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의 시적 여정] (20) 혁명은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

14:55

[=황규관 시인이 연재하는 ‘김수영의 시적 여정’은 매달 5일, 20일 뉴스민에 연재한다. 인용된 작품의 전문 수록은 저작권자와의 협의를 마쳤습니다.]

6월 21일 일기에는 “다음은 빈곤과 무지로부터의 해방”이라고 적혀 있는데 그에게 혁명은 이렇게 구체적인 것이어야 했다. 따라서 특정 사건이 혁명이냐 아니냐를 언어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그것은 물질적 토대에서의 구체적인 변화가 있어야 하며, 그리고 시의 입장에서는 그 구체적인 변화가 정신적, 이념적 변화까지 일으켜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절대적 완전을 수행하는” 것일 게다. 그것 없이 “새까맣게 손때 묻은 육법전서가/ 표준이 되는 한/ (…)/ 4·26혁명은 혁명이 될 수 없다”. 어쩌면 김수영은 이미 혁명의 퇴행을 예감했는지도 모르겠다. “피의 냄새”를 거부하기 시작하는 경향을 의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혁명 발발 2개월도 되지 않아 그는 「푸른 하늘을」이라는 침통한 시를 쓰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푸른 하늘을 제압하는
노고지리가 자유로웠다고
부러워하던
어느 시인의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자유를 위해서
비상하여 본 일이 있는
사람이면 알지
노고지리가
무엇을 보고
노래하는가를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를
혁명은
왜 고독한 것인가를

혁명은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

_「푸른 하늘을」 전문

이 작품은 6월 15일에 쓴 것으로 표기되어 있는데, 6월 16일 일기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4월 26일> 후의 나의 정신의 변이 혹은 발전이 있다면, 그것은 강인한 고독의 감득(感得)과 인식이다. 이 고독이 이제로부터의 나의 창조의 원동력이 되리라는 것을 나는 너무나 뚜렷하게 느낀다. 혁명도 이 위대한 고독 없이는 되지 않는다. 두말할 나위도 없이 혁명이란 위대한 창조적 추진력의 부본(複本, counterpart)이니까. 요즈음의 나의 심경은 외향적 명랑성과 내향적 침잠 혹은 섬세성을 완전히 일치시키는 데 성공하고 있다. 졸시 「푸른 하늘을」이 약간의 비관미를 띠고 있는 것은 역시 격려의 의미에서 오는 것이리라.

사실 「푸른 하늘을」에서 어떤 침통함이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지만, 작품에 힘이 여전한 것도 사실이다. 행의 길이가 짧으면서 강인함을 보여주는 것은 단지 강렬한 시어들 때문만은 아니다. 쓰인 시어가 강한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시가 주는 기운이 자동적으로 강해지는 것은 아니다. 그 자신의 말대로 “도대체가 시라는 것은 그것이 새로운 자유를 행사하는 진정한 시인 경우에는 어디엔가 힘이 맺혀 있는 것이다.”(「생활현실과 시」) 비록 ‘고독’을 노래하고 있는 작품이지만 힘이 이 작품에 맺혀 있는 것은, 이때 당시의 고독은 “병든 자의 도피”로서의 고독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가 일기에서 밝혔듯이, 그 고독은 “강인”이며 “변이 혹은 발전”인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1960년 초의 이른바 혁명시에서, 그러니까 「하…… 그림자가 없다」 「우선 그놈의 사진을 떼어서 밑씻개로 하자」 「기도―4·19순국학도 위령제에 부치는 노래」 「육법전서와 혁명」의 흐름에서 김수영의 정치적 인식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는 것을 읽을 수 있다. 먼저 「하…… 그림자가 없다」에서는 아마도 3·15 부정선거에 맞선 학생들의 시위와 현실의 소용돌이에서 자신감을 얻지 못해서였는지 “민주주의의 싸움이니까 싸우는 방법도 민주주의식으로 싸워야 한다”며 “민주주의식”에 방점까지 찍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우선 그놈의 사진을 떼어서 밑씻개로 하자」에서는 “아아 어서어서 썩어빠진 어제와 결별하자”고 외치다가, 「기도―4·19순국학도 위령제에 부치는 노래」에서는 “아아 슬프게도 슬프게도 이번에는/ 우리가 혁명이 성취되는 마지막 날에는/ 그런 사나운 추잡한 놈이 되고 말더라도” “솜털만치도 아프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앞에서 예로 든 것처럼 「육법전서와 혁명」에서는 “기성 육법전서”를, 즉 체제 자체를 정면으로 부정하고 비판하면서 “혁명이란/ 방법부터가 혁명적이어야”한다고 부르짖고 있다. 이미 지적했듯이 김수영에게 혁명의 척도는 “달걀값” 같은 구체적인 생활 상황이며 반혁명의 조짐은 치솟는 “금값”이다. 이런 현실에서 그러니까 생활의 변화가 수반되지 않는 상황에서는 ‘혁명’을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이 “학생들의 선언문하고/ 신문하고/ 열에 뜬 시인들이 속이 허해서” 하는 말일는지는 모르겠지만, “창자가 더 메마른 저들은/ 더 이상 속이지 말아라”라고 질타한다.

