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1987] (10) 도둑놈들의 기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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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28 10:32 | 최종 업데이트 2018-02-28 12:47

시간이 흐르면서 청주교도소에도 많은 정치범들이 들어차기 시작했다. 내가 처음에 와 있던 사동에는 청주지역에서 운동하다 잡혀 온 이들이 들어왔다. 그리고 다른 사동에는 전국에서 형이 확정돼 이감 온 정치범들이 들어차기 시작했다.

교도소에서도 매 절기가 되면 기념식이 거행되기 시작했다. 3.1절부터 시작해서 4.19, 그리고 5.18, 나름 형식을 갖추어 각자가 맡은 역할들을 수행하였다. 사회자, 성명서 낭독 등등. 1986년 5.18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구호를 외치는데 안에 있던 재소자들이 조금씩 따라 하기 시작했다.

“살인마 전두환을 타도하자!”
“타도하자! 타도하자! 타도하자!”

선창에 이은 후 삼창은 그동안 몇 번의 기념식으로 재소자들에게도 익숙했던 모양이었다. 기념식 중간쯤 되자 구호 소리로 온 교도소가 떠나갈 듯하였다. 교도관들이 복도를 뛰어다니며 그만하라고 해도 소용이 없었다. 교도소의 통제가 무력화되기 시작한 것이었다. 거의 폭동의 상태였다. 교도소 측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조금 있자 교도관들이 떼로 몰려왔다. 평상시 우리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관구주임 최○○이 내 방 앞에서 진두지휘했다. 그는 우리들의 분류로 매파에 속한다. 보안과장과 그가 매파고 교도소장과 현주임이라고 하는 사람이 비둘기파를 형성했다. 교도소 생활에서 우리들은 그들의 사이를 적절하게 이용하고자 했다.

기념식이 끝나자 강제로 전방을 시켰다. 교도관들에게 붙들려 교도소 북측 맨 끝 병사(病舍) 옆 사동으로 옮겨졌다. 이미 그곳에는 서울서 온 김○○, 오○○, 그리고 현재 사드배치철회 성주투쟁위의 위원장으로 있는 김충환 형 등이 있던 곳이었다.

나를 강제로 그곳에 밀어 넣은 후 관구주임 최○○이 내 방문 앞에서 비아냥거렸다.

“류동인 씨 거 봐라 내가 뭐라 했나? 고분고분하게 수용생활 하라 그랬지?”

문은 닫혀있고 성질은 나고 결국 A4용지만하게 난 창문으로 목에서 올라온 걸쭉한 내용물을 그의 얼굴을 향해 뱉어버렸다. 찐득하니 그의 눈으로 가서 딱 붙어버렸다. 그것으로 서로가 충분했다. 그는 나에 대한 비아냥거림을 멈추기에, 나는 올라온 화를 삭이기에….

나만 그쪽으로 옮겨온 것이 아니라 각 사동에 흩어져 있던 정치범들이 동일한 방식을 통해 모두 모인 것이었다. 사실 이런 사달이 나기 전부터 교도소는 정치범들이 늘어나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하루는 창밖이 시끄러워서 밖을 내다보니 옆 사동의 바깥쪽 마당에서 관구주임 한 명이 사동 쪽을 바라보며 밖으로 쓰레기를 버렸다고 욕을 하고 있었다. 그것을 듣고 있던 고대 부학생회장 출신인 김○○이 참지 못하고 같이 욕을 해댔다. 그의 욕은 참 찰졌다. ⑲금이다.

⑲“야 이 시밸넘아, 왜 욕을 하고 지랄이고, 이리 올라와 봐라”

뒤에 들은 이야기인데 뚱뚱한 몸매의 그 관구주임이 올라갔고, 그를 김○○과 다른 친구가 붙들고 세면장 욕조에 처박아 넣으려고 했다고 한다. 그는 죽는다고 소리치고 결국 교도관들이 와서 말려 겨우 끝났다고 했다.

사실 이런 일들은 흔하게 발생했다. 교도소의 권위가 완전히 뭉개지고 있었고, 이런 것들이 우리를 모두 한쪽에 모은 이유였던 것 같다.

옮겨간 방은 새로운 페인트로 잘 칠해져 있었다. 충환 형의 꼬장질 때문이라고 했다. 자기가 박근혜도 아닌데 더러워서 들어가지 못하겠다고 버텨서 새롭게 칠하도록 했다고 한다. 특혜다. 이런 적폐는 청산되어야 한다.

사실 그쪽 사동은 징벌방으로 사용되던 곳이어서 청결 상태가 매우 엉망이었다. 그렇게 모두가 한 곳에 모여 감방 생활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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