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준의 육아父담] 낡은 살림살이, 늙어가는 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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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25 13:34 | 최종 업데이트 2018-05-25 13:34

이놈의 TV가 또 말썽이다. 무려 10년 전 나온 제품인데 설마 최신식 AI 기능을 탑재한 것일까? 잘 나오다가 꼭 중요한 장면이 나오면 먹통이 되어버린다. 그래도 괜찮다. 잠시 껐다 켜면 언제 그랬냐는 듯 또 잘 나온다. 물론 언제 다시 꺼질지는 모르는 일이다. TV는 멀쩡한 데가 없다. 채널을 바꾸는 것도, 볼륨을 키우고 줄이는 것도 말을 잘 안 듣는다. 전원을 끄는 것은 아예 되지 않아 코드를 뽑아야 TV를 끌 수 있다. 꼭 몸을 움직이게 만든다. 순간 짜증이 나지만 사실 그럴 만도 하다. 아이들에게는 만화, 나에게는 야구중계, 아내에게는 드라마를 보여주며 10년 동안 쉼 없이 달려왔다. 그렇게 밤낮없이 틀어대니 성할 턱이 없다.

TV뿐만 아니다. 산더미처럼 쌓인 빨래더미와 매일같이 사투를 벌이던 세탁기도 힘이 부친다. 거의 매일 한 번, 가끔은 두 번씩 돌아가니 힘들만도 하다. 제법 많은 양을 돌리는 날에는 예상시간이 줄지 않고 계속 제자리에 멈춰있다. 모터 타는 냄새를 풍기며 사력을 다해 돌아가는 세탁기. 이 녀석도 남은 생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한다. 전기밥솥도 마찬가지다. 밥통의 코팅이 벗겨진 것일까? 뚜껑 고무패킹이 삭은 것일까? 한때는 밥 잘하기로 명성이 자자했지만 이제는 밥을 하고 채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 누런 밥으로 변하고 만다. 결국 그 누런 밥을 처치하기 위해 볶음밥은 우리 집의 단골메뉴가 되고 말았다.

집안 구석구석의 모든 물건들이 다 그렇다. 에어컨과 세탁기는 온갖 종류의 스티커가 덕지덕지 붙어있어 아예 스티커 북이 되었다. 이중삼중으로 빈틈없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스티커를 보면 오히려 다른 곳에 붙이지 않은 것을 고마워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화장대 서랍은 살짝 기운 채로 묘한 균형을 유지한 채 버티고 있고, 손잡이는 어디 갔는지 몇 개는 달아나고 없다. 쉴 새 없이 불고 빨았던 드라이기와 청소기는 벌써 이별을 고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벌써 결혼한 지 10년, 살림을 차린 지 10년이다. 한때는 신제품으로 우리 집과 인연을 맺었던 가전제품과 가구, 생활용품들이 손때가 묻고 낡았다. 유행에 뒤처져서 촌스럽다고 버림받기도 하고, 때로는 사용불가 폐기처분을 받고 쓰레기장으로 향하기도 했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살림도 새로 장만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굴뚝같지만 어디 한두 푼 해야 말이다. 바꾸기에는 부담되고 고친다고 별수 있겠나 싶어 차일피일 미루기도 수개월. 언제 닥칠지 모를 낡은 것들과의 이별의 순간은 운명에 맡긴 채 내버려 뒀다.

사실 물건만 그런 것이 아니다. 10년 동안 사람도 많이 변했다.(사실 늙었다.) 흰머리도 부쩍 늘고 주름도 많아졌다. 원래 노안이라 이런 얼굴이 오래간다고 우겨보지만, 마음 한구석이 찝찝한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몸도 안 아픈 곳이 없는 약골이 되었다. 엄살이 는 건지, 진짜 아픈 건지 헷갈리지만 체력과 에너지가 예전만 못한 것은 분명하다. 자주 아프고 온몸이 쑤시고 피곤하다는 말은 입에 달고 산다. 설마 큰 병인가 싶어 용기 내어 병원에 가면 의사 선생님은 별거 아니라는 듯 ‘살 빼세요.’, ‘운동하세요.’ 잔소리한다. 누가 그걸 몰라서 안 하나?

아내는 첫째를 낳고 허리 디스크를 얻었다. 원래 자세가 안 좋고 허리가 안 좋기는 했지만 출산과 육아를 거치면서 난리가 나고 말았다. 디스크는 평생 간다는데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 근력도 많이 약해져 이제는 생수 뚜껑도 열지 못하는 신세가 돼버렸다. 몸에 근육이라는 것은 1도 없는 것 같다. 하지만 그보다 더 슬픈 일은 거울을 볼 때인 것 같았다. ‘여보, 나 살쪘어.’, ‘여보, 나 늙었나봐.’ 푸념을 늘어놓을 때면 깊은 슬픔이 묻어난다. 사람도 물건도 세월을 거스를 수는 없는 법이다. 그렇게 십 년의 시간 동안 낡고 늙어갔다.

다행히 모든 것이 그런 것은 아니었다. 물건이 낡고 사람이 늙는 동안 아이들이 태어나고 커갔다. 콩알만한 녀석이 점점 커가더니 제법 엄마를 힘들게 했다. 가만히 누워만 있다가 뒤집기를 하고 배밀이를 하더니 걸음마를 했다. 울기만 하던 녀석이 옹알이를 하고, 엄마아빠를 불렀다. 젖먹이를 떼어 놓는 일이 마음 아팠는데 어린이집, 유치원, 학교에 간다. 하루하루가 힘들고, 속상하고, 행복하고 기뻤다. 참 기적 같은 일. 그 재미에, 감동에 빠져 늙는 줄도 아픈 줄도 모르고 세월이 흘러갔는지 모르겠다. 십 년 동안 TV와 세탁기, 밥솥처럼 쉼 없이 달려왔다. 그 사이 아이들은 훌쩍 자랐고 엄마아빠는 조금씩 늙어갔다.

만신창이 살림들이 애를 먹이기도 하지만 나름 정이 들었다. 살짝 고치면 애정이 더 생길 것 같기도 하다. 또 새것으로 바꾸면 사용법을 익히는데 한참이 걸릴 것이다. 삐까뻔쩍 새것도 좋지만 손때 묻은 헌것도 익숙하고 편안한 매력이 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예전의 무한체력과 혈기왕성함은 없다. 대단한 야망도 치열한 노력도 없다. 이제는 익숙한 아저씨, 편안한 아빠가 좋다. 선택하면 포기를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고 모든 것을 다 얻을 수는 없다는 것을 알았다. 물건은 낡고 사람은 늙어간다. 그래도 고쳐 쓸 수 있으면 됐다. 아이들이 크니 또 그거면 됐다. 아빠가 되니 그렇다. 내 부모가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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