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 돋보기] 대한민국 인권 밖에 존재하는 난민과 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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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7 15:54 | 최종 업데이트 2018-06-27 16:04

대구에서 10번째 퀴어문화축제가 열렸다. 올해도 어김없이 행사 곳곳에서 동성애 등을 이유로 충돌이 발생했다. 제주에서는 예멘 국적 사람들이 난민 지위를 얻기 위한 심사를 받고 있고, 이에 대한 찬반 논란은 청와대 청원까지 이어졌다.

▲[사진=대구퀴어문화축제 페이스북]

대구와 제주의 전혀 다른 두 이야기는 연결돼 있다. 퀴어와 난민은 혐오와 차별의 대상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지금 대한민국에 존재한다.

예멘 상황을 잠시만 들여다보자. 예멘은 우리처럼 남, 북 분단국가였다. 원인은 영국의 식민통치 때문이었다. 1955년 북예멘은 공화정, 67년 남예멘에는 공산주의 정권이 수립된다. 결국 79년 남북전쟁 이후 80년 예멘공화국으로 통일되지만, 불안한 정치 황과 수니파·시아파 갈등, 경제 파탄, 내전 등으로 국가 기능은 거의 상실된 상황이다.

2016년을 기준으로 예멘은 국제정치에서 사용하는 용어 중 하나인 파탄국가(즉 실패한 국가)로 규정된다. 이러한 파탄국가에서는 내전이나, 학살, 심각한 기아와 질병, 대량 난민 발생과 유출 등이 발생한다. 현재 어린이 37만 명이 영양실조와 아사 위기에 놓여 있다. 5세 이하 아동 31%는 극심한 영양실조를 겪고 있다. 매년 1만 명 이상 사망하고 콜레라가 창궐해도 손쓸 방법이 없어 2달 만에 사망자 1,500여 명이 발생했으며, 이 중 25%가 어린이였다. 여기서 살고자 탈출해 온 사람들 중 일부가 현재 제주도에 머무르고 있다.

성소수자는 LGBTAIQ로 명칭할 수 있다. 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무성애자, 인터섹스, 퀘스쳐너리의 이니셜의 앞자리를 땄다. 이성애가 아닌 다른 모든 형태의 성적 지향을 포함한다. 성소수자의 약 90%는 사회적인 억압과 차별로 본인의 성정체성을 가족에게도 알리지 않고 살아간다.

1973년 미국에서 동성애는 질병이 아니라고 밝혀지고, 2016년 3월 세계정신의학회가 동성애는 질병이 아님을 확인하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커밍아웃(본인의 성정체성을 세상에 밝힘) 이후에도 70% 이상이 차별과 혐오를 직, 간접적으로 경험한 바 있다고 한다. 억압과 차별의 속에서 1년에 한 번, 그들이 존재하고 있으며 오늘 하루만큼은 흥겹게 어울려보자고 거리로 쏟아져 나온 것이 퀴어축제이다.

이 두 사람에 대한 뉴스가 생산될 때마다 끔찍할 정도의 혐오와 차별적 댓글이 생산된다. ‘예멘에서 온 난민은 무슬림이어서 대한민국이 곧 이슬람 국가가 되어서, 여성들이 강간당하는 사회의 위험이 될 수 있다’, ‘우리도 먹고살기 힘든데, 난민들이 와서 경제가 더 어려워진다’라는 내용을 중심으로 여론이 만들어진다. 매우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던 유명 배우가 난민 옹호 발언을 하자 ‘중학교 밖에 안 나온 배우 주제에’라는 심각한 인신공격적인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퀴어 축제에 대한 댓글도 별반 다르지 않다. ‘동성애 하다가 에이즈 걸리면 국가 세금으로 치료하니 나쁘다’, ‘에이즈 전파 시키는 동성애자들’, ‘사회 윤리에 반하고 저출산 시대에 반사회적인 집단’이라는 내용이 중심이다.

단지, 사회 다수의 구성원과 다른 상황에 처해 있다는 이유로 이렇게 차마 글로 옮기기도 어려울 정도의 끔찍한 혐오를 쏟아 내는 것이 가능한 것일까 고민할 수밖에 없다. 인간으로 태어나 이 사회를 구성한다면 누구나 누려야 하는 권리가 존재하고 그것이 ‘인권’이라면 이들은 현재 인권밖에 머무르고 있다.

