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사람들은 왜 김어준의 음모론에 호응하는가 /이재훈

0
2018-04-16 09:56 | 최종 업데이트 2018-04-16 11:46

#1. 
SBS <김어준의 블랙하우스>는 지난달 22일 방송에서 성추행 의혹이 제기된 2011년 12월23일 정봉주 전 의원의 행적이 담긴 사진들을 공개했다. 당일 사진 780여장 가운데 일부였다.

방송은 이날 오후 1~2시쯤 사진을 집중적으로 보여주며 그 시간 정봉주 전 의원이 성추행 장소로 특정된 서울 여의도 렉싱턴호텔이 아니라 홍대 녹음실과 식당에 머물렀던 것으로 확인된다고 밝혔다. 성추행 사실을 부인한 정봉주 전 의원의 해명에 힘을 실어준 보도였다. 하지만 이후 성추행 피해자가 오후 5시 이후 렉싱턴호텔에 머물렀던 SNS 기록을 공개하고, “호텔에 가지 않았다”던 정봉주 전 의원도 오후 6시43분 이 호텔에서 카드를 사용한 내역을 발견하면서 사실상 성추행 사실이 인정됐다. 방송 제작진은 이후 “사건 전체의 실체에 접근하려는 노력이 부족하여 결과적으로 진실규명에 혼선을 야기했다”며 사과했다. 김어준 씨는 사과하지 않았다.

▲[사진=SBS 김어준의 블랙하우스 갈무리]

제작진과 김어준 씨는 정봉주 전 의원의 이전 해명들이 거짓임을 확인했을 여지가 충분했다. 첫째, 정봉주 전 의원은 기자회견과 보도자료를 통해 세 차례나 일관되게 23일 오후 1~2시 사이 어머니가 입원한 노원구 을지병원에 다녀왔다고 주장했다. 특히 지난달 12일 세 번째 보도자료에선 어머니가 응급실에 도착한 시간(낮 12시17분)과 입원한 시간(오후 1시) 기록까지 공개했다. <김어준의 블랙하우스>에서 공개한 사진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해명인데, 방송에선 아무런 검증을 하지 않았다.

둘째, 정봉주 전 의원은 <프레시안> 인터뷰를 통해 23일 정봉주 전 의원을 수행하고 렉싱턴호텔에 들어가는 걸 봤다고 주장한 ‘민국파’ 정대일 씨를 두고 “민국파가 저를 수행했다는 보도는 명백히 허위사실”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김어준의 블랙하우스>가 공개한 사진에는 정봉주 전 의원과 정대일 씨가 오후 1~2시께 홍대 근처 식당으로 함께 이동하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이 역시 방송에선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 정봉주 전 의원의 성추행 관련 행적을 확인할 수 있는 두 가지 결정적인 오류를 방송 전에 알지 못했다면 사건의 진실에는 관심 없었던 제작진과 김어준 씨의 직무 유기 정도겠지만, 충분히 알 수 있는 상황에서 이를 일부러 외면했다면 이번 사건은 김어준 씨의 ‘특수관계인’을 옹호하기 위해 공중파 방송을 사적으로 유용한 최악의 사례로 남게 된다.

#2.
김어준 씨는 지난해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더 플랜>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이 당선된 18대 대통령 선거를 ‘부정 선거’라고 규정했다. 근거로는 전국 개표소에서 투표지 분류기가 인식하지 못한 미분류표 가운데 박근혜 후보를 찍은 표가 문재인 후보를 찍은 표보다 1.5배 많은 양상이 지역과 선거구를 막론하고 일관되게 나타났다는 점을 들었다. 이것이 일종의 인위적인 설계, 즉 누군가의 ‘플랜’ 없이 불가능한 일이라는 게 김어준 씨의 결론이었다. 김어준 씨는 “이상하다고 생각하니까 이상하다고 말하는 것”이라며 “쪽팔리고 짜증이 난다. 거짓말하는 게 명백하게 보이니까, 거짓말하는 거라고 말해주고 싶은, 누구나 느끼는 그런 감정을 표현할 뿐”이라고 말했다.

