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철의 멋진 신세계?] 가상화폐 논란에서 뒷전으로 밀려난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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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31 15:08 | 최종 업데이트 2018-01-31 15:08

한바탕 가상화폐, 혹은 암호화폐 광풍이 휩쓸었다. 잠시 주춤하지만 언제 다시 불어닥칠지 모른다. 숱한 사연과 논의들이 쏟아져 나왔다. 등락폭만큼이나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이야기들이 넘쳐났다. 누가 옳은가를 놓고 갑론을박, 논란은 무성했지만 뾰족한 결론은 없다. 이미 나와 있는 자료만으로도 차고 넘친다. 이런 상황에서 이 문제에 대한 의견 하나 보태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숟가락 하나 더 얹는다고 달라질 것은 무엇인가.

그럼에도 앞으로도 우리에게 이와 유사한 상황이 계속해서 찾아올 것이 분명하고, 그럴 때마다 혼란의 와중에 또다시 놓치고 지나갈 가능성이 큰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싶다.

부작용은 막되, 기술은 살리자?

거칠게 예측하자면, 가상화폐 사태는 여러 논란에도 결국 “부작용은 막되, 기술은 살리자!”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 늘 그래 왔던 것처럼 기술 문제를 둘러싼 이 같은, 가장 준수한(?) 미봉책이 이번에도 그대로 통용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우리 정부가 취하는 방식과 같이, 규제를 통해 가상화폐 과열과 투기를 막는 임시적인 처방은 앞으로도 수시로 이루어질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가상화폐의 기반 기술인 ‘블록체인’이 미래 기술의 핵심으로 꼽힌다는 점이다. 정부도 이 점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정부는 지난해 11월 관계부처 합동으로 발표한 「4차산업혁명 대응 계획」을 통해, “블록체인을 활용한 핀테크 기술과 서비스 개발 지원”이라는 청사진을 분명하게 제시한 바 있다.

그리고 가장 최근에는 4차산업혁명 주무부서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올해 예산 100억을 책정해 블록체인 기술을 육성하겠다고 공표했다. 행정안전부와 한국정보화진흥원도 올해 주목할 ‘전자정부 10대 유망기술’ 중 하나로 블록체인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정부의 이 같은 대응은, 가상화폐는 규제하고 블록체인은 육성하겠다는 분명한 의지로 보이지만, 문제는 사태 해결이 말처럼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데 있다. 해당 기술 분야 관련자들은 정부의 이 같은 방침에 강력한 반대 의사를 밝히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동전의 양면처럼 발전해 온 가상화폐와 블록체인이 과연 분리될 수 있는지, 이들의 입장에서는 동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중앙의 통제나 간섭을 탈피하는 데서 출발한 ‘분산기술’인 블록체인이 중앙의 규제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면, ‘기술 혁신’의 관점에서 매우 퇴행적인 사태가 아닐 수 없다.

블록체인 기술의 정신에 부합한다는 ‘공개형 블록체인(불특정 다수의 자유로운 참여 보장)’은 가상화폐라는 보상체계 없이 유지될 수 없다는 것이 지배적인 의견이다. 이들은 가상화폐 규제가 필연적으로 블록체인 기술의 약화를 불러온다고 전망한다.

가상화폐를 두고 17세기 네덜란드의 ‘튤립 버블’이나 십수 년 전 ‘닷컴 버블’에 빗대어 대표적인 ‘거품’ 현상으로 비판하는 것을 넘어서, 가상화폐 자체를 대놓고 부도덕한 사기로 보는 관점도 있다.

가상화폐는 투자자들을 현혹해 사익을 챙기는 부도덕한 사기 행각이라는 것이다. 이들의 대표격인 유시민 작가는 최근 “가상화폐는 인류 역사상 가장 난해하고 우아한 사기 사건”이라고까지 단언했다. 그는 가상화폐가 지닌 위험성과 부도덕을 ‘온라인 도박’에까지 빗대며, 강력한 단속과 규제를 촉구하기도 했다.

중앙권력에 의한 가상화폐 규제를 반대하는 기술주의 관점으로 보자면, 가상화폐 투기 열풍은 일시적이고 지엽적인 부작용에 불과한 것이다. 가상화폐와 블록체인 기술이 가져올 미래 사회의 비전에 비추면 이만한 부작용은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들이 모든 규제를 반대하는 것도 아니다. 이들은 투기와 탈법은 법적 테두리에서 충분히 규제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다만 가상화폐 자체를 죄악시하거나 전면 통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한편 가상화폐를 부도덕한 도박이나 사기로 보는 사람들도 블록체인 기술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이들은 블록체인 자체는 선용 가능성이 충분한 기술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일정한 규제(폐쇄형 블록체인) 아래 육성할 수 있다고 본다. 다만 블록체인 기술과는 다르게 가상화폐는 이러한 기술의 범주를 넘어선 투기나 사기라고 보는 것이다.

