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박능후 장관은 적어도‘희망원’에 왔어야 했다 /전근배

장애인의 날 맞아 발달장애인 수용시설 1박 2일 체험 나선 ‘촛불’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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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능후 장관이 장애인의 날을 맞아 서울의 한 발달장애인시설을 찾았다. 1박 2일 동안 시설을 ‘체험’했단다. 시설로 분리되는 것을 반대하고 지역에서 살 수 있는 예산을 요구하는 중증장애인들, 발달장애 국가책임제 도입을 호소하는 부모와 가족들의 가슴은 다시 무너졌다. ‘촛불혁명’을 자임하는 정부의 첫 장애인의 날, 국가는 또다시 시설로 향했다.

▲장애등급제 희생자 故송국현 씨 4주기 추모제 [사진=비마이너]

4월 17일, 장관이 시설을 찾은 날은 바로 ‘송국현’이 세상을 떠난 날이었다. 4년 전 30년을 시설에서 살다 어렵게 탈시설한 송국현은 장애등급제 탓에 활동보조를 이용하지 못한 채 화재로 목숨을 잃었다. 취임 초기 박능후 장관은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 폐지, 수용시설 정책 폐지를 약속했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기 전부터 차려졌던 광화문 농성장이 1,831일째 되는 날, 장관이 직접 농성장을 찾아왔다. 그날 장관은 송국현을 비롯한 열일곱의 희생자 영정에 머리를 숙였다. 그랬던 그가 송국현의 죽음에 공동정범인 시설을 찾아 이번엔 웃음 지었다.

이해하고 싶었다. 어차피 대한민국의 장애인복지는 ‘시설’을 빼면 그 무엇도 남아있기 힘들지 않은가. 그런데도 한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굳이 시설을 가야 했다면, 박능후 장관은 희망원에 왔어야 했다. 희망원에서 일어났던 일들에 대해 그곳에 수용된 장애시민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했어야 했다. ‘이런 복지시설을 정부가 몇 번이고 최우수복지시설로 표창했습니다’, ‘이런 줄 정말 몰랐습니다’하고 변명이라도 했어야 했다. 대통령 공약임에도 희망원 탈시설 예산이 ‘0원’인 이유에 대해 이해를 구하고, 적극적인 예산 확보방안을 발표했어야 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 [사진=보건복지부]

장관이 방문한 발달장애인 시설의 대표는 한국장애인복지시설협회장이다. 협회는 전국의 사회복지법인과 함께 ‘사회복지법인 및 사회복지시설 정체성 유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를 결성하고, 2011년 도가니 사태로 인해 발의된 공익이사제 도입 법안 개정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탈시설에 반대하지 않는다고 하나, 현실의 탈시설을 위한 제도와 법률에서는 늘 시설의 이해관계를 대표했다.

박능후 장관은 알고 있었을까. 이번 장애인의 날을 기념해 한국장애인복지시설협회장이 선정한 표창 시설에 대구시립희망원이 이름 올린 사실을 말이다. 범죄시설로 탈시설을 추진하면서 폐쇄하겠다는 정부의 대상시설에 협회가 보란 듯이 상을 준 기막힌 현실을 말이다. 이정도면 장애인이 시설에서 실종된 후 변사체로 발견되어 국가인권위원회가 조사 중인 대구의 한 재활원도 선정되었음이 놀랍지 않다.

정부는 스스로 어느 곳에 있어야 하는지 여전히 헷갈리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원래의 자리를 찾아가려고 애쓰는 것일까. 분명한 것은 박능후 장관의 이번 방문이 단순한 행사가 아니라 향후 장애인정책의 기조를 짐작게 하는 중요한 행보였단 점이다. 그리고 그 길이 장애인과 그 가족들의 바람과는 반대 편으로 향하고 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