이 영화가 개봉되고 한 달 정도 뒤에 있었던 19대 대선 미분류표 가운데 문재인 후보를 찍은 표는 홍준표 후보를 찍은 표보다 일관되게 1.6배, 안철수 후보를 찍은 표보다는 일관되게 1.24배 많았다. 김어준 씨의 논리대로라면, 문재인 후보의 ‘K값’은 1.6이 되어야 하고, 19대 대선도 부정 선거여야 한다. 김어준 씨는 침묵했다. 김어준 씨의 침묵은 그가 실체적 진실에는 관심이 없고, 이 상황을 그저 자신의 정치적 혹은 경제적 이익 추구에만 활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김어준 씨는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가 나란히 기호 1번이어서 투표용지에 다른 후보보다 상대적으로 위쪽 여백이 더 많다는 점, 이들이 선거에서 나란히 승리했을 만큼 득표가 많았기 때문에 투표 과정에서 나온 실수로 미분류표가 나올 가능성이 더 크다는 점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거나 일부러 외면했다. 더 큰 문제는 이 영화를 제작하기 위해 일반인 참여자 1만6000여명이 펀딩을 했다는 점이다.

김어준 씨는 역시 같은 펀딩을 통해 제작한 다큐멘터리 영화 <그날, 바다>를 최근에 공개했다. 이 영화 역시 세월호가 ‘수심이 얕은 해저를 지나다 닻을 내려 침몰했다’는 결론으로 몰아가기 위해 결론을 부정하는 다른 정황들과 세월호 참사를 낳은 사회 구조적 문제들을 외면한다. 1997년 IMF 구제금융 위기 이후 가장 큰 트라우마를 한국 사회에 안긴 세월호 참사의 고통마저 김어준 씨의 음모론을 위해 전유되고 있는 것이다.

▲[사진=영화 ‘그날, 바다’ 예고편 갈무리]

황우석 사건 때부터 이어진, 그러나 반복적으로 오류가 드러나고 있는 김어준 씨의 음모론은 왜 여전히 사람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걸까. 사회학자 전상진의 저서 <음모론의 시대>를 보면, 궁금증의 일단을 해갈할 수 있다. 그는 음모론이 유통되는 이유에 대해 “고통은 어떻게든 설명되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사람들은 과거에 견줘 “불공정과 불만족과 부정의와 불평등에 더 예민”해졌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 반이명박근혜라는 정치적 전선에 서 있는 이들에게, 음모론은 왜 자신들이 이명박근혜 시대를 견디며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필사적 물음에 대한 상상적 해결책’을 제시해준다.

그 ‘상상적 해결책’이란 첫째, 음모론을 통해 복잡한 사안을 단순하게 만들어 비난의 대상을 명확하게 선정할 수 있게 된다. 둘째, 음모론이 있으면 우연 따위는 인정하지 않고 모든 나쁜 일이 적의 ‘플랜’대로 짜인 결과라고 인식할 수 있게 된다. 음모론은 합리성이 결여된 이론이 아니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하나도 빈틈없이 착착 맞아 들어갔을 때만 성립 가능한, 이른바 ‘과잉 합리성’에 따른 결과다.

셋째, 음모론이 있으면 ‘착한 우리’와 ‘나쁜 그들’로 이분화해 ‘착한 우리’는 선량한 희생자의 지위를 차지할 수 있고, ‘나쁜 그들’은 악마화할 수 있게 된다. 이명박근혜 정부를 낳은 한국 사회에서 이명박근혜 지지자들을 악마화하고, 자신들은 희생자의 지위를 차지하는 것만큼 책임을 쉽게 면할 수 있는 자리가 있을까. 넷째, 결정적으로 음모론은 고통을 낳는 구조를 무시하고 고통의 이유와 원인을 사람의 모습으로 형상화할 수 있게 해준다. “불공정과 불만족과 부정의와 불평등”이 발생하는 이유가 비단 이명박근혜 체제에만 있지 않을진대, 음모론은 체제 안에서 안전하고 합법적인 방법으로 지배 계급을 비판하고 ‘착한 우리’로 인정받을 수 있는 정도로만 분노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음모론이 고통을 설명해주는 중요한 도구가 된 또 다른 이유는 “오래전부터 고통을 설명하던 이론들이 힘을 잃었”기 때문이다. 근대 이전에 그 이론은 종교였다. 마르크스는 “종교는 번민하는 자의 한숨이며 인정 없는 세계의 심장인 동시에 상태의 정신이다. 그것은 민중의 아편”이라고 말했다. 근대에 들어서며 사람들은 종교를 통해 고통에 대한 “만족할만한 답”을 얻지 못했다.

