쌓여있는 의료비 건강보험 흑자 17조원, 이제는 돌려받자

[기고] 건강보험 흑자 17조를 국민에게!

15:53

건강보험 흑자가 17조원으로 알려졌다. 국민이 병원 이용을 못해 아프고 죽어가고 있는데도 공단에는 엄청난 재정이 쌓여있는 것이다. 이 기막힌 현실을 아는 국민이 아직 많지 않다.

정부는 늘 돈이 없어 복지가 힘들다는 듯 말해왔다. 올 초부터 입원비 부담을 높이는 방식으로 환자의 빠른 퇴원을 부추겨 건강보험 지출을 줄이겠다고 해왔고, 복지 재정을 절감하겠다며 의료수급권자들의 각종 의료비 지원을 깎겠다고도 발표했다. 한편으로는 복지를 하기 위해선 국민이 돈을 더 내야 한다는 주장도 빼놓지 않았다.

그런데 실제로는 무려 17조원이라는 돈이 곳간에 쌓여있는 것이다. 한 해 건강보험 재정의 절반에 가깝고 전체 일 년 국가예산의 20분의 1에 해당하는 액수다. 돈이 남아도는데도 국민을 기만하고 있는 것이 이 나라 의료복지 정책의 실체다.

[출처=https://www.healthcareexecutive.in/]
[출처=https://www.healthcareexecutive.in/]

환자들의 피눈물 건강보험 흑자

매년 적자이거나 겨우 수지를 맞췄던 건강보험 재정이 어떻게 이처럼 남은 것일까? 정부는 건강검진과 예방을 잘해서 국민들, 특히 노인들이 건강해졌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과연 그럴까? 아파도 치료받지 못한 사람들 가운데 ‘돈이 없어서’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갈수록 늘고 있는 현실이 이를 반박한다. 사실 2008년부터 시작된 경제위기로 의료 이용이 줄어드는 것이 세계적 추세다. 노인빈곤율이 50%에 육박하는 이 나라에서 경제위기의 여파는 사람들에게 심각한 영향을 줬을 것이다. 즉 나빠진 가계 형편으로 아파도 병원에 가지 못한 사람들로 인해 건강보험 재정이 남게 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건강해진 노인 운운하는 정부 주장은 너무나 염치가 없다.

한국은 낮은 건강보험 보장성 때문에 병원 문턱이 높은 나라다. 의료비의 공적 보장이 55%밖에 안 되어 OECD 평균 80%에 훨씬 못 미친다. 진료비 상한액도 없어서 얼마가 나오든 절반의 의료비를 본인이 내야 한다. 이것이 사람들이 병원에 가지 못한 주된 이유가 됐다.

즉 17조는 높은 의료비 때문에 사람들이 아프고 죽어가며 남긴 피눈물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돈을 당장 의료비를 인하해 환자들이 치료받을 수 있도록 써야 한다.

건강보험 17조원으로 할 수 있는 일

17조원으로 환자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수없이 많겠지만, 대표적인 예를 몇 가지 들면 먼저 아래와 같은 일들이 가능하다.

일 년에 2조원만 써도 입원 환자들에게 가장 큰 부담인 간병비를 완전히 해결할 수 있다. 간병비는 한 달에 대략 200만원이나 돼서 입원했을 때 어지간한 노동자 서민 가족이 감당하기 힘들다. 결국, 이 돈을 내지 못하면 가족이 직접 간병을 하면서 병원 감염 위험을 무릅쓸 수밖에 없다. 그것이 이번 메르스 확산의 주된 원인 중 하나가 됐다. 건강보험 흑자로 간병비를 해결하면 입원비용을 낮추고 병원을 훨씬 안전한 곳으로 만들 수 있다.

연간 3조원만 쓰면 모든 국민이 건강보험 입원 본인부담금을 전혀 내지 않을 수도 있다. 가족이 중병으로 입원하면 중산층도 휘청할 정도로 각종 검사비와 병실료 등 입원비는 너무 비싸다. 건강보험 흑자를 조금만 써도 환자와 가족을 옥죄는 질병과 입원비의 이중고를 없앨 수 있다.

