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의 시적 여정] (16) 무엇보다 먼저 끊어야 할 것은 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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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05 19:52 | 최종 업데이트 2018-02-05 19:53

[주=황규관 시인이 연재하는 ‘김수영의 시적 여정’은 매달 5일, 20일 뉴스민에 연재한다. 인용된 작품의 전문 수록은 저작권자와의 협의를 마쳤습니다.]

1965년에 쓴 산문 「연극 하다가 시로 전향-나의 처녀작」에서 김수영은 “요즘 나는 라이오닐 트릴링의 「쾌락의 운명」이란 논문을 번역하면서, 트릴링의 수준으로 본다면 나의 현대시의 출발은 어디에서 시작되었나 하고 생각해 보기도 했다. 얼른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 십여 년 전에 쓴 「병풍」과 「폭포」다”고 하면서 다시 “나의 현대시의 출발은 「병풍」 정도에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고 강조한다. 물론 이 말의 배경에는 라이오닐 트릴링에게서 받은 영향이다. 김수영에 의하면 “트릴링은 쾌락의 부르주아적 원칙을 배격하고 고통과 불쾌와 죽음을 현대성의 자각의 요인으로 들고” 있다.

「병풍」에서는 상갓집에 세워진 “병풍”을 통해 어떤 단절을 노래하고 있다. 지금의 장례식 분위기와는 다르게 예전에는 망자와 산 자 사이에 병풍을 세워두었다고 한다. “병풍은 무엇에서부터라도 나를 끊어준다”고 1행부터 고백하고 있거니와 김수영의 기억처럼 이 작품은 죽음에 대한 시로 읽히지는 않고 ‘단절’에 대한 작품 같은데 ‘단절’을 죽음의 이미지로 받아들인다면 그것은 다음과 같은 구절 때문일 것이다. “내 앞에 서서 주검을 가지고 주검을 막고 있다”. 그러니까 이 작품에서 죽음은 하나의 소재일 뿐이다. 왜냐하면, 시의 화자는 “무엇보다도 먼저 끊어야 할 것이 설움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김수영에게 이제 ‘설움’은 버린 유산 아니었던가? “무엇보다도 먼저 끊어야 할 것이 설움”이라고 단호하게 말하는 것을 보면 ‘설움’을 완전히 버려버리지는 못한 것 같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설움이라든가 비애 같은 부정적 정서는 우리가 현실에서 벌어지는 사건들과 마주칠 수밖에 없는 한 꾸준하게 엄습한다. 사실 김수영의 시 전체는 삶을 병들게 하는 부정적 정서와의 투쟁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헬리콥터」에서 그는 분명히 “긍지와 선의”를 말하고 「긍지의 날」에서는 “나의 긍지”는 “설움과 아름다움을 대신하여” 있다고 말하지만, 현실은 그에게 계속 설움을 심어주고는 했다. 그러면 다시 김수영은 “긍지”를 회복하려 고투하고, “긍지”에 차 있을 때 가장 김수영다운 작품, 일테면 「거대한 뿌리」나 「사랑의 변주곡」, 「풀」 같은 작품 등이 나온다. 우리는 앞으로 김수영이 현실이 주는 부정적 정서를 밀어내며 삶의 건강을 회복하는 장면들을 거듭 보게 될 것이다.

「병풍」에서도 다시 잃어버린 ‘건강’을 되찾으려 시도하는데, 유념해야 할 것은 이미 그런 시도는 「백의」에서도 시도되었고, 상당히 득의만만한 모습을 보여줬다는 점이다. 그것은 “백의”로 상징되는 구체적인 현실과 용감하게 “간통”함으로써 말이다. 누구는 “백의”를 숭상하고, 누구는 “백의”를 백안시하지만, 김수영은 “백의”와 “간통” 즉 다른 삶의 윤리를 제출하고 있는 것이다. 이 일은 분명 ‘시의 길’을 위협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반대로 보면 다른 ‘시의 길’을 가능하게도 해준다. 모험 없는 삶은 아무것도 창조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것이 훗날 트릴링에게서 배운 “쾌락의 부르주아적 원칙”이다. 「병풍」에서는 마지막 두 행이 인상적인 것은 건강을 다시 회복한 자가 아니면 가질 수 없는 관점에서 나오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나는 병풍을 바라보고
달은 나의 등뒤에서 병풍의 주인 육칠옹해사(六七翁海士)의 인장(印章)을 비추어주는 것이다

김유중은 이 구절의 “육칠옹해사(六七翁海士)”가 하이데거를 암시한다며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이 점에 대해 필자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관점에 기초하여, ‘육칠옹해사’란 바로 하이데거를 암시하는 말임을 주장한다.

