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페미니즘은 정신병 /이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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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1 13:25 | 최종 업데이트 2018-06-11 13:25

‘한국 여자들은 권리만 주장하면서 의무를 하지 않는다.’ 거의 유언비어나 다름없는 이러한 언설이 꽤 설득력을 얻은 채 돌아다닌다. ‘한국 여자들은 군대에 가지 않으면서 권리를 주장한다’, ‘무임승차한다’, ‘페미니스트는 피해망상과 이기심에 젖어 있다’, ‘악쓰면서 권리를 주장하는 ‘메퇘지’들의 발광이다’, ‘메갈쿵쾅!’

여기서 의무는 무엇인가. 여성의 의무가 따로 있다? 한 인간의 의무가 성별에 따라 구성된다는 발상도 경악스럽지만, 그 의무(?)에 따라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태도는 매우 심각하다. 인권이 의무에 따라 얻을 수 있는 보상인가. 동물권을 말하기 위해 인간은 동물에게 의무를 강요하게 생겼다. 여성에게 일어나는 성폭력과 살인, 폭력, 노동시장에서의 차별 등 아주 기본적인 인권이 의무와 연결된다는 발상은 가볍게 넘길 사안이 아니다.

페미니즘에 대한 왜곡된 생각은 ‘페미니즘은 정신병’이라고 주장하기에 이른다. 흥미롭게도 페미니스트들은 ‘미침’에 관심이 많다. ‘제 자리’를 벗어나면 제정신이 아닌 사람으로 취급하는 사회에서 여성들은 쉽게 미친년으로 여겨진다.

18세기 페미니스트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의 미완성 소설 <머라이어 Maria, or the Wrongs of Woman>는 정신병원과 여성의 관계를 다룬다. 사회는 여성을 어떻게 정신병자로 만드는지 보여준다. 주인공 머라이어는 정해진 답, 세상이 진실이라고 주장하는 강요된 답을 말하기보다 자신의 대항 서사를 구성하여 여성을 억압하는 구조에 반기를 든다. 이 작품은 울스턴크래프트 사망 1년 후인 1798년 남편 윌리엄 고드윈에 의해 출간되었다.

▲(왼쪽)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오른쪽) 케이트 쇼팽.

100여 년 후, 1899년 미국 작가 케이트 쇼팽(Kate Chopin)은 여성의 역할과 의무에서 벗어나 온전히 한 개인의 삶을 찾아가는 여성의 고독한 투쟁을 다룬 <각성 The Awakening>을 발표했다. 쇼팽은 주로 루이지애나 지역의 프랑스와 스페인, 멕시코와 아프리카 등이 혼종된 독특한 지역문화를 배경으로 여성의 삶을 다룬다.

<각성>의 주인공 에드나 퐁텔리에는 뉴올리언스 근처 그랜드 섬에 휴가를 갔다가 조금씩 우주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깨닫기 시작한다. “침묵의 외투”를 벗고 그간 유지해온 정숙한 부인상에서 어긋하는 말과 행동을 하기 시작한다. 그해 여름 내내 그는 멕시코만에서 수영을 배우고 그림을 그린다. 루이지애나의 후덥지근하고 습한 공기 속에서 에드나의 차가운 깨달음이 일어난다. “수영을 하자 자기 자신까지도 삼켜 버릴 듯한 무한의 세계를 향해 힘차게 나아가는 기분이었다.” (61쪽)

에드나의 남편은 전과 다른 에드나가 정신이 이상해졌다고 생각해 의사를 찾아가 상담한다. 정신이 이상해졌다고 판단하는 근거는 다음과 같다.

“아내는 집안 꼴이 엉망이 되도록 그냥 방치하고 있답니다.”
“아내는 영원한 여성의 권리에 대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어요.”
“아내가 말하길 결혼이야말로 지구상에서 가장 슬픈 광경이라고 하더군요. 어떻게 아내가 남편에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습니까!”

여성의 권리를 생각하고 여성을 구속하는 사회제도에서 벗어나려고 하면 쉽게 제정신이 아닌 여자가 된다. 이에 대한 의사의 조언은 더욱 웃음이 터진다. “부인이 최근에 소위 지적인 체하는, 그러니까 영적으로 고상한 척하는 부인들과 어울려 다니나요?”라고 남편에게 묻고 여자들은 원래 변덕스럽다고 한다.

