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정의당의 선택, 몰락한 일본사회당을 잊지 말자 /김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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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19 11:34 | 최종 업데이트 2018-03-19 11:35

플레이스테이션4 <북두와 같이>란 게임을 하는 중이다. 만화와 애니메이션으로 유명한 <북두의 권>에 야쿠자를 주제로 한 <용과 같이>란 게임 시스템과 스타일을 적용한 것이다. 게임이 전반적으로 좀 어설프다는 느낌이지만 돈을 주고 샀으니 끝장을 봐야 한다는 일념으로 투쟁하듯 붙들고 있다(그만두고 <몬스터 헌터 월드>로 복귀할까 심각하게 고민 중이다).

▲PS4 게임 '북두와 같이' ©세가

<북두의 권>은 멸망 이후의 세계를 다룬다. 사회가 붕괴했으므로 오로지 약육강식의 논리만이 통용된다. 주인공은 손가락 하나로 사람을 형체도 남기지 않고 죽일 수 있는 강력한 권법가이다. 이 힘을 이용해 자신이 원하는 이런저런 일들을 해나가는 게 작품의 주요 내용이다. 혹시 이게 일본인이 생각하는, 북한, 중국, 러시아, 미국에 둘러싸인 일본의 보통국가적 모습인가 싶은 생각이 잠시 들 때도 있다.

<북두와 같이>는 원작엔 없는 ‘에덴’이라는 작은 도시를 무대로 하고 있는데, 이런 배경과는 좀 이질적인 존재들도 잠시 등장한다. ‘에덴 치안위원회’를 자처하는 이 사람들은 주먹이 아닌 대화와 협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신념으로 뭉쳐있다. 주인공은 이들의 주장에 따라 불한당들을 상대로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을 시도해보지만,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결국 예의 강력한 권법을 동원하지 않을 수가 없다. ‘에덴 치안위원회’의 위원장은 이 와중에도 포기하지 않고 어설프게 대화로 갈등을 중재해보려다가 악당의 주먹을 맞고 숨진다.

위원회니까 위원장과 위원이 있는 것은 당연한데, ‘서기장’의 존재는 의미심장하다. 한 조직에 위원장과 서기장이 함께 있는 모델이라면 역시 일본사회당이나 일본공산당 등을 떠올리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철 지난 이상을 말하다 결국 자멸했다는 식의 서사도 일본의 혁신계 정당이나 우리나라의 진보정당을 향한 전형적 인식을 떠올리게 한다.

멸망 이후에 댈 바는 아니겠지만 오늘날의 일본 정치는 혼란의 연속이다. 아베 신조 정권은 연이은 사학스캔들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애초 추대까지 예상할 수 있을 정도였지만 이 사건 때문에 아베 신조의 내각총리대신 3연임은 장담할 수 없게 됐다. 9월 자민당 총재 선거를 앞두고 당내 각 파벌은 합종연횡과 이합집산을 모색하는 분위기다.

자민당 내에서 좌충우돌하며 반 아베 신조 깃발을 앞장서 들어왔던 이시바 시게루 전 간사장이 유력한 총리 후보로 부상하고 있다는 보도도 있다. 당내 지지기반이 크지 않다는 게 약점이지만 이른바 누카가파가 이시바 시게루 지원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도 한다. 누카가파는 최근 세력을 재편한 아소 다로 부총리 겸 재무대신의 파벌을 제하면 가장 체급이 크다. 이외에 이케다 하야토 전 총리가 만든 파벌인 고치카이(宏池会)를 이끄는 기시다 후미오 전 외무대신도 ‘포스트-아베’의 주요 인물로 거론된다.

그러나 총리가 바뀌어도 보통국가화와 재무장을 기본으로 하는 자민당 정권의 대외정책은 바뀌지 않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이시바 시게루는 과거사 문제에 전향적인 태도를 보여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결국 재무장 실현을 위해 주변국가와 갈등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논리에 근거하고 있다. 기시다 후미오의 경우 온건파를 자처하고 있으나 2015년 한일위안부 합의를 주도하는 등 현 정권의 대외정책 방향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은 신세다.

왜 총리가 바뀔 위기가 되어도 정권 교체는 기대하기 어려운 정치가 유지되는 것일까? 야당이 대안이 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이른바 혁신정당의 붕괴와 신자유주의 개혁을 빼놓고 설명하기 어렵다. 전후 일본정치는 장기간 자민당과 일본사회당이라는 양당 중심 구도가 지탱했다. 이 구도는 처음엔 보혁대립으로 보였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두 정당이 ‘돈과 권력에 기반한 이익 중심의 정치’와 ‘이상만 말하고 책임은 지지 않는 무기력한 정치’를 대표하게 되면서 하나의 기득권 연합으로 비치게 되었다. 아마 ‘에덴 치안위원회’의 등장은 이런 사회적 기억이 바탕이 된 게 아닌가 생각한다.

