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준의 육아父담] 우리는 하나, 백두산은 우리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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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국민이 다 아는 노래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모두가 다 아는 이 동요의 끝은? 살짝 고민되고 헷갈릴 법하다. 수많은 버전이 있고 때로는 무한반복, 시작은 있지만, 끝이 없는 노래가 될 수도 있는 이 노래. 지금부터 딸에게 전해들은 그 엄청난 결말을 알려주려 한다. 다 같이 흥얼거려 보자.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빨가면 사과 사과는 맛있어
맛있으면 바나나 바나나는 길어
길으면 기차 기차는 빨라
빠르면 비행기 비행기는 높아
높으면 백두산 백두산은 우리 산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가 ‘백두산은 우리 산’으로 끝난다. 특히 ‘우리 산’ 부분을 강한 구호로 노래를 마친다. 백두산이 우리 산이라니 소름 끼치는 마무리다.  딸이 부르는 노래의 끝을 듣는 순간 내 귀를 의심했고, 몇 가지 의문이 들었다.

정말 백두산은 우리 산일까? 북진통일을 주장하는 것이 아닐까? 동요 가사 하나에 오버하는 것 같지만 사실 백두산은 우리 산이 아니다. 현실은 북한의 산 혹은 중국의 산이 아니던가. 통일을 이야기하고 ‘백두’만 입에 올려도 금기시하며 손가락질을 했던 우리 사회다. 싸우고, 경계하고, 멸시하는데 어떻게 백두산이 우리 산이 될 수 있을까? 하지만 최근 희망을 품게 됐다.

▲그래픽. 4월 27일 평화의집에서 만난 남북 정상과 백두산. [사진=pixabay 무료 사진 / 남북정상회담 홈페이지]

2018년 4월 27일 오전 9시 28분 판문점. 남과 북, 북과 남의 정상이 만났다. 그때 나는 어르신들이 많은 시외버스터미널 대기실에 있었다. 사람들은 천장에 매달린 TV를 보고 있다. 대구, 시외버스터미널 대기실, 노인, 이 조합 분위기가 대충 짐작된다. 누가 욕이라도 하지 않을까 살짝 긴장한 채로 이어폰을 꽂은 채 나도 TV를 주시한다. 혹시 무슨 난리라도 나면 모른 척하려 이어폰을 일부러 빼지 않았다.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북의 지도자가 성큼성큼 걸어온다. 남의 지도자가 온화하게 웃으며 반긴다. 오랜만에 만난 가족처럼 두 손을 꼭 잡는다. 안부를 묻고 이야기를 나눈다. 사진을 찍고 살짝 월경해 북측 땅을 밟는다. 대단한 퍼포먼스. 남과 북의 만남이기에 가능한 감동, 어렵고도 쉬운 만남을 보는데 눈물이 핑 돈다. 혹시 누가 욕이라도 하지 않을까 싶어서 다시 주변을 살폈다.

하지만 사람들은 감격에 찬 표정이다. 박수라도 칠 기세다. 그중 딱 한 명이 지나가는 작은 목소리로 “또 속을까봐 걱정이지.” 그게 전부다. ‘빨갱이와 손잡으면 안 된다’, ‘막 퍼주면 안 된다’며 삿대질하고 욕하는 사람이 없다. 그날 점심 인기 메뉴는 냉면이었다. 체제도, 문화도, 역사도 멀어졌지만 (멀다고 하면 안되갔구나) 여전히 ‘우리는 하나’ 변함없는 가족이었다. 때로는 싸우고, 마음 상해도 가족은 가족이다.

우리 집에서도 비슷한 상황을 매일같이 겪는다. 딸과 아들이 투닥거리며 살벌한 말싸움을 벌인다.

“난 네가 제일 싫어”
“나도 네가 싫어”
“난 네가 없었을 때가 좋았어. 없어졌으면 좋겠어.”
“아니거든. 나도 네가 없으면 좋거든.”

하루가 멀다고 벌어지는 교전과 선전포고. 애나 어른이나 싸울 때 유치함은 똑같다. 말려봐야 소용이 없다.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는 냉전은 결국 누가 한 명 울어야 비극적으로 종료된다. 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미안해’, ‘사랑해’ 한 마디에 평화협정을 맺고 금세 둘도 없는 사이가 된다. 미워하고 섭섭했던 감정은 어느새 온데간데없다. 한 뱃속에서 나왔지만, 생김새도, 성격도, 식성도, 취향도 다른 남매. 매일 싸우고, 화해하지만 ‘우리는 하나’ 가족이라는 점은 항상 변함없다.

남과 북, 누나와 동생이라는 것은 논리적으로 설명할 필요가 없다. 갈라진 게 이상한 일이다. 벌써 조만간 재개될 금강산으로 효도관광 계획을 세우며 기대에 부풀어 있다. 머지않은 미래에 딸은 백두산으로 수학여행을 가서 ‘백두산은 우리 산’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될 것이다. 아들은 군대에 가지 않아도 될지도 모르겠다. 상상만 해도 설레는 일이다. 만나면 화해, 만나면 통일이다. 당연히 우리는 하나, 백두산은 우리 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