에드나는 주변의 시선과 소문에 개의치 않고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간다. 수영에 대한 열정이나 경주마를 친구처럼 생각하고 경마에 대한 상당한 지식을 갖추고 있다는 점은 에드나가 얼마나 자유를 갈망하는지 잘 보여준다. 그는 결국 ‘남편의 집’에서 나와 자기만의 작은 ‘비둘기 집’에서 홀로 살기로 결심한다. ‘남편의 집’을 나오기 전에는 12개의 의자를 준비해 성대한 파티를 연다. 가부장제를 떠나기 전 펼치는 최후의 만찬이다.

이 소설은 19세기 미국 남부의 규범을 기준으로 보면 대단히 도발적인 ‘비도덕적인’ 내용이다. 억척스러운 여성의 삶을 잘 다룬 윌라 캐더조차 <각성>이 도덕적이지 않다고 비판했다. 애교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여자, 아이들의 부재를 구원처럼 여기는 ‘엄마’, 젊은 총각들의 구애를 받는 ‘아내’라는 여성은 기존의 관념에서 당연히 부도덕한 인간이다. 이처럼 많은 비난 속에서 잊혔다가 20세기 중반 중요한 페미니즘 소설로 재발견되었다. 이 소설은 처음에 ‘고독한 영혼(A Solitary Soul)’이라는 제목이 붙여졌다가 ‘각성’이 되었다. 자신을 깨달아가는 과정은 고독하기 마련이다.

쇼팽의 작품은 이처럼 대체로 여성의 자아인식을 다룬다. 그러나 <각성>의 중인공인 에드나는 자신의 독립적인 위치에 대해 고민하고 이를 실행하는 과정에서도 하녀는 여전히 하녀로 여긴다. 이를 두고 오늘날의 시각으로 단순하게 재단하기는 어렵다. 케이트 쇼팽은 인종 문제에 상당히 관심을 기울인 편이었다. 그의 단편 <데지레의 아기>는 피부색에 따른 차별이 실은 얼마나 어이없는 구별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지 폭로한다.

경제적으로 아무런 부족함이 없고, 사회적으로 존경받지만 개인의 존재감이 없고 제 인생 앞에서 무력감을 느껴 우울한 중상류층 여성의 감정은 때로 ‘진정한 투쟁’ 앞에서 묵살당한다. 아무리 계층적으로 권력이 있어도 자아를 점령당한 사람의 우울과 고독마저 해결되진 않는다. <한 시간의 이야기>라는 단편은 아예 남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점차 해방감을 느끼는 여성의 감정을 다룬다. 각성이 일어나는 순간, 타인이 보기에 그는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보인다. <각성>에는 독신 여성인 피아니스트가 등장하는데 어떤 사람들은 그를 “약간 정신이 나간 사람”이라고 말한다.

남북전쟁 당시 남부군에 참여한 군인 출신인 에드나의 아버지는 사위에게 딸을 너무 풀어준다며, 강압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것이 바로 아내를 다루는 유일한 방법”이라며. 핏줄보다 견고한 이 남성연대. 규범을 만들고 주도하는 입장에 있는 이들은 정신병이라는 낙인을 쉽게 활용한다. 훈육, 감금, 체벌의 대상으로 삼아 이 ‘정신병자’들을 교정시키려 한다. 이렇게 특권을 유지하기 위해 타인의 보편적 인권 요구를 정신병으로 몰아간다.

허구적인 자아를 조금씩 벗어던지던 에드나는 결국 아무 옷도 입지 않고 바다로 들어간다. 에드나의 각성. 우주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깨달은 그는 멕시코만에 제 몸을 던져 구속에서 벗어난다. 그는 멀리, 점점 더 멀리 수영하며 끝없이 앞으로 나아간다. 기운이 점점 빠진다. 제정신으로 보이지 않겠지만 이미 떠나온 세계로 이제 다시 돌아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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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영
프랑스에서 예술사회학을 공부했다. 현재는 미국에 거주하며 예술과 정치에 대한 글쓰기를 이어가고 있다. 지은 책으로 '여자 사람, 여자'(전자책), '환대받을 권리, 환대할 용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