우리 인류가 지나온 역사 속에서도 대상은 다르지만, 분명히 끔찍한 차별과 혐오의 기록이 남아 있다.

신이 아닌 인간이기 때문에 완벽할 수 없다. 그러한 이유로 인간은 끊임없이 인권사에서도 오류를 반복해왔다. 신의 이름으로 무수한 젊은이들을 전쟁에 동원해서 죽게 했으며, 마녀라는 이름으로 여성을 불태워 죽였다. 심지어 나라를 지켜낸 영웅이었지만 마녀라는 혐오 전제 앞에서는 생명을 지킬 도리가 없었다. 종교와 민족이 다르다는 이유로 가슴에는 노란색 별을 달고 홀로코스트의 희생양이 되어야 했던 유대인의 역사가 있다.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대지진의 혼란 틈에서 학살당했던 우리의 슬픈 역사도 있었다.

이 끔찍한 역사의 기록들은 증명한다. 단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대상을 당장 학살하거나 혐오하고 차별하지는 못한다. 이러한 혐오와 차별, 학살을 정당화하기 위해서는 그에 합당한 위험요소가 존재해야 한다. 존재하지 않는다면 만들어라도 냈다.

현명하거나 능력이 있는 여성은 그 사회에서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에 마녀라는 위험을 부과했으며, 유대인은 독일인이 가진 부와 경제적 지위를 침탈하는 주체였기에 위험했으며, 성소수자는 에이즈를 전파시키기 때문에, 이슬람교도들은 강강과 조혼율이 높아 우리 아이들이 위험에 노출될 수 있기 때문에 우리 사회는 적극적으로 이들을 배척해야 한다는 논리가 만들어진다.

우리가 아닌 다른 혐오와 차별의 대상을 만들어 내서 공격하면, 우리 내부의 결속력은 강해질 수밖에 없다. 나치가 유대인을 학살하면서 내세운 차별과 혐오도 그들의 결속력을 공고히 하는 수단이었으며, 일제가 관동대지진의 혼란기에 조선인들을 혐오와 차별의 대상으로 내세워 학살을 자행했던 것 역시 혼란해진 그들 사회의 결속을 위함이었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바대로다.

어떠한 집단이나 권력의 결속을 위한 목적으로 혐오가 이렇듯 노골적으로 조장되고 있는지 굳이 말하지 않는다. 누구나 다른 생각과 관점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하나하나 열거해서 끄집어낼 필요는 없을 듯 하다.

그렇지만 기억해야할 것은, 사회 일부의 결속으로 지속되는 평화는 없다는 것이다.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한국과 다른 동남아 식민지 국가를 수탈하고 침략하였으면서도 지금도 크게 반성하지 않는 이유는 그들이 전쟁의 선봉에 서서 서구 제국주의와 맞서지 않았다면, 동아시아의 평화를 보장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지금도 일본의 지배계급들은 그들의 전쟁은 아시아인들을 위해 일본이 희생한 것으로 정당화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전쟁 기간 동안 발생한 비인류적 범죄(위안부, 강제 징용, 학살 등)은 일본이 대표주자가 되어 아시아를 위해 전쟁을 해주기 때문에 아시아가 일부 감내해야 할 희생에 부과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즉, 그들이 이야기하는 평화와 우리가 원하는 평화는 다른 평화인 것이다.

독일이 지금도 유대인학살자 묘비앞에서 반성하고, 아우슈비츠를 보존하는 것은 수단이 된 혐오가 가져올 끔찍한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기 위함이다. 우리가 일본에 대하여 끊임없이 전쟁에 대해 책임지고 사과하라고 요구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의 이유이다.

혐오와 차별은 세상을 평화로 가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큰 혼돈에 빠트리는 기폭제가 될 뿐이다. 역사가 말해주고 있다.

알고 있는가? 지금은 이해할 수 없지만 고대로마 시대부터 왼손잡이도 혐오와 차별의 대상이었다. 라틴어에서는 '불운'과 같은 단어를 사용했고, 일본에서는 왼손잡이 여성은 합당한 이혼의 대상이 되었고, 중세에서는 마녀인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기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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