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끔찍한 동종(同種)들의 정치 /박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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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8 11:13 | 최종 업데이트 2018-06-18 11:13

6.13. 지방선거 최고 승자는 더불어민주당이다. 그리고 이번 선거 최악의 이미지들도 그들이 주로 만들어 냈다. 단연 돋보인 건 최문순 강원도지사였다. 최문순 캠프는 최 도지사 둘째 딸의 얼굴 및 전신사진을 소셜 미디어 등에 올리며 “강원 안구복지 타임이 시작되었습니다”라고 적었다. 그걸 본 순간 ‘이거 가짜뉴스 아니야?’라는 생각이 스쳤다. 1988년도 아니고 2018년에 이런 선거운동이라니, 믿을 수 없어 거듭 확인했다. 사실이었다. 그게 최문순 도지사의 공식적인 선거운동이었다. 딸의 외모를 내세운 부적절한 홍보라는 지적이 잇따르자 캠프 측은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최문순 지사의 편안한 외모와 대비되는 딸의 외모를 이야기하며 아빠와 딸이 이만큼 다르다는 걸 재미있게 표현하려는 것이었다.”

최 도지사의 ‘딸 마케팅’이 짜증과 분노를 유발했다면, 최문순 캠프가 제작한 소위 “원팀” 동영상은 거의 공포를 불러일으켰다. “아재들의 하드캐리”라는 해시태그를 앞세운 그 영상에는 수십 명의 장년 남성들이 등장한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강원지역 시장, 군수, 도의원, 군의원 후보들이다. 카메라는 처음에 최문순 지사를 비추다가 점점 화각을 넓혀가고, 남자들은 일제히 어깨를 움찔거리며 “원팀, 원팀, 원팀, 원팀”을 연호한다. 이걸 만들고 캠프측은 ‘아재’들의 어색한 표정과 몸짓을 코믹하게 잘 표현했다고 자화자찬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 영상은 환공포증(trypophobia) 없는 사람에게 환공포증을 유발할 정도로 강렬한 ‘이미지 테러’였다. 거기에 여성은 한 명도 없었다. 청년도 보이지 않았다. 어딘가 닮은 인상의 사내들이 엇비슷한 옷을 입고 같은 말을 되풀이하고 있을 따름이다. 숨 막히는 이 동질성(homogeneity)과 동어반복(tautology)은 강력한 신호다. “강원도 정치는 우리 같은 사람들이 하는 것”이라는 신호.

▲최문순 강원도지사 후보 유튜브 영상 갈무리

강원도 정치만의 문제일까? 그럴 리가. 더불어민주당이 지난 4월 30일 공개한 전국 17개 광역단체장 후보 공천 지도 포스터는 이것이 한국 전체의 문제임을 고스란히 폭로한다. 그 17명 중에도 여성은 한 명도 없었다. 후보자의 100%가 남성이며, 64.7%는 소위 고시 출신이다(사법시험 출신 변호사 4명, 행정고시 출신 7명). 웹상에 공개된 후보 나이를 가지고 평균을 내보니 약 57세다. 자유한국당 등 원내 정당 대부분이 민주당과 별반 다르지 않다. 자유한국당의 경우 당선권과 격차가 큰 송아영 세종시장 후보를 유일한 여성 후보로 내세웠다. 그나마 한 명 있으니 민주당보다 낫다고 해야 할까. 글쎄, 잘 봐줘도 ‘오십 보 오십 일보’다.

국회의원 선거는 기초자치 및 광역자치단체장 선거에 비하면 그나마 부문별 할당제가 일부 작동하기에 좀 나은 편이지만, 여전히 법률‧행정 엘리트 출신이 장악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진보교육감’ 선거에 남자 대학교수들이 대거 몰려가는 현상 역시 ‘끔찍한 동종성’의 일부를 이룬다. 특정 학문 분야에서 전문성을 발휘해야 할 대학교수가 이렇게 너도나도 초중등 교육 현장에 뛰어드는 현상에 대해 이미 많은 사람들이 우려와 비판을 쏟아낸 바 있다. 그 경향은 이번에도 변하지 않았다. 현대공고 교사 출신으로 교육‧노동운동에 헌신해온 노옥희 후보가 울산시 교육감에 당선된 것이 거의 유일한 낭보였다.

핵심은 이것이다. 정치의 상층 집단이 극도로 동질적이라는 것. ‘특정 경험을 공유한, 먹고 살만한 아재만의 리그’라는 것. 일부의 젠더, 일부의 세대, 일부의 계급만 대표하는 자들이 모든 요직을 독점하고 있다는 것. 대한민국 공직선거법, 정치자금법, 정당법 하나하나가 그런 ‘유한계급(leisure class)-고학력-정상가족-장년 남성’들에게 유리하게끔 만들어져 있다. 일부 동창회와 향우회에게는, 돈 많이 벌었거나 공부 잘한 남자들을 권력의 중심으로 ‘밀어 올리고 꽂아 넣는’ 게 오랫동안 존재 이유의 하나였다. 그런 제도와 문화들이 합쳐져 끈끈하고 거대한 장벽을 만들어냈고 비주류를 철저히 차단했다.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 약자와 소수자는 늘 과소대표된다. 아예 투명인간 취급받기도 한다. 그들에게야말로 정치적 대표가 가장 절실히 필요하지만, 시간과 돈이라는 자원 앞에서 ‘유한계급 아재들’에게 상대가 되지 않는다. 의지와 비전이 있음에도 현실 정치에 직접 도전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다. 한국 정치의 ‘끔찍한 동종성(同種性)’은 그렇게 여성을 배제하고, 청년을 배제하고, 노동을 배제하는 방향으로 고착되어 왔다.

왜 이 구조는 바뀌지 않는가. 크게 두 가지 배경이 있다. 첫째는 당연하게도 수혜자들, 권력자들이 그 구조를 바꾸려 들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입으로는 정치관계법을 개혁하자고 떠들어대지만, 기득권자가 기득권을 허무는 짓에 적극적으로 나설 리 없다. 매번 개혁안이 요식행위로 그치는 결정적 이유다. 둘째는 권력자를 포함한 유권자 다수의 ‘신념’ 때문이다. 쉽게 말해 ‘민주주의는 다수결이고 득표순으로 권력이 주는 게 공정하다’는 사고방식이다. ‘선거 능력주의’라 부를 수 있겠다.

선거 능력주의에 입각하면 여성, 소수자, 빈곤층, 청년세대에게 정치권력을 일정 비율 이상 할당하는 건 “불공정”한 조치다. “역차별”이며 “무임승차”다. 모두 똑같은 출발선에서 출발해야 하는데 왜 “능력도 안 되는 것들”에게 기회를 더 줘야 하냔 것이다. 그렇다. 소수자, 비주류에게 기회를 더 많이 주는 것은 “불공정”한 일이다. 그러나 그 ‘의도된 불공정’이야말로 ‘실질적 공정성’에 조금이나마 다가갈 수 있게 만든다. 서울대 출신 변호사 남성과 지방대 출신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우리 사회가 주는 ‘정치적 기회의 질과 양’은 처음부터 완전히 달랐기 때문이다. ‘실질적 공정 사회’는 더 많은 여성이, 더 많은 노동자가, 더 많은 소수자가 현실정치의 무대에 설 수 있을 때 비로소 도래할 수 있다. 이제 끝내야 한다, 끔찍한 동종들의 정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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