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 미화원 (8)

말할 권리가 없는, 언어의 다른 편에 놓인 모든 사람들

11:54

37.
살만하면 죽는다는 속설이 있다. 미화원이 된 첫날, 신입인 나를 교육했던 H 언니와 S 언니에게서 귀동냥으로 듣게 된 이야기의 주인공이 바로 그러하다.

언니들에 따르면, 암으로 입원한 이는 오랫동안 미화원을 하다가 퇴사했다는 거였다. 흉측한 병으로 진단을 받기는, 부부가 발 뻗고 누우면 마침맞은 아파트를 사서 입주한지 채 한 달이 지나지 않아서라고 했다. 그녀는 버스비를 아끼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자전거로 출퇴근했고, 자신을 위해서는 싸구려 티셔츠 하나 사 입는데도 벌벌 떨었다고 한다. 손쓰기에는 이미 늦은 것 같더라고, 저 죽을 날 받아놓은 줄도 모르고 남편 끼니 걱정을 하더라며 언니들은 혀를 찼다. 암보험 하나쯤은 들어놓지 않았겠냐고, 출가한 자식들이 병원비를 보탤 형편은 아니라도 어떻게 마련한 집인데 그걸 팔기야 하겠냐는 말도 덧붙였다. 억척스레 살았다지만 버스비를 아낄 정도는 아니었던 터라, 나는 내심 그들의 말이 비현실적으로 들렸었다. 자기 집을 갖자마자 벽지에 풀 마를 새도 없이 죽을 처지라니, 우리 부모 세대에나 흔했던, 뭐 그딴 서글픈 인생이 있나 싶었다.

내가 청소를 그만두기 얼마 전부터, 만나는 사람들마다 ‘이제 그만’ 쉬기를 진지하게 권하곤 했다. 술 앞에 장사 없듯, 과로가 사람을 어떻게 망쳐놓는지를 그들은 누누이 강조하곤 했다. 죽으려고 작정했느냐는 걱정도 들었고, 왜 만사가 죽기 살기냐며 고개를 갸웃하는 사람도 있었다. 문단의 원로이신 어느 시인께서는 당신이 병이 들고 보니 무심했던 자기 몸한테 그렇게 미안할 수 없더라는 말씀을 진지하게 들려주셨다. 병색이 짙은 인간에 대한 염려임을 모르는 바 아니나, 생계에 보탬이 되려고 하는 일을 마치 취미생활마냥 놓아버리라니 나로서는 답답할 노릇이었다. 과연 주위의 걱정이 기우만은 아니어서, 나는 건강 때문에 일을 못 하게 되었고, 이후 한 달여를 혹심하게 앓았다. 지금은 일어나 걸어 다니긴 해도 어딘가 심하게 망가진 느낌이다. 엉망으로 부서진 뼈를 테이프로 간신히 붙여서 사용하는 것 같기도 하다.

[출처=안전보건공단]
[출처=안전보건공단]

자신의 건강이 도미노처럼 차례차례 무너지는 걸 지켜보기란, 길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는데 더해 지뢰밭을 밟는 아슬아슬한 심정에 가깝다. 나아가 극심한 신체적 고통은 사람을 나약하고 성마르게 만들어버린다. 처음에 나는 내 몸에 대체 무슨 짓을 한 것일까 후회했다가, 여태껏 함부로 대한 내 몸에 빌었고, 마침내 ‘몸’과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생을 저주하기에 이르렀다. 엄살 같겠지만, 결코 엄살이 아니다. 한편으로 나는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에 매달리는 심정으로 고통을 덜어주는, 그렇지만 될 수 있으면 돈이 덜 들어가는 방법들을 이것저것 시도해봤다. 당장 써야 할 원고도 원고고, 기껏 몇 달 번 돈을 병원비로 야금야금 까먹으려니 죽기보다 억울했다.

그나마 덕분에 평생 처음으로 나는 아침형 인간이 되었다.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해서 걷기운동도 시작했다. 새벽까지 종종걸음을 치며 일해 봐서인지 웬만한 거리는 걸은 것 같지도 않다. 사실 미화원의 ‘일상’은 걷기로 시작해서 걷다가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노동으로서의 걷기와 운동으로서의 걷기는 얼마만한, 그리고 어떤 차이가 있기에 내 몸은 이리 혹사를 당한 표가 역력한 건지.

