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계, 히로시마서 위령제 “한인 원폭 희생자 지원법 마련”

원폭 피해자 치료비 판결 이후 한·일 정부 책임 요구 이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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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시마=천용길 기자] 불교계가 광복 70년을 맞아 일본 히로시마 평화공원에서 한국인 원폭희생자 추모제를 열었다. 지난 8일 일본 최고재판소가 한국인 원폭 피해자에게도 치료비를 전액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려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불교계의 이 같은 행보는 동아시아 역사 문제와 핵 문제를 푸는데 하나의 분기점으로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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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불교종단협의회(회장 자승 조계종 총무원장)는 14일 오전10시 30분 일본 히로시마평화공원 내 한국인희생자 위령비 앞에서 ‘히로시마 원폭 한인희생자 추모 위령제’를 열었다. 이번 위령제는 13일부터 17일까지 히로시마에서 열리는 제18차 한중일 불교우호교류대회에 앞선 한국 불교계가 연 자체 행사다. 위령제에는 한국 불교계 19개 종단 승려와 신도 100여 명을 포함해 서장은 일본 히로시마 총영사 등이 참석했다.

미국은 1946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역사상 최초로 원자폭탄을 투하했다. 미국은 전쟁 종식을 위해 폭탄을 투하했다고 밝혔지만, 그 피해는 상상을 넘어섰다. 이후 떨어뜨린 나가사키까지 총 70만 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는데, 이 가운데는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인들도 대거 포함됐다.

히로시마에 떨어진 폭탄으로 42만 명의 피폭자가 발생했고, 16만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 가운데 조선인 5만여 명이 피폭당해 3만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생존자 2만여 명 가운데 1만 5천여 명은 한국으로 귀국했지만, 한국 정부와 일본 정부 양측으로부터 제대로 된 피해 보상을 받지 못한 채 살아왔다. 2013년을 기준으로 원폭 피해자는 약 2천6백여 명이 생존해 있고, 원폭 피해자 2~3세는 약 1만 여 명으로 추정된다.

원폭피해자 지원과 비핵 시민운동단체 합천평화의집 운영위원장 연암스님은 “과거사 피해자에 대한 위로와 지원책이 하루빨리 마련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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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종단협의회장인 자승스님은 “광복 70주년, 이전보다 나아간 것도, 더 나아진 것도 없지만, 잊었던 그대들의 애통함을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덧없이 흘려보낸 세월만큼이나 무거운 책임감으로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며 “안타깝고 고귀한 희생이 헛되지 않게 역사의 아픔이 반복되지 않도록 인류의 귀감으로 남기고, 산 자는 산 자의 역할에 매진하겠다”고 추모사를 전했다.

추모 위령제에 참석한 이들은 발원문을 통해 “제국주의 시대 님들은 뜻하지 않게 물설고 선 이역만리 땅에 이유도 없고 까닭도 모른 채 징용이라는 이름으로 강제 연행되고 생계라는 이름으로 이주하여 온갖 고초와 핍박 속에 목숨을 이어갔던 식민지의 민초는 졸지에 흔적없이 목숨까지 내주었다”며 “오늘의 이 위령제를 계기로 생존 피해자를 돕고 치유할 원폭피해자 지원특별법이 하루빨리 제정되기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불교종단단협의회는 오는 15일 오전 10시 일본 히로시마평화공원 내 회의장에서 중국·일본 불교계와 함께 세계평화기원대회를 봉행할 예정이다.

한편, 지난 8일 일본대법원은 한국인 원폭 피해자 이홍현 씨 등이 일본에 살지 않는다는 이유로 의료비를 전액 지급하지 않는 것은 부당하다며 일본 오사카부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치료비를 전액 지급하라는 판결을 확정했다. 이 판결이 나자 14일 원폭 피해자가 많은 경남 합천군 군의회에서는 정부가 원폭 피해자 지원 특별법을 제정할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떨어뜨린 미국이 피해자 배상 등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여론도 제기되고 있다.

▲히로시마 평화공원 내 마련된 한인 희생자 위령비.
▲히로시마 평화공원 내 마련된 한인 희생자 위령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