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년 경산도서관 마지막 문 여는 날···”편하게 오기 좋았는데 아쉽습니다”

1968년 12월 준공···이육주 육주학원 전 이사장 기부로
생활문화센터로 탈바꿈···장서 일부 장산도서관으로
일부러 발길한 주민들, "이제 어디가야 할까요"

16:43

제 나이는 쉰 하나. 68년 12월 준공됐으니 만으로는 오십이 안 되었네요. 사람이라면 한창때겠지만, 이 바닥에서는 조금 달라요. 이래 봬도 경산시가 운영하는 6개 도서관 중 최고(最古) 도서관이니까요.

길다면 긴 50년, 많은 사람을 만났습니다. 오늘 아침에도 스무 명이나 되는 주민이 열람실에서 책을 읽고 있는걸요. 아, 오늘은 부러 찾아온 분들도 보이네요. 7월 31일, 오늘이 제가 주민 여러분을 만날 수 있는 마지막 날이거든요.

▲경산도서관 입구. 경산도서관 운영 마지막 날을 보기 위해 김 모 (61) 씨가 도서관을 찾았다.
▲경산도서관 입구에 등나무 쉼터가 있다

기억이 가물가물하네요. 저는 이육주 여사가 자숙도서관을 기부하면서 태어났어요. 이육주 여사는 경산여중·고 학교법인인 육주학원 이사장이었지요. 지금은 작고했지만, ‘경산 안부자’로 불리던 故 안병규 씨가 제가 지금 사는 경산시 서상동 땅을 기증했어요. 그 후 줄곧 이 자리에서 주민들의 사랑을 받았어요.

작은 화단에 한 그루 있는 매화나무에서 꽃이 피면 봄이 오는 걸 알았고, 개나리와 연산홍도 뒤이어 피었지요. 무엇보다 저의 자랑은 등나무 쉼터였답니다. 초봄부터 은은한 향을 내며 등나무 꽃은 피어나고, 라일락이 필 무렵 등나무 꽃도 만개하지요. 등나무 아래에서 여러분은 도시락도 먹고, 지나가다가 잠시 더위를 피하셨지요. 한 번씩 시끌벅적 해 질 때면 도서관 환경관리 담당 박 여사(58)님이 공부하는 분들을 위해 귀띔하셨어요. 그러면 “아, 참 여기 도서관이었지”하면서 새삼스럽게 놀라는 모습도 보기 좋았답니다.

박 여사님은 저를 자기 집처럼 돌봐주셨어요. 무기계약직이다 보니 이곳에서 10년째 혼자 관리를 도맡았거든요. 박 여사님은 10년 동안 저를 보면서, 꽃이 피고 지고 하는 동안 변함없이 서 있는 제 모습이 좋았다고 해요.

▲경산도서관 뒤뜰. 청사 관리 담당 박 모 씨의 여벌 옷이 걸려 있다
▲경산도서관 내부

긴 시간 동안 박 여사님은 이곳을 찾는 주민들과 이웃처럼 지내게 됐어요. 오늘 보고 다음 날 또 보면 밤새 안녕하셨구나 해서 좋고. 어느 날 안 보이면 어디 취직해 가셨구나 하면서 좋고. 오랜만에 다시 오면 직장이 마음에 안 들었나 걱정도 됐지만, 오랜만에 봐서 좋았다고 해요.

아, 김 선생님(61, 중방동)도 오셨네요. 김 선생님은 공무원 퇴직 후 저를 자주 찾아 인문 서적도 보고, 한자 공부도 했지요.

“편하게 오기 좋았는데 아쉽습니다. 건물은 오래됐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마음이 편했어요. 이제 내일부턴 어디 가야 할까요? 여기는 저처럼 나이 많은 사람들이 편하게 오기 좋았는데, 이제 젊은 사람들 많은 도서관에 가기도 미안하고. 리모델링 하더라도 계속 도서관을 하면 좋을 텐데. 장산도서관에 가라고 하는데 거기는 열람실이 없어요. 여기에서 나이 많은 사람끼리 안면도 트고 살아온 얘기도 하고 좋았습니다. 마지막 날인데 일부러 한번 찾아 왔어요”

▲경산도서관 역사가 적힌 현판
▲도서관 앞 등나무

김창식 씨(57, 대정동)도 오셨네요. 인근 시장도 있어서 자주 오셨는데, 이제 어디 가실 건가요?

“장 보러 왔다가 알게 됐어요. 조금 오래된 건물이지만, 그래서 더욱 정감이 갔어요. 열람실도 넓고, 시장도 가까워서 군것질하기도 좋고. 공부도 잘되고. 저처럼 중년 이상 이용자가 70%는 되는 것 같아요. 마음 편하게 시간 보낼 수 있으니까요. 이렇게 좋은데 왜 문을 닫는지 모르겠어요. 대형화하는 것보다 작은 도서관 많은 게 주민들한테 좋잖아요. 상권에도 도움 될 테고. 장산도서관은 대중교통도 불편해요. 여기는 경산 시내 버스 다 오는 곳인데 거기는 버스가 없어요. 작은 도서관을 계속 만들어도 모자랄 판인데, 여기 찾는 주민들은 왜 도서관을 없애느냐면서 불만이 많아요.”

이제 인사를 마치려니 아쉬워요. 이곳에는 이제 저 대신 생활문화센터가 올 거예요. 음악연습실, 북카페, 댄스연습실 등이 들어와요. 지금과는 조금 다르지만, 그때도 찾아주길 바라요.

매화꽃으로 시작해 모과잎이 떨어지면 저의 한 해도 가는데, 등나무 꽃 지는 모습을 본 것으로 위안으로 삼아야겠어요. 고마웠습니다.

▲경산도서관 청사 관리 담당 박 모씨
▲경산도서관 장서 일부가 장산도서관으로 이관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