스로부터 최대한 도망가는 수밖에 방법이 없다. 그렇게 용을 써도 걸리면 별수 없다. 격리 조치당할 수밖에.

‘종북 바이러스’도 그렇다. 정보기관과 찌라시 언론이 유포한 종북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종북 딱지’가 붙으면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다. 독감처럼 격리당하고 배제당하기 십상이다. 그나마 예전 ‘친북(親北) 바이러스’는 “북한과 친하지?” 하고 몰아붙이면 “그래서 어쩌라고?” 맞받아칠 수라도 있었는데 변종 바이러스로 무시무시해진 ‘종북(從北) 바이러스’는 인정사정 봐주지 않는다. 그야말로 북한에 종살이하는 꼴이란 말 아닌가? 거기에 ‘좌파’까지 붙어 ‘종북좌파 슈퍼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사회적으로 매장당하는 것은 일도 아니다. 사실관계, 출처 따위는 ‘안물안궁(안 물어봤고 안 궁금해)’이다. 한 마디로 찍히면 죽음이다.

그래서 종북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무지와 편견이라는 색안경을 쓰면 된다. 인공위성을 쐈던 로켓은 미사일로 부르고, 어디서 흘러들어 온지도 모를 총살, 숙청 소식에 맞장구치면 된다. 총살당했다는 사람이 평창 올림픽 협상 테이블에 떡하니 앉아 있어도 상관없다. 공포가 지배하는 곳에서 여전히 수많은 만행이 벌어지고 있을 테니까. 북한은 원래 인권도 기본권도 없는 지옥 같은 세계니까.

이중 잣대도 필요하다. 미국의 핵무기는 세계평화를 위한 방패이고 북한의 핵무기는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흉기다. 한미연합훈련은 조국강토를 지키는 방어훈련이고, 북한의 대응은 무력도발이다. 북한은 항상 남한의 선의를 이용할 뿐이다. 북한을 바라보는 이런 시선들은 동정 따위도 아니다. 혐오와 멸시에 가깝다. 이렇게 종북 바이러스에 내성이 생긴 사람들이 사실은 종북 바이러스에 진짜 감염된 사람들이다.

나름 ‘종북 바이러스’를 잘 알고 이겨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아직 완치되지는 않았다. 불똥이 튈까 ‘종북 딱지’가 붙어 격리된 이들에게는 얼씬도 하지 않는다. 통합진보당이 해산당한 것도, 이석기 의원이 감옥살이하는 게 억울한 면이 있겠지만 싸잡아 격리당할지도 모르니 애써 무시한다.

사실 ‘종북몰이의 희생양이라 하더라도 빌미를 줬으니 어쩔 수 없다.’ 그게 솔직한 마음이다. 그래도 굳이 한마디 거들려면 ‘나와 생각은 다르지만’이라는 전제를 달며 마스크를 쓰고 보호의를 입는다. 결국 우리는 누구도 종북 바이러스에서 자유롭지 못 하다.물론 나도 종북 바이러스에서 자유롭지 않다. 언제부턴가 말 한마디, 글 한 자에 자기검열을 하기 시작했다. 내 생각보다는 남이 나를 보는 시선이 신경 쓰였고, ‘구 통진당원’으로 불리는 게 많이 불편했다. 당직을 맡았다는 것은 싹 지우고 싶었다. 한통속으로 비칠까 두렵기도, 원망하기도 했다. 그래서 애써 숨기고 도망을 다녔지만 여전히 자유롭지도 편안하지도 않다.

바이러스로부터 도망간다고 능사가 아니다. 예방주사를 맞아도, 그렇게 조심해도 감염 위험은 언제나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이겨낼 체력과 면역력이 있으면 된다. 원래 겨울은 뭘 해도 몇 배가 더 힘들다. 하나 분명한 것은 계절이 바뀌면 자연스레 바이러스도 사라진다. 독감도 종북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