기술주의 입장에서도 가상화폐의 투기적 현상을 옹호하지는 않는다. 초기 비트코인이 마약상들과의 거래에 악용된 사례가 있듯이 부작용의 가능성을 전면 부인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가상화폐를 반대하는 입장에서도 미래의 핵심 기술로 꼽히는 블록체인을 전면 부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결국, 이처럼 양자의 상충된 주장이 하나로 모이는 곳은, 기술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기술의 선용을 극대화하는 지점에서다.

‘기술의 선용’이라는 이데올로기

그런데 이러한 논의는 우리에게 이미 너무 익숙한 패턴이지 않은가? 기술은 그 자체로 가치를 지니지 않는다는 가치중립성을 강조하며, 기술의 부작용은 기술 자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이를 악용한 자들의 문제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은 아주 오래되었지만, 여전히 강력한 이데올로기로 작동하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기술 문제에 관한 어떠한 처방도 ‘기술의 선용’이라는 만병통치약을 뛰어넘어 존재할 수가 없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시간이 갈수록 기술은 점점 더 인간의 시야와 이해의 수준에서 혹은 통제의 영역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블록체인 기술이 기존 중앙집중적 시스템에서 벗어나서 새로운 세계와 질서를 만들어낼 것으로 전망하는 낙관론자들 중에는 이 기술의 혁명성, 혹은 해방성에 ‘또다시’ 주목하는 사람들이 있다.

여기서 ‘또다시’라고 표현한 것은 불과 이십여 년 전에 마치 인터넷이 세상을 구원할 것처럼 흥분하던 시기의 풍경과 묘하게 겹치기 때문이다. (인터넷 혁명이라는 환상은 당시 곧장 ‘닷컴 버블’로 이어졌다. 이를 근거로 블록체인을 평가절하하는 경향이 현실에서 실제로 존재한다.)

블록체인 기술이 상용화되는 것은 시간 문제이며 금융을 비롯한 사회 전 영역으로 확장되면 혁신적인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정부나 기업의 역할은 축소되고 사회 구성원 혹은 개인의 역할이 커지며, 신뢰와 보안이 함께 이루어지는 세상이 펼쳐질 수 있다고 한다. 한발 더 나아가 지역화폐와 같은 대안적 가치를 실천하는 데에도 활용될 수 있다고 하니 이 논리대로라면 블록체인 기술의 확장성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일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이렇듯 이론적으로만 보면 블록체인은 편의의 극대화, 과정의 단순화, 비용의 제로화라는 현시대 기술 지향과 흐름에 완벽히 부합할 뿐만 아니라 무궁무진한 확장 가능성까지 갖춘 기술이라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미래를 좌우할 핵심 기술로 꼽히는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생체공학과 마찬가지로 블록체인 역시 인간의 한계와 삶의 영역을 극도로 초월하는 초거대기술에 해당한다. 이러한 초거대기술의 진보가 인류에게 과연 축복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편의의 극대화는 인간의 자율을 송두리째 잠식하고, 초연결의 관계망은 인간적 유대를 훼손하며, 인간의 조건을 훨씬 뛰어넘은 생명연장의 무한 욕망은 인간을 더 이상 인간으로 존립할 수 없는 지경으로 이끌고 있다. 이 같은 기술의 폭주를 막아내지 못할 경우, 과연 몇십 년이 흐른 뒤에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인간으로 정의 내릴 수 있을 것인가?

블록체인 기술도 디지털 시대의 다른 기술과 마찬가지로 현실에서는 극단적인 자본 시스템 아래 작동하고 있다. 기술은 자본을 등에 지고 질주하고, 자본은 기술을 앞세워 몸집을 불린다. 기술 자본은 부의 독점 구조를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가상화폐 채굴(mining)을 위해 마련한 장비가 작동하고 있다. [사진=플리커 ⓒNathan11466]
가상화폐의 대명사인 비트코인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상위 1%가 전체의 88%를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기술 개발 초기에 구상한 블록체인 기술의 혁신성은 사람들의 관심에서 점점 멀어지고, 소수의 독점적 지배 구조만 계속 강화됐다. 여기에 투기자본, 음성자금, 탈세자금이 몰리면서 비트코인은 아수라장이 됐고, 급기야는 일확천금을 노리는 투기열풍으로 확산되기에 이르렀다.

주목할 것은 가상화폐의 원조로 인정받는 비트코인이 2008년 미국발 세계 금융위기를 기점으로 탄생했다는 점이다. 당시 미국 정부와 중앙은행은 자신들의 정책 실패로 인한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막대한 양의 달러를 찍어냈다. 그 결과 달러의 가치는 추락했고 물가 폭등에 금리는 바닥을 쳤다.

