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노사 평화의 전당과 노동자의 힘! /고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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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9 13:59 | 최종 업데이트 2018-06-19 14:00

대구시가 중앙정부의 낚시에 낚.여 덜컥, 노사의 상생, 평화를 위한답시고 ‘노사 평화의 전당 건립’을 대구의 이미지 창조공모사업으로 따왔다. 2017년 4월, 대구지역 노동자 월 급여는 284만6천 원으로 전국 16개 시·도 중 15위, 월 노동시간은 178.3시간으로 전국에서 다섯 번째로 많다는, 이 열악한 노동조건을 ‘대구형 노사상생 모델’의 주요인으로 들고 있다.

‘붉은 조끼와 머리띠의 추방’, ‘고임금·강성노조 걱정 없는 생태계 조성’ 등의 문구는 대구시 관료들이 머리를 맞대고 뿌린 정형의 언어이다. 회사는 노동자와 적대일 수 없으니 그래서 노사 간의 평화를 통해 ‘노동자의 임금착취로 이윤을 얻는 자본가의 생리라는 진리’를 깨끗이 씻겠다는 의지로 보여진다만,

아시다시피 노동자와 자본 사이의 문제는 긴 역사에서 한치도 어긋남 없이 공생해오지 않았다. 인류의 역사를 통하여, 자본주의 내에선 공생은커녕, 노동자에게 한 푼이라도 덜 주어야만 하는 것이 성공을 담보하는 자본가의 미덕이라는 것은 매우 자명한 일이었다.

주위를 둘러보면 노동자의 피땀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없다. 세상은 온통 화려하지만,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먹고 살기 위해선 내일 아침에도 제 발걸음으로 공장에 가서 몸을 움직여야 회사가 돌아간다. 자본가야말로 지금 이 순간에도 골머리를 싸매고 하는 일이란 갖은 방법을 동원하여 임금을 줄이고 이윤을 극대화하는 일일 것이다. 그런데 상생이라니?

그렇다면 무엇이 중앙정부뿐만 아니라 대구시 관료로 하여금 시종일관 노동자의 요구가 기업의 편에서 불이익이라고 나발을 불어대며 그것을 개선하는 일이 평화요, 상생이라고 여기는가 말이다. 촛불정국이 지나가고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도 적폐들의 온상지를 향해 꺼지지 않는 촛불들이 계속 타오르고 있으니, 두려운 것인가? 이 모든 화살의 끝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가장 정확히 알고 있기 때문인가?

예를 들어, 사드를 반대하면 빨갱이라 그러질 않나, 북핵을 겨냥한 것이 아님이 들통나자 우리도 핵을 가져야 한다는 억지를 부리고, 점점 조여오는 친일 역사 청산 미비의 혐의를 감추고, 자신의 콩알만한 권력과 인맥의 쇠사슬이 끊길까 두려운 나머지 처음부터 잘못 꿴 단추가 꼬리에 꼬리를 물어 결국 노동자의 피땀어린 노동의 외침에 그 잘못을 모두 전가하려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든다.

아니면 붉은 조끼 머리띠 강성노조 ‘추방’이라는 말을 어떻게 함부로 쓸 수 있겠나?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대구의 임금체불 노동자수가 2만4975명이고 체불임금이 1151억 2천만 원으로 전국 꼴찌에 가까운 상태를 알고 있을진대, 오히려 더욱 투쟁의 절박함에 인지상정을 다 하여 배부른 자본가를 질타하고 꾸짖을 일이지, 도대체 법치국가라 명명하며 법 위에 군림하려드는 자본가가 붉은 조끼와 붉은 띠를 두르며 땀의 진실을 외치기 때문에 경제와 기업이 어려움을 겪는다는 게 말이 되는 말인가.

북미회담을 거치면서 빨갱이로 몰아세울 명분도 서서히 사라질 기미를 보이자, 능수능란한 관료들의 머리에서, 특히 빨갱이 특수를 특별히 누려온 대구 관료들의 머리에서 나온 기발한 정책이라 아니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이 간절한 노사 평화니 상생이니 하는 건설정책일 것이다. 건설업자들과의 담합으로 떨어지는 고물은 고물대로 챙기고, 새 시대를 향한 꺼지지 않은 민중들의 촛불에 대한 두려움을 애써 피하려는 속내를 숨기려 의젓하게 가져다 붙이는 부당한 언어라고 아니할 수 없다.

물론 관료들을 포함한 수구 보수세력들이 제일 두려운 것은 이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노동자 대중들의 힘일 것이다. 어쩌면 붉은 조끼에 머리띠를 두른 노동자의 고충을 양심적으로 외면하기 어려운 절대적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대구는 다르고 대구에서는 상황이 여전히 다르다고 해서, 대구가 언제까지나 다를 것 같지는 않으리란 위기의식을 눈치채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대구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노사 평화의 전당을 꾸리자는 침 발린 자구책이라도 써야 할 형편이라면, 올 데까지 온 것은 분명하리라.

그렇다 하더라도 지금의 시대가 어떻게 굴러왔는지 그 관성의 못된 정책을 씻지 못하는 버릇은, 지금 노동자들이 얼마나 아픔을 딛고 맹아를 피워올리고 있음을 알고나 있는지, 애써 모르고 싶은지 되묻고 싶지만, 이미 가진 기득권을 지키려 있는 몸부림을 다하여 이 프로젝트를 강행할 것임이 분명한데, 이제 어떡할 것인가? 노동자들의 힘을 기대해 볼뿐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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