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먹칠] 천안함의 목소리 / 박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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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30 13:36 | 최종 업데이트 2018-07-30 13:37

‘패잔병’, 천안함 생존 장병들을 부르는 또 다른 이름이었다. 언론과 대중이 ‘1번’이 적혀진 어뢰가 남측의 것이냐, 북측의 것이냐고 논쟁할 때 천안함 생존병들은 ‘패잔병’으로 불리며 천안함 선체 내부를 수습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군인으로서 생존병들은 명령에 불복종할 수 없었다. 외상 후 스트레스로 잠을 자지 못하고, 정서적으로 불안한 상태가 되었을 때는 ‘관심병사’가 되어 동료들에게 따돌림을 당했다.

▲(2015.3.16) 한 시민이 천안함 사건 5주기를 앞두고 인천시 옹진군 백령도 천안함 46용사 위령탑 앞에서 헌화를 하고 있다. (사진=오마이뉴스 이희훈 기자)

“병원에 있을 때 기자들이 생존자 가족이라고 거짓말하고 들어와 인터뷰하려 했다.” 8년이 지난 뒤 천안함 생존 장병은 <한겨레21>과의 인터뷰에서 이처럼 말했다. 사고가 발생한 뒤 언론은 ‘천안함 사건은 북한의 소행인가?’라는 질문을 반복해서 재생산했다. 군대라는 특수한 조직에서 발생한 사고였고, 북한의 어뢰가 발견되었다. 이 사실만으로 천안함 사건은 ‘전쟁’이 되었고, 대북안보와 관련된 사상검증의 잣대로 활용되어왔다. 그 과정에서 동료를 잃고, 목숨을 잃을 뻔한 생존 장병들의 트라우마에 대한 배려는 없었다. 한국사회는 여태껏 개인의 고통을 단지 숫자와 사상검증의 잣대로만 이용해온 것은 아니었나.

피해자는 보호받아야 하는 존재다. 사고 이후 겪는 트라우마를 함부로 재단하려 해선 안 된다. 사건의 경위를 따지는 것은 그다음이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사건의 피해를 ‘특정화’ 한다. 사건의 특이성을 해석하기 위해 피해자들의 고통보단 인과관계, 얽혀있는 이익관계를 확인하는데 에너지를 쏟는다. 피해자의 고통은 개인의 것으로 여긴다. 그러다 보니 국가와 언론에서 소외되는 사람은 피해자, 생존자들이 되는 것이다. 피해자들의 고통은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로 치부된다.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가까이 들을 수 있고, 들어야만 했던 언론조차 피해자 가족 틈으로 숨어들어 가 미처 알아내지 못한 정보를 캐내기에 여념이 없었다. 여전히 천안함 사건 생존 장병들은 국가의 보호도, 사회적 배려도 받지 못하고 있다.

지금에서야 천안함 생존 장병들은 <한겨레21>과 인터뷰를 시작으로 자신들이 겪고 있는 고통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은 언론에 대한 불신과 국가로부터 보호받지 못했다는 사실이 그들을 지금까지도 괴롭히고 있었다. 그들이 목소리를 내는 이유는 또 다른 피해자에게 자신들이 겪고 있는 트라우마를 겪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일지도 모른다. 피해자는 다른 피해자를 생각한다. 치유되지 못한 트라우마를 언론과 국가가 재생산하는 동안 서로 연대함으로 그들도 살아있다 세상에 알리고자 한다. 그들의 목소리가 당신은 여전히 들리지 않는가?

단순히 개인의 고통을 정치적 사상검증과 숫자로 치환하는 언론만의 잘못이 아니며, 그들에게 국가가 해야 할 외상 후 스트레스 치료의 부재만의 잘못이 아니다. <한겨레21>의 천안함 생존 장병 인터뷰 기사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겠습니다’는 말로 끝난다. 처음부터 다시, 피해자들이 국가와 언론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우리는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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