기축통화로서의 달러에 대한 불신이 세계적으로 확산됐고, 이는 기존 화폐시스템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졌다. 그런데도 이 사태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한 금융자본가들과 전문가들은 혼란을 틈타 오히려 막대한 부를 챙겼고 대다수 무고한 시민들은 파산의 고통을 겪어야 했다.

비트코인 창시자로 알려진 사토시 나카모토는 당시 금융위기를 지켜보면서 정부나 중앙은행으로부터 자유로운 전자화폐 시스템을 구상했다고 밝힌 바 있다. 비트코인은 기존 시스템에 대한 저항과 대안으로 탄생했지만, 진행 과정은 애초 구상을 크게 벗어난 상태다. 이는 기술이 결코 자본과 사회, 혹은 정치로부터 독립적일 수 없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이다.

가상화폐 논란에서 뒷전으로 밀린 이야기

가상화폐 열풍은 세계적인 현상이지만, 유독 우리사회에서 문제가 크게 대두된 것은 그만큼 우리 삶의 불안정성이 심각하기 때문이다. 이를 외면하고 가상화폐에 몰입하는 사람들을 무조건 비난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특히 2030으로 표현되는 청년 세대들이 열풍에 동참하는 현상을 두고 이들을 일확천금의 헛된 꿈에 사로잡힌 무책임하고 한심한 부류로 몰아붙이는 시선이 곳곳에 존재한다.

그런데 조금만 시선을 달리하고 실상을 들여다보면 우리가 섣불리 그들을 비난할 수 있는지 회의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대다수 젊은 세대, 청년의 삶은 그야말로 벼랑 끝에 놓여 있다. 입장을 바꿔서 그들의 삶으로 들어가 보면 도무지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 미래는 고사하고 현재의 삶도 감당하기 어렵다. 포기와 유예가 전 생애를 지배한다. 아무 이유 없이 수저론이 횡행했겠는가. 실제로 노력과 도전보다는 행운이 그들의 삶을 더 강력하게 좌우한다.

그렇지만 이들 대부분이 꿈꾸는 삶은 엄청난 부를 누리는 데 있지 않다. 지극히 평범한 수준의 인간다운 생활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정도다. 어쩌면 기성세대가 대체로 자연스럽게 누리던 이러한 평범한 삶의 모습이, 이들에게는 더 이상 평범한 일상으로 인식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인간으로서 마땅히 누려야 하는 평범한 삶이, 꿈을 꾸어야만 이루어질 수 있는 현실이라면 과연 그러한 현실을 정상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가상화폐 사태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점은 바로 이러한 사태의 근원이다. 이들의 삶이 무너지게 된 근원이 무엇인가를 추적하고 함께 복원하는 일이어야 한다. 우리의 현실을 잠식하는 거대한 불평등과 격차를 돌아보지 않으면 안 된다.

가상화폐 사태를 지켜보면서 가장 절실하게 느꼈던 것은 우리는 우리가 속해 있는 세계에 대해 몹시도 안일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가령 가상화폐를 사기라고 비난하는 사람들은 왜 주식을 위시한 자본주의 금융시스템에 대해서는 아무런 질문을 던지지 않는 것일까.

금융위기의 책임을 무고한 시민들에게 전가하고 막대한 부를 축적한 자들과 그들을 비호하는 국가에 대해서는 왜 침묵하는 것일까. 가상화폐가 투기라면 주식은 과연 투자인가? 신의 영역이라고까지 표현되는 투기와 투자의 구분은 과연 가능한 일인가? 청년들의 투기 열풍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지금 발 딛고 있는 자리가 실상은 부동산 투기로 이루어진 토양이라면 우리는 과연 그들에게 떳떳할 수 있을까?

블록체인이 신세계를 열어줄 혁명적 기술이라고 전도하는 사람들은 새로운 기술이 나올 때마다 ‘또다시’를 반복하며 해방을 부르짖을 것인가. 기술이 빈약해서 우리 삶이 이토록 팍팍한 것인가. 혹은 물질이 부족해서인가.

지난 세기 중반에 당시의 물질력으로도 세계 인구 20억이 다 편안히 살아갈 수 있다고 했던 김구 선생의 말을 새삼 떠올리지 않아도 그때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지금 인류의 기술과 물질은 차고도 넘친다. 무엇 때문에 우리는 기술을 더 발전시켜야 하는가.

가상화폐 사태는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기술의 급진적 발전이 가져올 갖가지 난제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난망한 일인지 모르지만, 이 난제를 해결할 주체는 국가도, 제도도 아닌 우리들 자신, 시민들뿐이다. 기술과 자본에 맞서는 다른 삶의 모색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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