일 년에 2조원을 쓰면 19세 미만의 청소년과 어린이들은 의료비를 내지 않아도 병원에 다닐 수 있다. ‘아이들부터 무상의료’를 이루어 돈이 없어 치료를 받지 못하는 많은 아이들의 생명과 건강을 지킬 수 있다.

게다가 건강보험 흑자 17조원의 일 년 이자만 3,400억원이다. 이 돈이면 진주의료원과 같은 국립병원을 7개씩 지을 수 있다. 홍준표 지사는 1년에 50억 적자를 가지고 국민을 협박하며 진주의료원을 폐쇄했다. 그러나 우리가 낸 보험료의 이자수익만으로도 공공병원을 지킬 뿐 아니라 지금보다 더 많이 지을 수 있다.

정부는 왜 건강보험 흑자를 쓰지 않을까?

이 모든 건 우리가 낸 돈을 쓰기만 하면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정부는 이 흑자를 꼭꼭 숨기고 있고, 이 돈을 국민에게 내놓을 생각이 없어 보인다. 이유는 뭘까? 바로 정부가 흑자재정을 핑계로 국고 지원을 줄이려 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건강보험 재정 중 20%를 부담하게 된 규정이 내년에 만기가 되자 이를 줄이거나 없앨 계획을 갖고 있다.

흑자를 쓰지 않는 이유는 또 있다. 대형병원과 재벌기업들에 우리가 낸 건보재정을 퍼줄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격의료는 안전성과 효과성이 입증 안 된 의료기술 구축에 건강보험 재정을 쓰도록 하는 것이다. 정부는 제약회사를 위해서도 약값 인상으로 귀결될 각종 정책을 시행했다. 제약·의료기기 업체들의 상품개발 목적 임상시험을 건강보험으로 지원하겠다는 법과 상식을 무시하는 정책도 내놨다. 이처럼 정부의 의료민영화 정책은 국민들의 피 같은 돈이 대형병원과 의료기기, IT업체, 제약기업의 샴페인에 담기도록 설계돼 있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정부는 흑자를 쓰지 않으면서도 보험료를 계속해서 올리는 것이다. 노동자 서민들의 월수입 중 건강보험료로 빠져나가는 비율도 매년 오르고 있다. 말 그대로 마른 수건을 쥐어짜고 있다.

‘건강보험 흑자 17조를 국민에게’

[사진=보건의료단체연합]
[사진=보건의료단체연합]

경제위기보다 긴축이 사람을 죽인다는 연구 결과를 함축하여 긴축은 죽음의 처방전이라고도 불린다. 한국의 보건의료는 흑자재정 속 긴축으로, 그 죄질은 훨씬 더 무겁다. 흑자를 숨기면서 아픈 사람들 앞에 병원비를 내놓지 않는 정부는 소리 없이 수많은 국민을 죽음으로 몰아가고 있는 범인이다. 의료비가 넘쳐나는데도 사람들이 병원에 가지 못해 고통받는 지금의 현실은 이윤 중심의 이 사회 시스템의 모순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단면이다. 이것을 끝장내는 힘은 결국 건강보험 흑자를 국민에게 돌려달라는 노동자 서민들의 강력한 외침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

‘건강보험 흑자 17조를 국민에게’ 운동이 얼마 전 200여 개 시민사회단체와 노동조합과 함께 첫발을 내디뎠다. 서울을 시작으로 각 지역에서 운동이 시작될 예정이다. 9월 23일 서울대병원을 시작으로 매주 홍보 캠페인과 서명운동도 시작된다. 이 운동에 많은 국민의 지지와 응원이 절실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선 건강보험 흑자를 내 주변부터 알리는 것이다. 여러 작은 움직임이 전국으로 퍼져나가 분노와 염원이 퍼진다면 우리는 이 운동에서 승리할 수 있다. 건강보험 흑자 17조를 국민에게! 모두의 건강할 권리를 함께 쟁취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