지척에 있는 초등학교 운동장을 돌거나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못을 찾을 때마다, 내 머릿속엔 운동과 노동, 나아가 일반적인 노동과 골병이 들만큼의 심한 노동에 대한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백민석의 자전적 소설 「이 친구를 보라」에서 젊은 교사는 신문배달을 하는 가난한 제자에게 이렇게 말한다. “운동과 노동은 다른 거야.” 그 측은한 위로의 장면도 자주 떠오른다.

미화원은 저렴하게 구매할수록 더 좋은 교환 가치를 지닌 노동자에 속한다. 이윤을 추구하는 자본주의사회 내에서 그러한 노동자의 사용가치는 무시되고, 잉여가치는 착취된다. 그 착취의 흔적이 내겐 골병으로, 앞선 주인공에게는 암으로 드러난 걸까?

최근 들어 내가 착취라는 말을 입에 올리면, 주위 사람들은 웃어넘기거나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인다. 그들은 육 개월에 불과한 노동이 남긴 내 몸의 질병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몸이 원래 약했다거나, 책만 보던 사람이 갑자기 근육을 쓴 탓으로 돌리려 한다. 미안하지만 난 대한민국의 부지런한 주부라면 감당할 양만큼의 가사노동에 익숙했던 사람이다. 그랬던 내가 미화원 노릇을 한지 불과 몇 달 만에 골병이 들었다. 물론 내 몸이 이렇게까지 된 데는 ‘대충’ 혹은 ‘적당히’ 일하지 않은 미련스러움이 한몫을 했을 터이다. 하지만 꾀를 부리지 않아서 몸이 망가졌대서야 말이 되지 않는다.

골병은 ‘겉으로 드러나지 아니하고 속으로 깊이 든 병’을 일컫는다. 그리고 내가 골병이 들었다는 말은 그저 하는 소리도, 육체적 고통을 과장하려는 진부한 표현도 아닌 것이다.

38.
스티그 다게르만이 「작가와 양심」(『괴로움의 독재』)에서 한 다음과 같은 말은, 공산주의자라는 이유로 조국에서 추방당한 화가들의 그림이 자본주의의 한복판인 미국에서 불티나게 팔려나간 미술사-가령 피카소나 잭슨 폴록이 그러하다-를 연상케 한다. 참으로 자본주의는 모든 것을 허용함으로써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힘을 남김없이 거세해버린다. 자본주의적 맥락과는 거리가 멀지만, 나는 이 글이 미화원들의 실상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 가끔 의심스럽다. 내 글의 쓸모를 따지거나, 글쓰기를 포기하고픈 유혹을 느끼는 순간이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는 자리에서 르 클레지오는, “문학이란 지배계급의 사치이며, 문학이 대다수 사람과는 무관한 사고와 이미지로 살찌고 있다는 것. 그것이 우리 각자가 겪는 불편함의 기원입니다.”라고 고백한다. 그의 말이 다소 지나치다 하더라도, 많은 부분이 진실임은 분명하다. 왜냐하면, 적어도 내가 아는 미화원 언니들은 독서에 취미가 없거니와, 책을 읽을 시간적이거나 정신적인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한편으로는 이제 세상에서 문학보다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다른 한편으로는 주변에 보이는 사람들이라곤 오로지 허기와 싸우며 어쩔 수 없이 자신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월말에 가서 벌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뿐일 때. 과연 어떻게 처신할 수 있을까? 왜냐하면 그(작가)는 새로운 패러독스, 즉 자신은 오로지 배고픈 자들을 위해서만 글을 쓰고자 하는데, 먹을 것이 충분한 자들만이 자신의 존재를 깨달을 여유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는 패러독스에 맞닥뜨렸기 때문이다.”
-스티그 다게르만, 「작가와 양심」,『괴로움의 독재』(J. M. G. 르 클레지오, 「패러독스의 숲에서」, 『아버지의 여행가방』에서 재인용.)

39.
학교나 출판기념회라도 가지 않는 이상, 내가 작가들이나 글을 쓰는 지인들을 만날 기회는 거의 없다. 공적인 성격을 띤 스터디라면 모를까, 일부러 시간을 내서 사람들과 친교를 나누는 ‘사적 공간’이 내 삶에는 누락되어 있다. 게으르거나 주변머리가 없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아무튼, 사람들과의 그 헐렁한 ‘거리’가 때로는 자유롭고 때로는 외롭다.