첫째, 이제까지의 논의를 통해 밝혔듯이, 이 텍스트의 전반적인 내용이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에 나타난 죽음에 관한 논의와 밀접한 연관성을 맺고 있다는 점. 둘째, 이 텍스트가 쓰인 것이 1956년이므로, 이 해는 1889년생인 하이데거가 정확히 67세 되는 해라는 점. 셋째, 하이데거의 백화문 표기가 ‘해덕격[海德格, Hǎidé gé]’이라는 점.” 덧붙여 그는 다음과 같이 각주를 달아주는 친절을 베풀었다. “셰익스피어는 ‘사옹(沙翁)’으로, 톨스토이를 ‘두옹(杜翁)’으로 지칭해왔던 그간의 관례에 비추어 볼 때, 김수영이 하이데거[海德格]를 ‘해사(海士)’로 암시하려 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김수영과 하이데거』, 민음사, 101쪽)

1956년 어름에 김수영이 하이데거에게 얼마나 깊은 영향을 받았는지는 둘째 치고 일단 「병풍」은 죽음에 대한 인식을 통해 위에서 인용한 든 두 행처럼 “나”가 담대하고 고요하게 “병풍을 바라보고” 있듯이, “달은 나의 등뒤에서” 함께 “병풍”을 바라보고 있는 광경을 묘사하고 있다. 다만 달과 병풍의 만남을 더 실감나게 표현하기 위해 병풍의 모습을 디테일하게 묘사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여기서 핵심은 “나”와 “달”이 함께 하고 있다는 점이며, “육칠옹해사(六七翁海士)의 인장(印章)”이, 표현되지는 않았지만, 밝게 빛나는 다른 감각을 발생시킨다는 것도 유념해야 한다. 이것은 지금 시의 화자가 죽음을 통해 다른 삶을 얻은 것을 은유한 것이다. 따라서 이 작품은 죽음에 대한 시이자, 부활에 대한 시가 된다.

다음으로 김유중은 그 당시 하이데거 나이가 67세인 점을 들어 김수영이 “육칠옹”이라고 불렀다고 하면서, 각주에서는 셰익스피어와 톨스토이를 ‘사옹’, ‘두옹’으로 불렀듯이 하이데거를 “‘해사(海士)’로 암시하려 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런 추측은 상상력의 축에도 끼지 못하는 말장난에 불과하다. 먼저 그의 말대로 하더라도 이미 “육칠옹(六七翁)”이라고 불렀는데 왜 또 중국식 발음에서 해(海) 자와 ‘옹’보다 젊게 느껴지는 ‘사(士)’는 왜 이어 붙였는지 도통 이해하기 힘들다.

이럴 때는 도리어 작품의 본문에 충실할 필요가 있다.

주검의 전면(全面) 같은 너의 얼굴 위에
용이 있고 낙일(落日)이 있다
(…)
병풍은 허위의 높이보다도 더 높은 곳에
비폭(飛瀑)을 놓고 유도(幽島)를 점지한다

인용한 부분은 각각 병풍에 수놓아진 그림을 상갓집의 풍경과 시의 화자의 정서에 포개놓았을 때 나타날 수 있는 표현들이다. 시의 화자는 분명 상갓집에 와서 죽음에 대한 고색창연한 생각에 빠져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돌연 시의 화자는 이렇게 말한다. “무엇보다도 먼저 끊어야 할 것이 설움이라고 하면서/ 병풍은 허위의 높이보다도 더 높은 곳에/ 비폭(飛瀑)을 놓고 유도(幽島)를 점지한다”.

다시 말해 죽음에 대한 고색창연한 상념보다 자신에게 먼저인 것은 삶에 대한 태도였던 것이다. 그런 상념은 차라리 허위에 불과하다. 지금 중요한 것은 삶을 통해 생긴 “설움”을 끊어내는 것이다. 그걸 “병풍”을 통해 알았기에 “병풍”이 “주검을 가지고 주검을 막고 있다”고 한 것이다. 이 시가 ‘죽음에 대한 시’이자 ‘부활에 대한 시’라고 부르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마지막 행의 “육칠옹해사(六七翁海士)의 인장(印章)”은 말 그대로 “육칠옹해사(六七翁海士)”가 “병풍의 주인”, 즉 “병풍”에 새겨진 그림의 주인공이며 (모든 풍경 중에 유일한 사람이기에) 내가 “병풍을 바라보고” 있듯이 “달은” 그것들을 (환하게) “비추어주는 것이”다. 또 “용”, “낙일(落日)”, “비폭(飛瀑)”, “유도(幽島)”, “육칠옹해사(六七翁海士)의 인장(印章)”을 나열해 보면 병풍의 그림이 완성되지 않는가? 한편으로 “육칠옹해사(六七翁海士)”는 ‘60~70세가량의 바닷가 노인’이란 추정도 있으며, 이런 도교적 분위기는 「묘정의 노래」에서 주는 느낌을 고려했을 때 완벽하게 낯설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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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규관
"전태일문학상 수상. 시집으로 [정오가 온다], [태풍을 기다리는 시간], [패배는 나의 힘] 등이 산문집으로는 [강을 버린 세계에서 살아가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