이때 등장한 것이 혁명적 정치 이데올로기였다. 하지만 정치 이데올로기 역시 더 이상 사람들의 고통을 설명해주거나 ‘혁명적 보상’을 약속하지 못하고 있다. 사람들은 냉전을 거쳐 정치적 승자가 된 자유주의적 정치 체제의 위선에 넌더리를 내고 있다. 자유주의적 정치 체제는 금융 자본에 관대하면서 정작 노동자들과 새로운 세대의 삶에 무관심하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배타적인 극우 정치에서 대안을 찾거나 혹은 음모론에 귀의해 고통의 이유를 책임 지울 ‘나쁜 그들’을 찾는다. 김어준 씨의 음모론이 반복되는 오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람들의 호응을 얻고 있는 것은, 음모론이 종교 혹은 정치 이데올로기의 대체자로서 냉소적 주체들에게 위안을 주는 데 성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음모론을 갈급하는 사람들보다 비판받아야 할 대상은 따로 있다. 단지 사람들의 고통을 이용해 음모론을 반복 유포하고 이를 바탕으로 자신의 정치적 혹은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는 김어준 씨와 같은 사람만 비판받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정작 사람들의 고통을 더 이상 설명해주지 못하고 ‘혁명적 보상’은 언급조차 하지 못하는 정치가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한국 사회의 정치는 우선 시민들의 정치적 지향을 오롯이 의회로 수렴하지 못하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10%의 지지율에 불과한 정당이 소선거구제와 지역주의에 의거해 의석수 3분의 1을 차지하고 제1 야당으로서 굳건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원내 진보 정당은 진보적 의제를 던지기는커녕 ‘여당의 이중대’라고 비난받아도 할 말이 없을 정도의 행보를 보이고 있다. 진보 정당의 핵심 정치인은 ‘혁명적 보상’ 혹은 진보적 의제를 제시하기보다 김어준 씨가 진행하는 TV와 라디오 방송에 단골 패널로 출연하는 데 골몰하고 있다. 김어준 씨가 ‘미투 공작론’을 유포하고 이후 정봉주 전 의원을 두둔하는 방송으로 공중파 사적 유용에 대해 비판받을 때, 김어준 씨의 사과와 하차를 요구한 게 정의당이나 더불어민주당이 아니라 바른미래당이라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노회찬(왼쪽), 김어준(오른쪽) [사진=SBS 김어준의 블랙하우스 갈무리]

정치는 김어준 씨의 인기에 편승해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 찾기에만 몰두하거나 함께 음모론을 유포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언론은 김어준 씨가 다루는 이슈를 가볍게 외면하거나 김어준 씨의 음모론을 시청률 재고 혹은 클릭 수 장사에 활용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이러니 복잡다단한 현실을 한없이 단순화시켜 가벼운 적대를 사람들의 눈앞에 제시하고, 한국 사회가 극복해야 할 구조적인 모순들을 뭉뚱그려 ‘나쁜 그들’을 찾는 데만 집중하게 하는 김어준 씨 같은 사람이 “거짓말하는 게 명백하게 보이니까, 거짓말하는 거라고 말해주고 싶은, 누구나 느끼는 그런 감정을 표현하는” 대상이 되지 못하고 책임에서 한없이 자유로운 모습으로 사람들을 현혹하고 있는 것이다. 2016년 촛불로 되찾은 한국 사회의 혁명적 열정이 겨우 이 정도의 음모론으로 대체되는 현실을 이제는 모두가 나서서 제어해야 하지 않을까.

tele
Print Friendly, PDF & Email
이재훈
기자. 서울신문과 메트로신문을 거쳐 현재 한겨레에서 일하고 있다. 주로 사회부에서 범죄 속의 사회적 모순, 빈민과 이주노동, 교육 격차 등을 취재했다. 공저서로 '안철수 밀어서 잠금해제'와 '저널리즘 글쓰기의 논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