혼자 공부하고 혼자 노는 방식에 젖어 살아서인지, 상식(common sense)이 모자란다는 힐난을 종종 듣는다. 심한 경우로는 사람들의-주로 여자 시인들의-공분을 불러일으킨 적도 있고, 푼수 끼가 다분해서 이 나이에 고작 통통 튄다는 칭찬 아닌 칭찬을 듣곤 한다. 허나 어이없게도 나는 냉철한 패시미스트(pessimist)를 지향하는 편이라서, 이상형과 점점 멀어지는 나를 확인하는 게 슬프기까지 하다.

나의 튀는 행동은 남들과 생각이 달라서고, 생각나면 곧장 실천에 옮기는 단순함에서 비롯한다. 그러한, 별나다 못해 찌질하기까지 했던 일화 한 가지!

언니들 대부분은 아무렇지 않은데 나만 거북해 하는 일이 하나 있었다. 그건 직원들의 차(茶)를 우리 마음대로 타서 마시는 일이었다. 사무실 옆에 딸린 작은 방에는 각종 전산기계와 함께 티테이블이 놓여있었다. 거기에는 커피머신은 물론이려니와, 차 티백이 종이컵과 나란히 종류대로 갖춰져 있는 상태였다. 그러니 사무실을 청소하다 말고 미화원이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기란 예사였다. 차 티백은 흔전만전 널려있었고, 그중 몇 개를 마신들 그걸 두고 누가 뭐라 할 리가 만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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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나는 무단히 몇 개 가져다 먹은 믹스커피가 마음에 걸려 사무실을 들락거릴 때마다 뒷골이 당겼다. 출입문 입구에 앉아 일을 보는 한 여자 사무원에게 먹은 개수만큼 가져다 놓겠노라 얘기해둔 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다. 더 이상 미룰 것도 없이, 나는 ‘스무 개입’ 커피믹스 한 통을 샀다. 서너 개 채워놓으면 끝이었지만, 확실히 한다는 게 그만 일이 커져 버렸다. 직원들 입에서 미화원들 손버릇 나쁘다는 소리라도 나올까 지레 겁을 먹은 나는, 그동안 빌린 걸 갚는다는 사연의 쪽지까지 붙여서 고이 놓아두었다.

다음날, 어찌된 영문으로 커피와 쪽지는 돌고 돌아서 과장 책상에까지 올라간 모양이었다. ‘이럴 것까지야…’라고 과장이 반응한 건 당연했다.

문제의 커피는 급기야 다른 미화원의 손에 들려 미화원 사무실로 내려오고 말았다. 그리고 내게는 상상도 못한 책임이 물어졌다. 안 해도 될 짓을 했다는 죄로 8층 전담이었던 내가 지하 1층으로 오랜만에 쫓겨(?)난 거다.
“여기가 학교인 줄 압니까?”
중간 관리자가 버럭 화를 내며 내게 하는 말이 그랬다.

하지만 어떤 분실사고든 가장 먼저 의심받는 대상은 미화원들이다. 실제적인 예로, 회원만 드나드는 라운지의 음료수가 손을 탔다는 이유로 미화원 사무실에 항의가 들어와 비상이 걸린 적이 있다. 라운지의 책임자가 바뀌면서 생긴 일이다. 아무도 먹었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자 CCTV를 확인하는 해프닝까지 벌어졌다. 그런 일련의 과정에서 미화원들은 ‘말할 권리가 없는’ 처지에 놓인다. 또한, 그 모든 일이 오해로 밝혀져도 좀도둑으로 몰린 미화원들에게 사과하는 일 따위는 일어나지 않는다. 다시 르 클레지오의 말을 인용하자면 “아리스토텔레스나 톨스토이의 시대에 차마 형언할 수 없는 처지에 놓였던 사람들, 즉 농노, 하인, 중세 유럽의 자유농민, 혹은 계몽주의시대에 약탈 대상이 되어 아프리카 해안의 고레, 엘미나, 잔지바르에서 팔려간 사람들이 살았던 그런 상황, 그리고 심지어 오늘날에도, 제가 여러분에게 말을 하는 이 순간에도 말할 권리가 없는, 언어의 다른 편에 놓인 모든 사람들”(「패러독스의 숲에서」) 가운데 미화원들이 끼어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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