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불편하고 어려운 게임 ‘몬스터 헌터’가 인기 있는 이유 /김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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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 헌터 월드>는 공룡처럼 생긴 괴물을 사냥하는 게임이다. 주인공은 ‘헌터’라 불리는데, 괴물을 사냥해서 얻은 아이템으로 각종 장비를 강화해 더 강한 괴물을 사냥하는 걸 반복하는 게 게임의 큰 줄기다. 나름 스토리라인이 있지만 구색에 불과할 뿐이다. 네트워크 기능을 이용해 다른 사람과 함께 사냥을 할 수도 있다. 혼자 하는 게임보다는 여럿이 하는 게임의 특성이 강하다.

[사진=몬스터 헌터 월드 갈무리]

<몬스터 헌터>는 휴대용 게임기를 중심으로 발전된 시리즈다. 최초작은 플레이스테이션2를 플랫폼으로 제작됐지만 플레이스테이션3과 플레이스테이션 포터블(PSP)의 ‘ADhoc Party’을 활용한 <몬스터 헌터 포터블>이 큰 인기를 끌면서 PSP와 닌텐도 3DS를 기반으로 한 시리즈가 연이어 출시되었다. <몬스터 헌터 월드>에선 거치용 콘솔인 플레이스테이션4으로 다시 돌아온 셈인데, 제작사인 캡콤의 사상 최대 판매량 기록을 경신했다.

인기 시리즈이지만 게임을 처음 접하는 사람은 “어렵다”는 느낌을 가질 수밖에 없다. <몬스터 헌터> 시리즈를 ‘어려운 게임’으로 만드는 특징 중 하나는 조작방식이 불편하다는 거다. 휴대용 기기로 출시된 시리즈에선 아예 ‘몬헌잡기’라고 불리는 그립법이 따로 존재할 정도였다. 아날로그 스틱과 십자키를 동시에 조작하기 위한 궁여지책이었는데 터치스크린이 들어간 닌텐도 3DS로 옮겨 오면서 이 ‘그립법’은 더 난해해졌다.

다행스럽게도 <몬스터 헌터 월드>에서는 이런 어려움이 상당 부분 경감되었지만 특유의 난이도는 여전하다. 거대한 괴물을 상대로 싸우면서 시점 이동 등을 계속 신경 써야 하기 때문이다. PC용 게임에서 마우스와 키보드의 조합을 생각한다면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게임패드를 이용한다고 하면 얘기가 다르다. 그래서 오늘날의 많은 콘솔 게임들은 일종의 조준 보정을 탑재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몬스터 헌터 월드>에는 그런 시스템이 없으므로 거대한 괴물을 정확히 겨냥해 무기를 사용하는 일이 쉽지 않다. 정신없이 싸우다보면 시야 안에서 괴물이 사라져 버리기 일쑤다. 그런 상황에서 상대는 공룡 수준이고 주인공은 그냥 사람이므로 ‘사냥감’에게 피격될 경우 죽음을 각오해야 한다. 그러다보니 초보 입장에선 공격보다는 회피하기 바쁘다.

바로 이 불편함과 어려움이 <몬스터 헌터> 시리즈의 매력이다. 진입 장벽이 높기 때문에 기본 몇십 시간 이상을 해야 그나마 재미있는 게임을 즐길 수 있다. 휴대용 시리즈의 경우 시간이 날 때 잠깐씩 플레이한다는 걸 전제하면 게임의 기본을 익히는 튜토리얼 퀘스트를 모두 완료하는 데만 며칠이 걸릴 정도였다. 그래서 ‘헌터’들은 자신들이 같은 게임을 몇백시간이나 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갖는다.

이런 기제가 게임에 입문하지 얼마 안 된 ‘초보’들에겐 일종의 위계로 작용한다. 그래서 ‘몬스터헌터’와 ‘어린이’의 합성어인 ‘몬린이’라는 말이 따로 만들어질 정도이다. ‘몬린이’에서 벗어나려면 다른 게임이라면 클리어 하고도 남았을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사실상 게임적 요소를 거의 없애버릴 정도로 캐주얼화 된 모바일 게임이 각광을 받는 시대에 이런 게임이 인기를 얻을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인가?

<몬스터 헌터> 시리즈 헤비 유저들의 자부심에는 이 게임에서 ‘레벨’ 등의 중요도가 비교적 낮다는 것도 포함돼있는 걸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반적인 멀티플레이용 롤플레잉 게임의 경우 오랜 시간을 투자했다는 것만으로 상당한 이득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몬스터 헌터> 시리즈는 일종의 게임 센스가 상황을 좌우한다. 각종 무기의 사용에 얼마나 숙달되었는지, 사냥감의 행태를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에 따라 고수냐 아니냐가 결정된다는 거다. 다른 게임에선 이런 요소가 시스템화 되는 경우가 많지만 <몬스터 헌터>에서는 이용자가 이를 실제로 체화해야 한다. 즉, 다른 게임에서는 ‘레벨’이 그저 게임에 들인 시간을 나타내줄 뿐이지만 <몬스터 헌터>에서는 이용자의 ‘실력’이 실재하는 듯 보인다. 이게 사람들이 <몬스터 헌터>에 열광할 수 있는 핵심 요소 중 하나가 아닌가 한다.

