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먹칠] 분단 트라우마를 어루만지는 방식 / 박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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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1 10:29 | 최종 업데이트 2018-06-11 10:30

`약 10년간 얼어붙어 있던 남과 북이 문재인 대통령의 강력한 드라이브로 관계를 회복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4.27 남북정상회담에서 채택된 판문점 선언은 향후 남·북 관계와 통일 문제를 어떻게 이끌고 나갈 것인지 명확하게 보여준 사례였다. 판문점 선언의 전체 이름은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으로, 그 내용은 크게 2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설치, 국제경기 공동진출, 당국 간 정례 협의 진행 등 남·북의 교류 진척을 토대로 하고 있다. 두 번째는 남·북의 군사적 긴장 상태 완화와 전쟁위험을 실질적으로 해소하는 등 평화 모드를 달성하자는 것이다.

두 내용은 얼핏 보기에 남·북 관계개선이라는 큰 틀에서 방향을 같이하고 있지만, ‘통일’의 관점에서 보면 각기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첫 번째 내용은 남·북 교류증진을 통해 남·북 동질성 회복함으로 점차 통일의 단계를 밟아가자는 통일 당위론에 수렴한다. 반면, 전쟁의 위협을 없애고 한반도의 평화를 달성해야 한다는 두 번째 내용은 반드시 통일을 전제하지 않아도 가능하다. 남·북의 통합을 지향하지 않더라도 서로 체제를 인정하면서 전쟁 위협이 제거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반도 평화를 유지해야 한다’는 평화 담론이 되려 ‘통일 회의론’으로 빠지게 될 가능성이 있는 것도 이와 같은 이유에서다.

그렇다면 현재 남·북 해빙 모드에서 국민들의 평균 정서는 ‘통일 당위’에 있는가, ‘통일 회의’에 머물러 있는가? 현재 국민들의 가장 큰 관심은 ‘북한 비핵화’다. 통일을 전제로 하는 남·북 교류에 앞서, 전쟁 위협을 제거하는 것이 가장 급선무라는 것이다. 지난주 북미정상회담 취소 위기 속에서 순식간에 역전된 북한에 대한 여론은 아직까지 통일에 대한 국민들의 부정적 인식을 증명한다. 통일을 위한 비핵화가 아닌, 평화를 위한 비핵화가 현재 남·북 해빙 모드를 걷고 있는 국민들의 평균인식이다.

그렇다면 한반도 비핵화로 말미암아 ‘평화’가 이룩되고 난 이후에 ‘통일’은 버려도 되는 카드인가? 분단의 개별적 피해자는 국가 차원에서 보상하고, 분단 트라우마는 남·북이 공존하는 상태로 시간의 흐름에 맡기는 것이 최선일까? 나의 답은 ‘그렇지 않다’이다. 이는 당장 종전선언이나 상호불가침 조약 체결 같은 물리적인 평화 상태를 이룬다고 해서 분단이 우리 현실에 미치는 영향을 간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전쟁으로 말미암은 분단 역사는 남·북 모두에게 역사적으로 큰 트라우마일 뿐만 아니라, 그 상흔은 남·북 각각에게 ‘반공’과 ‘반미’라는 강력한 지배이데올로기로 이어져 근대 시민국가로 이행하는 데 큰 걸림돌이 되어 왔다.

남한의 경우 분단으로 인한 반공주의는 억압적 독재체제를 완성시킴으로써 사람들 사이에 오로지 자신의 이데올로기만을 강요하는 일상적 적대성을 낳았다. 즉, 한국 사회에 현존하는 수많은 남남갈등(지역갈등, 소수자차별 등)은 분단 상태로부터 상대방을 악마로 보고 궤멸시켜야 한다는 ‘근본주의적 정서’와 결코 무관한 것이라 할 수 없다. 이는 몇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일종의 콤플렉스로 한국 사회에 깊숙이 녹아있다. 북한의 경우, 반미주의가 김일성 유일체제 확립과정에 동원됨으로써 세계 경제에서 고립되었다. 이는 결과적으로 북한 인민의 삶의 질을 악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분단의 아픈 흔적들은 한반도 평화를 넘어 통일을 향한 과정에서만 치유될 수 있다. 단순히 네가 나를 침략하지 않고, 내가 너를 침략하지 않겠다는 약속은 언제든지 누군가의 권력욕에 의해 깨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남·북 관계는 분단의 아픔을 돌아보고 이를 치유하기 위해 통일로 나아가야 한다. 이산가족 상봉을 통해 분단이 만들어 낸 피해자의 고통을 치유하고, 남·북 역사 복원을 통해 아픈 역사를 다양한 방식으로 애도하고, 문화 교류를 통해 남·북 간에 자리 잡은 적대적 정서를 제거해야 한다.

남·북이 적극적으로 화해 모드를 걷고 있는 지금, 북한의 비핵화에만 목멜 것이 아니라 우리 무의식 속에 숨겨진 분단 트라우마를 유심히 살피고 이를 극복해나가야 한다. 그래야만 아픈 우리 현대사를 청산하고 공존의 토대 위에서 새로운 통일국가를 향한 목표를 함께 만들어나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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