이때 ‘개혁’의 기수를 자처한 것은 오자와 이치로 등을 대표로 하는, 자민당을 뛰쳐나온 신자유주의자들이었다. 이들은 양심적인 귀족처럼 보였던 호소카와 모리히로와 자민당과의 연정으로 사실상 일본사회당의 관뚜껑을 닫은 걸로 평가할 수 있는 무라야마 도미이치, ‘리버럴’을 자처하는 소수 세력 등을 내세워 1990년대 일본 정치를 쥐락펴락했다. 이후 잠시 정권을 잡았다가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를 계기로 권력을 상실하고 몰락한 민주당은 이들의 후신으로 볼 수 있다.

물론 ‘개혁’이 이들만의 전유물은 아니었다. 요시다 시게루를 기원으로 하는, 안보 문제는 미국에 의존하고 국가 주도의 고도발전에 집중한다는 전후 정치의 패러다임을 사실상 끝낸 나카소네 야스히로나 1990년대 후반 자민당 정권을 다시 찾아 온 하시모토 류타로, 당내에서 그를 꺾은 고이즈미 준이치로가 모두 기성 정치에 대한 일종의 안티테제로서 ‘개혁’을 내세우며 글로벌 신자유주의 체제를 일본에 이식하고 보통국가화를 추진했다.

이 기간에 일본사회당을 비롯한 혁신정당들은 대안을 만들지 못해 스스로 무너졌다. 물론 결정적인 타격은 나카소네 야스히로가 국철민영화를 추진해 노동조합의 붕괴 및 중도화를 촉진해 지지층을 와해시킨 것에서 왔다. 그러나 이 난국을 극복하지 못하고 일본사회당이 군소세력으로 끝내 몰락한 이유에는 신자유주의가 아닌 다른 ‘개혁’의 상을 제대로 제시하지 못하고 도이 다카코 등의 개인기에 의존한 영향도 크다고 볼 수밖에 없다.

놀랍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당연하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그동안 한국정치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1987년 6월 항쟁과 노동자 대투쟁으로 기득권 정치에 대한 개혁 요구는 정점에 이르렀으나 박정희 정권의 국가주의 패러다임에 맞서는 자리를 차지한 것은 민주화와 신자유주의의 조합이라는, 이질적이면서도 세계표준에 부합하는 종류의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이는 사람들에게 많은 고통을 주었기에 이와는 다른 대안을 만들어 내려고 했던 민주노동당으로 대표되는 진보정당은 2천년대 들어 유의미한 정치적 영향력을 획득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한국의 진보정당이 일본사회당의 전철로부터 과연 자유로울 수 있을지는 솔직히 낙관하기 어렵다. 올해로 민주노동당이 쪼개지고 진보신당이 창당된 지 10년이 되었지만 그동안 진보정치는 새롭게 거듭나기는커녕 후퇴를 거듭해 황폐해졌다. 민주노총으로 대표되는 조직 노동운동은 이제 사실 여부와는 관계없이 또 하나의 기득권으로 여겨지고 있다.

현실정치 내에서 진보정당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정의당은 민주평화당과 공동교섭단체를 꾸리기로 했는데, 이는 ‘대안’을 모색하는 게 아니라 현 정권의 왼쪽 날개 정도로 스스로의 역할을 규정하는 느낌을 주고 있다. 물론 원내의 진보정당 현실을 감안하지 않는 극단적 행보를 주문하자는 것은 아니다. 이는 오히려 관성적인 것일 게다. 지금 하고자 하는 말은 원내전략에 있어서 유연하더라도 이를 통해 스스로 어떻게 대안이 되겠다는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청사진은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평화당과 공동교섭단체 구성과 관련해 정의당 이정미 대표와 노회찬 원내대표가 6일 오전 국회 본관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남소연 기자

앞서 악당의 주먹에 쓰러진 ‘에덴 치안위원회’의 위원장은 ‘위원장의 펜’이란 아이템을 유품으로 남긴다. 권법으로 난세를 헤쳐 나가는 걸 숙명으로 하는 주인공은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말을 곱씹으며 잠시 주변을 돌아본다. 이 펜을 오래 확대 주시하는 카메라의 시선에는 현실의 손해를 무릅쓰고 이상을 추구하는 몸짓에 대한 애정과 체념이 동시에 담겨 있는 듯도 하다.

펜이 어쨌든지 앞으로도 주인공은 무지막지한 주먹을 휘두르며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주변적으로나마 그려진 이런 이상에 대한 호의가 진보의 원동력 중 하나라는 것도 부정할 수는 없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말을 누가 모르느냐, 현실은 어쩔 수 없다”는 인식을 “그래도 펜이 칼보다 강해야 한다”로 바꾸는 게 진보정치의 사명이라는 것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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