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째 제자리” 구미 KEC, 승진·임금 여성차별 논란

전체 직원 중 대리급 이상 여성 1.6%에 불과
노조, '평등권 침해'로 국가인권위 진정 접수
사측, "직무에 따른 차이일 뿐...남여 차별 없어"

16:45

경북 구미시 반도체 제조업체 KEC에서 여성노동자에 대한 승진, 임금 차별이 만연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7일, 금속노조 구미지부 KEC지회가 공개한 2018년 1월 기준 KEC 전체 직급별 남여 인원에 따르면, 전체 직원 654명 중 대리급(S5) 이상 여성은 1.6%(11명)에 불과했다.

특히 제조부에서 일하는 여성 136명은 모두 하위직인 J등급에 머물렀다. 반면, 남성은 170명 중 18명만이 J등급이며, 나머지는 S등급, 관리직인 M, L 등급까지 다양했다.

이종희 KEC지회장은 19살이던 2001년 가장 낮은 직급인 J1 등급으로 KEC 제조부에 입사했다. 입사 18년 차인 올해 이종희 지회장은 한 직급 오른 J2 등급이다.

이 지회장은 “어느 회사나 18년 정도 다니면 베테랑 소리를 듣는데, 저는 여전히 J등급이다. 여성노동자는 J 등급 이상을 올라가지 못 한다”며 “KEC에서는 여성과 남성이 J와 S로 구분되는 것이 아무렇지 않게 여겨진다”고 꼬집었다.

▲여성노동자가 J3 등급까지 승진 후 더 이상 승진되지 않은 사례(자료=KEC지회)

실제로 1992년 입사자 총 38명 중, 현재 남성 32명은 모두 S4 등급 이상으로 승진했지만, 여성 6명은 여전히 J3 등급이다.

또, 여성들은 J3 등급까지 승진 후 더 이상 승진되지 않기도 했다. 올해로 근속 30년인 여성 A 씨는 1999년 J3 등급으로 승진 후, 20년째 제자리다. 근속 26년 차, 24년인 여성 B, C 씨 역시 2001년 J3 등급으로 승진 후, 17년째 승진하지 못했다.

심지어 입사 후 단 한 차례도 승진되지 않은 여성도 있었다. 제조부 여성노동자 D, F 씨는 각각 근속 16년, 15년 차임에도 가장 낮은 등급인 J1 등급이다.

이종희 지회장은 “승진 차별은 엄청난 임금 차별로, 또 현장 곳곳에서는 남성과 여성이 상하 직급으로 구분돼 여러 성차별 피해가 나타난다”며 “남성이 승진을 잘 하고 임금을 더 많이 받아서 문제가 아니다. 여성을 승진에서 배제한다는 것이 문제다”고 지적했다.

이날 오전 11시 대구경북여성단체연합, 금속노조 구미지부 등은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사무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가인권위원회 법에 명시된 성별을 이유로 승진, 임금 등을 차별하는 ‘평등권 침해의 차별행위’라며 진정서를 제출했다.

정현정 대구여성노동자회장은 “유리천장이 너무 높아 한 계단도 올라가기 어려운 실정이다. KEC 여성노동자들은 입사 때부터 남성과 직급이 다르고, 승진은 꿈도 못 꿨다”며 “사측은 여성의 노동을 반찬값 노동으로 묶어 뒀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입사에서 차별바다고, 승진에서 차별받고, 출산과 육아로 차별받고, 임금으로 차별받는 사회구조를 바꾸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KEC 남녀차별은 구조적이며 고질적이다. 회사가 여성노동자를 남성과 동등하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부장적 사고가 뿌리 깊은 경영방침”이라며 “회사는 수십 년간 여성을 열등한 노동력으로 취급한 잘못에 대해 분명히 사과해야 한다”고 밝혔다.

KEC 측은 직무에 따른 직급 차이가 나는 것이며 차별은 없다고 반박했다.

이덕영 KEC 인사그룹 부장은 <뉴스민>과 통화에서 “현장직과 사무직이 직급이 다르다. 현장직의 경우 여성을 대부분 뽑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직급이 낮을 수 있다. 승진은 근속연수에 따라 이루어지는데, 여성들은 결혼 후 그만두는 경우가 많아 근속년수가 평균 7~8년 수준이다. 여성이라서 승진을 차별한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고 말했다.

근속연수가 오래된 여성이 20년째 승진을 못한 사례도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 이덕영 부장은 “근속이 있다고 해서 다 올라가는 게 아니다. 발탁하는 개념이라 회사의 오더가 줄어 승진자가 1년에 1~2명뿐이라 그렇다”고 말했다.

KEC지회는 금속노조-기업노조 조합원 간 승진 차별도 있다며 고용노동부에 고소 등 법적 대응에 나설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