이런 점은 FPS게임이나 격투게임의 인기 요인이기도 하다. FPS게임을 예로 들면 핵심은 결국 여러 제약 속에서 목표물을 얼마나 잘 맞추느냐, 그리고 이를 유지할 방법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동원하느냐 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게임 상의 어떤 개념이나 수치로 표현되는 게 아니다. 이용자의 경험과 지식이 직접 작용해야 한다. 여기서 “실력으로 겨뤄야 하는 게임을 잘하는 것이 진정한 게임 고수”라는 관념이 만들어 진다. 이것은 이런 형태의 게임에 열중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인이다.

다시 한 번 이 개념을 뒤집으면 ‘레벨’이 모든 것을 좌우하는 게임은 이용자의 실력을 반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기서 ‘레벨’을 연공서열제로 바꾸는 파격을 한 번 감행해보기로 하자. 연공서열제를 단순화하면 기여한 시간을 이익에 반영하는 구조라고 할 수 있는데, 오늘날 신자유주의적 세계관에서 이는 비효율적이다. 임금은 생산성에 비례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노동자의 생산성을 개별적으로 평가해 임금 수준을 정하는 성과연봉제가 각광받고 있다.

여기서 생산성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가 늘 문제가 된다. ‘성과’의 개념은 계량할 수 없는 것까지 포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산성이 아닌 정치적 태도 등 사용자의 편의가 평가의 기준이 될 수 있다는 점 등을 우려하는 경우가 많다. 임금이 생산성에 비례해야 한다는 대전제를 거부할 수 없다면 적어도 ‘공정’하게나 다뤄달라는 게 오늘날 노동운동의 요구이다. 그러나 그 방법을 고안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어떤 체계를 도입하더라도 임금인상 등을 둘러싸고 노사가 대립하는 과정에서 ‘기준’은 언제나 논란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은 체제 전체를 통해 그대로 재현된다. 이런 저런 거짓된 ‘간판’이 아니라 ‘진정한 실력’을 평가해 달라는 건 오늘날 많은 이들이 체제를 향해 내놓고 있는 공통 요구이다. 기득권 정치의 온갖 스캔들을 통해 보듯 ‘간판’은 더 이상 믿을 수 없는 것이 됐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권은 ‘공정’과 ‘정의’를 전면에 내세우며 이를 실현할 것을 약속하고 있다. 그런데 성과연봉제 논란으로 잠시 봤듯 ‘진정한 실력’을 평가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오늘날 대다수의 사람들은 누구에게나 시험 기회를 제공하는 해법을 선호하는 걸로 보인다. 교육정책에서의 수능 전면 확대나 사법시험 존치와 같은 주장이 때만 되면 등장하는 걸 봐도 그렇다.

그러나 ‘시험을 잘 볼 수 있는 능력’마저도 대물림되거나 구조에 종속된다는 건 외면할 수 없는 사실이다. 타고난 능력이 월등한 사람들이 제한돼있는 현실에서 ‘시험’은 결국 얼마나 노력이 반영되는가의 문제일 수밖에 없고, 이 ‘노력’의 조건은 결국 부모의 재력 등 환경에 좌우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입에서의 어떤 특별 전형이나 학생부종합전형처럼 예외적 장치들이 고안된 것이지만 오히려 이런 것들이 ‘금수저’나 ‘음서제’ 등의 비난을 받게 된 게 현실이다. 도대체 체제가 내세우는 명분을 믿을 수가 없는 거다. 그리고 기성 정치는 “명분을 믿을 수 없다”는 의심이 ‘진실’이라는 걸 반복해서 확인시켜 주고 있다.

다시 게임으로 돌아와서, <몬스터 헌터> 시리즈의 배경은 다소 특정하기가 어렵다. 원시와 고대, 중세와 근대의 요소가 뒤섞여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시 게임 전반을 압도하는 분위기는 공룡과 사람이 공존할법한 원시시대가 아닐까 한다. 이런 시대여야 신분과 계급을 초월하는, 그야말로 순수한 육체적 능력이 근본으로 평가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믿을 것은 바로 이 맨몸의 능력과 내가 직접 얻은 재료를 통해 생산한 각종 장비들뿐이다. 그 외의 중요 요소는 고양이인간이 만들어 주는 식사 정도이다. 이것이 우리가 거짓으로 점철된 일상에서 늘 그리워하는 ‘본래적 세계’의 형태이고, 바로 그 점이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가장 큰 정치적 문제가 아닐까 한다. <몬스터 헌터>에서라면 경쟁에서 탈락하는 사람도 없고 서로 죽고 죽일 필요도 없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시대적 인식의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