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등급 국민』, 우리시대 강도만난 사람들

[서평] 국가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관심이 없다

11:27

『10등급 국민』은 우리 시대 빚꾸러기들의 이야기이다. 빚꾸러기는 ‘금융채무 불이행자’를 말한다. 책을 읽는 내내 이들의 연속적인 비극에 가슴이 답답하고 아팠다. 어찌 이리도 인생이 기구한지, 단란한 가정이 파탄 나고 병들고 장애인이 된 데다가 도저히 갚을 수 없는 빚더미를 안고 사는 사람들. 예고 없이 들이닥치는 사고, 친척에게 빚보증 서 준 것이 패가망신의 빌미가 될 줄이야. 어째서 그리도 못된 배우자만 만나는지,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자격을 맞추기 위해 이혼해야 하는 현실에 한숨이 나왔다. 어떤 이는 죽어서야 빚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개인의 팔자요, 불행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국가의 과실이 있다. 파산면책신청을 위해 내키지 않는 인생고백을 해야만 했던 금융피해자들 18명의 이야기에는 빠지지 않는 공통점이 있었다. IMF와 신용카드 대란이다. 두 사건은 모두 국가가 자초한 일이다. 그러나 사건의 여파는 열심히 산 죄밖에 없는 서민대중에게 고스란히 돌아왔다. IMF 국가부도사태로 잘 다니던 회사에서 쫓겨났고, 정직과 성실로 일구던 생업이 졸지에 문을 닫았다. 그 충격으로 개인은 병들고 가정은 깨지고 노숙자가 되고 재기불능의 채무자로 전락했다. 진정으로 국민에게 미안한 마음이었다면, 국가는 다양하고 세심한 복지제도로 이들이 최소한의 삶을 유지하도록 지켜줬어야 했다. 헌법에도 나와 있는 인간의 존엄성과 행복추구권을 최선을 다해 보장해야 했다.

하지만 국가는 헌법이 부여한 의무를 이행하는 대신에 그 역할을 신용카드에게 넘겨버렸다. 그전에는 상환능력은 물론이고 변변한 직장이 아니면 엄두도 못 냈던 신용카드가 무차별로, 마구잡이로, 아무에게나, 길거리에서 호객행위로 뿌려졌다. 국가는 이 현실이 어떤 부정적인 결과를 낳을 것인가를 충분히 예상했을 것이다. 그러나 당장 내수진작과 경기부양을, 카드를 통한 개개인의 소비형태에 떠넘기는 참으로 무책임한 정책을 저질렀다.

▲김철호, 임태영, 오철호 지음 / 대장간 출판 / 2015. 9. 15 / 13,000원
▲김철호, 임태영, 오철호 지음 / 대장간 출판 / 2015. 9. 15 / 13,000원

이 책에 나온 빚꾸러기들은 바로 이 정책의 폐해를 직격탄으로 맞은 사람들이다. 여러 장의 카드 돌려막기는 결국 빚만 불릴 뿐이었다. 게다가 카드사용처는 생업용도 있지만 많은 비중이 생활비, 병원비, 교육비이었다. 국가가 책임지고 보장해야 할 국민의 기본적 생활보장을 신용카드에 맡기는 나라가 어디 있단 말인가. 그것도 약탈적 금융자본지배 구조하에서.

결국, 이런 사태의 결과를 놓고 볼 때, 국가는 가난한 사람들에 관해서는 관심이 없다는 것을 방증한다. 관심이 없으므로 이후 채무불이행자들에 대한 제도나 정책에서도 여전히 이들을 속박한다. 개인워크아웃, 프리워크아웃, 국민행복기금 등은 “무슨 짓을 해서라도 빚은 갚으라”는 제도이다. 『10등급 국민』을 쓴 김철호 목사는 말한다. “개인파산면책은 투기금융 자본경제의 온갖 폐해를 치유하는 첫 걸음이요, 감당할 수 없는 빚더미에 치여 고통당하는 빈곤층이 새로운 삶으로 나가갈 수 있는 유일한 출구”(책 89쪽)라고.

하지만 갈수록 법원은 개인파산면책 심리를 강화하고, 결정에 대해 부지하세월이다. 그런 경향 이면에는 빚을 면책해주면 도덕적 해이가 발생한다는 심리가 있다. 이에 대해 김철호 목사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소위 법적 인격을 부여받은 기업들이 회생을 하거나 파산하는 것을 매우 당연하게 여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살과 피를 가진 진짜 사람은 생사존망의 상황에서 파산을 하거나 회생을 하는 것을 도덕적 해이라고 폄훼할까요?”(책 49쪽)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국가는 IMF 이후 168조라는 국민혈세를 투기금융자본을 위한 구제금으로 쏟아 부었다. 하지만 그 돈이 다 어디로 갔는지 지금도 궁금하다. 도덕적 해이는 이들 투기금융자본회사가 받아야 마땅하지 않은가.

민생네트워크 <새벽>의 김옥연 이사장도 처음에는 ‘빚지면 어떻게든 갚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었으나, 민생네트워크의 활동을 지켜보면서 생각이 바뀌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지금의 우리 사회의 신용불량자문제는 도덕적 해이가 아니라 금융자본 경제체제의 구조적인 문제라는 사실을 수긍하게 되었다”(책 206쪽)고.

나는 김철호 목사와 같은 신학교를 다녔다. 돈의 힘이 신학교는 물론이고 교회까지 침범한 현실에서 이토록 돈에 대해 순박한 사람이 있다는 것에 놀랐다. 게다가 그 자신이 지독하게 가난한 삶을 살았기에 누구보다도 가난한 사람들의 처지를 잘 안다. 그런 그가 우리 사회 가장 밑바닥에서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돕는 일을 하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은 어떤 일에 가장 적합한 사람을 쓰신다’는 감탄을 새삼 했다. 그 많은 수고의 극히 일부분을 담은 책이 『10등급 국민』이다. 이 책에 나오는 빚에 치여서 고통의 나날을 보내는 사람들을 통해, 사람살이의 가장 실제적인 문제인 돈과 돈을 둘러싼 금융지배질서에 대해 우리의 지각이 더욱 깨쳐지기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