이렇게 김수영의 정치적 의식은 구체적인 역사의 흐름 속에서 고양되며 그의 일기의 메모대로 “변이 혹은 발전”해왔다. 훗날 이 급진적 전환이 겪어야 할 낙차에서 오는 고통은 그 자신의 몫이 되겠지만, 아무튼 숨가쁘게 진전하는 상태인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하지만 유념해야 할 것은, 그의 정치적 인식의 급진화와 더불어 시적 인식이 함께 벼려지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6월 16일의 일기를 보면 앞에서 말한 “정신의 변이 혹은 발전” 말고도 또 하나의 변이를 말하고 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변이…….
시의 운산(運算)에 과거처럼 집착함이 없다. 전혀 거울을 아니 들여다보는 것은 아니지만 놀라울 만치 적어진 것이 사실이다. 기쁜 일이다. 투박해졌는지? 확실히 투박해졌다. 아니 완전한(혹은 완전에 가까운) 스데미이다. 그 대신 어디까지나 조심해야 할 것은 스데미를 빙자로 한 안이성이나 혹은 무책임성!

자신의 작품이 투박해진 것에 대해서 그는 그것을 “변이”라고, 그것도 “기쁜 일”이라고 한다. 4·19혁명 전후로 시작해서 김수영의 시는 마치 시 밖으로 걸어 나올 태세를 보여준다. 그만큼 그에게 혁명의 영향은 압도적이었으며, 현실에서 벌어지는 소용돌이를 두려워하지도 않았고 의심하지도 않았다. 그에게는 “하늘에 그림자가 없듯이 민주주의의 싸움에도 그림자가 없”기 때문이었다. 1950년대 작품에서도 드러났고, 훗날 1960년대의 뛰어난 작품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김수영이 시적 건강을 얻었을 때는 그의 시에는 바로 “그림자가 없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그것은 운명에 대한 믿음과 운동하는 현실에 대한 긍정이 낳은 건강에 다름 아니었다.

그 건강은 「푸른 하늘을」에서 묘한 결과를 낳는다. 그의 일기에서 봤듯이 그는 이 시기에 스스로 “외향적 명랑성과 내향적 침잠 혹은 섬세성을 완전히 일치시키는 데 성공하고 있다” 밝게 말하고 있을 정도로 득의에 차 있었다. 자신의 시에 대해 이렇게 자신 있는 발언을 할 수 있었던 것은, 1960년에 쓴 산문 「저 하늘이 열릴 때」에서 고백했듯, 4·19혁명을 통해 자신의 “온몸에는 티끌만한 허위도 없”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월북한 친구 김병욱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글 형태의 이 산문에서 김수영은, 그가 느낀 절대 자유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물론 여기서 4·19혁명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문제는 김수영이 4·19혁명을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남김없이 자기화시켰다는 점이며 4·19혁명이라는 “사건의 아들”(질 들뢰즈)이 되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김수영의 내면을 더듬으면서 동시에 반동의 조짐을 그가 예민하게 의식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겹쳐보면 「푸른 하늘을」이 얻은 독특한 효과를 읽어낼 수가 있다. 이 잠언 투의 시는 별다른 분석을 요구하지 않는다. “자유를 위해서/ 비상하여 본 일이 있는/ 사람이면” “노고지리가/ 무엇을 보고/ 노래하는지를/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를” 알기 마련이라는 발화가 시의 뼈대를 이루며 그것을 아는 이는 “혁명은/ 왜 고독한 것인가를// 혁명은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 안다는 단언이 화룡점정을 이루고 있다. 이제 그는 “상대적 완전”으로서의 현실 혁명을 통해 “절대적 완전”으로서의 시를 얻었고, 따라서 “시의 운산(運算)”에도 그렇게 집착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해 그는 현실 혁명이 설령 반동으로 치닫는다 해도 그것을 이겨낼 힘을 얻었으며, 시의 형식미 따위도 걷어찰 수 있는 자신감이 생겼다는 것을 표방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태를 “고독”이라 부를 수 있는데 혁명의 아들인 김수영은 아예 “혁명은” “고독한 것”을 넘어 “고독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가” “정치의 철칙이” 된 제2공화국에 들어서자 김수영의 언어는 냉소적으로 변한다. 6월 30일 일기에는 “제2공화국! 너는 나의 적이다. 나는 오늘 나의 완전한 휴식을 찾아서 다시 뒷골목을 들어간다”고 적었는데, 이런 제2공화국에 대한 경멸과 냉소는 곧바로 시로도 나타나게 된다. 「만시지탄은 있지만」이나 동시 「나는 아리조나 카보이야」 그리고 「거미잡이」는 그러한 심리 상태에서 써진 작품들이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냉소는 예전과 다른 것이라고 강변하고 있다. 6월 30일 일기의 다른 문장에는 이제 “뒷골목을 들어”가지만 “거기에는 어제의 나는 없어!”라고 일갈하며, 「거미잡이」에서는 “남편은 어제의 남편이 아니라니까/ 정말 어제의 네 남편이 아니라니까”라고 말하지만 거기에는 예의 신경질과 예민한 자의식이 별 수 없이 묻어 있다. 다시 일기에, 자신의 새로운 적인 제2공화국에게 “내가 먹고 난 깨끗한 뼉다귀나 던져주지”라고 쓰기까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