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준의 육아父담] 설날 4C 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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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16 09:06 | 최종 업데이트 2018-02-16 09:06

설날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설렘도 기대도 없다. 부담과 스트레스만 늘어간다. 본가는 차로 2분 거리. 평소 자주 찾아뵙는데도 명절은 또 기분이 다르다. 분명 같은 사람들이 모였는데 기운이 다르다. 팽팽한 긴장감마저 흐른다. ‘시월드’ 본래의 모습이 이렇지 않을까? 시어머니는 시어머니대로, 며느리는 며느리대로 신경 써야 할 것이 많아지고 예민해진다. 입장에 따라 서운할 수도, 마땅치 않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남자는 마냥 편하냐면 그렇지도 않다. 며느리의 명절 스트레스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적지 않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누구 편을 들기도, 발 벗고 나서기도 어려운 상황이 펼쳐지고 그럴 때마다 무슨 일이라도 하면서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야 한다. 솔선수범과 중용의 자세가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늘 그랬던 것처럼 이번 설에도 4C(Care, Cheer, Clean, Card) 작전에 따라 맡은 바 임무를 수행하려 한다.

4C 작전의 첫 번째이자 가장 중요한 미션은 ‘Care’, 즉 돌봄이다. 음식준비를 하는 사이 아이를 보는 것, 핵심 중의 핵심이자 누군가는 해야 하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아빠의 고유 포지션이다.

우리집 명절음식 준비는 어머니가 나물과 탕국, 아내가 튀김, 동생(결혼한 남동생이다)은 모듬전을 담당하며 나름 분업화되어있다. 그렇게 밑작업부터 본작업까지 ‘전벤져스’의 맹활약 속에 하나둘 완성되어 가는 동안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며 일체의 방해 없이 음식 준비에 매진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나의 역할이다. 실로 책임이 막중하다.

대형 전기 프라이팬과 사방에 튀는 기름, 엎어지면 재앙 그 자체인 밀가루와 풀어 놓은 계란, 날카로운 칼과 가위, 사방에 위험과 불안이 도사리고 있다. 아이 손이 닿았을 때 어떤 비극이 발생할지 모른다.

이럴 때는 아이들을 데리고 떠나는 것이 상책이다. 놀이터를 배회하다가, 동네 산책하러 나간다. 시간이 더디게 간다 싶으면 좀 더 먼 곳으로 이동한다. 대형마트 시식코너를 기웃거리다 장 보러 나온 사람들에 떠밀려 결국 키즈카페에 입성한다. 일분에 한 번씩 시계를 보며 하얗게 태우고 나니 이제 들어와도 좋다는 승인이 떨어졌다. 이렇게 명절음식 준비에 아빠도 한 몫 거들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한결 가볍다.

두 번째. ‘Clean’은 설거지와 청소다. 음식을 하고 나면 뒷정리도 만만치 않다. 이럴 때 퍼뜩 “설거지는 내가 할께”라며 손을 들고 나서는 순발력이 필요하다. 양은 많지 않은데 냄비, 프라이팬, 쟁반, 부피 큰 것들이 많아 쉽지 않은 작업이다. 싱크대 바닥이 물난리가 나기 일쑤여서 반드시 양말은 벗는 게 좋다. 모든 설거지가 그렇듯이 새로운 설거지 꺼리는 끊임없이 나오지만, 명절선물을 받듯이 웃으며 반기는 태도는 설거지꾼의 필수다. 잊지 말자. 스마일.

그다음 청소기를 돌리고 걸레질하고, 쓰레기까지 배출하고 나면 Clean의 완성이다. 그제야 ‘너는 뭐했느냐’는 원망의 시선에서 완전히 자유롭다. 거기에 느끼한 속을 달래줄 라면까지 끓여 내온다면 금상첨화라 할 수 있다. 원래 명절에는 라면과 짬뽕이 제일 맛있는 법. 가족들의 찬사와 환호를 한 몸에 받을 것이다. 세 번째. ‘Cheer’는 칭찬과 격려다. 소쿠리에 가득 담긴 음식을 손가락으로(반드시 손가락으로 훔쳐먹듯 먹어야 한다) 살짝 집어먹으며 ‘맛있네’, ‘잘했네’, ‘작년보다 나은데’와 같은 칭찬세례를 퍼부어야 한다.

정신없는 칭찬 속에 음식을 준비한 이들은 이번 명절을 통해 한 단계 레벨 업이 되었다는 성취감을 느낄 수 있고 나아가 천직이라는 착각에 빠질 수도 있다. 감히 간이 짜다, 싱겁다, 덜 익었다, 탔다 하는 평가는 절대 금물이다. 사람 입맛은 비슷해서 어차피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도저히 잘했다는 말이 안 나온다면 “그래도 괜찮은데~” 정도로 마무리하자. 영혼을 듬뿍 담아. 칭찬은 찌짐도 춤추게 한다.

음식준비와 제사까지 무사히 마쳤다면 이제 사위노릇을 할 때이다. 이때 빠질 수 없는 것이 명불허전 ‘Card’ 놀이, 고스톱이다. 고스톱은 전국의 룰이 다르지만 홈 어드벤티지를 적용해 처갓집의 룰을 적용하기로 한다.

코주부의 쓰임새와 쌍피의 적용 여부, 광 팔기의 기준은 물어서도 따져서도 안 된다. 게임에 들어가면 딱 본전만 하자는 결심으로 영리하게 잘 치는 것이 중요하다. 너무 잘 쳐서 약 오르게 해서도 안 되고, 너무 못 쳐서 놀림감이 되는 일도 없어야 한다.

웃자고 하는 놀이에 죽자고 덤벼들면 안 된다는 것은 명심, 또 명심. 혹시 운이 좋아 따더라도 따도 돌려주기 없다고 했던 굳은 약속은 지워버리자. 반드시 돌려드려야 한다. 괜찮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그 타이밍에 슬쩍 용돈까지 얹어 드리면 얼굴에 웃음꽃이 만발할 것이다. 비로소 분위기 잘 맞추는 사위로 미션 클리어했다.

설 연휴를 앞둔 오늘, 어린이집에서 한복을 입혀 보내라고 한다. 불편하다고 벗으려는 아이를 반강제로 달래가며 억지로 옷을 입혀 보냈다. 옆에 있던 누나는 내심 부러운 눈치다. 미련을 가득 담은 한 마디. “나도 한복입고 싶다.” 어쩐지 올해는 유치원에서 한복 이야기가 없다.

한창 멋을 내고 ‘명절 인증샷’을 찍어야 하는데 말이다. 이제 학생이 되면 예쁘게 보였던 것들이 유치해지고, 한복 입을 일은 점점 줄어들 것이다. 그래도 아들 한복 덕분에 명절 기분이 약간 난다. 그래, 만만치 않은 명절이지만 우리에게는 최종 병기 아이들이 있다. 피곤함도 긴장감도 아이들 재롱 한번이면 싹 달아나지 않겠는가. 부디 모두 아이들 웃음 같은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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