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준의 육아父담] 공주는 이제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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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는 공주가 산다. 언제부턴가 딸을 ‘공주’라 부르던 것이 이제는 입에 붙어 버렸다. “공주야. 학교 가야지.”, “공주야. 밥 먹자.”, “공주야. 이제 씻자.” 이렇게 하도 불러대는 통에 네 살 동생은 누나 이름을 공주로 헷갈릴 정도다. 우리 집 공주가 직접 지은 자기 별명도 유치원 다닐 때는 ‘발레 공주’였다가 학교를 가고 ‘먹방 공주’로 바뀌었다. 또래 여자 친구들의 별명도 공주가 붙거나, 요정이 붙거나 다 엇비슷하다. 이렇게 딸이 있는 모든 집에는 공주가 산다. 아내도 처갓집에 가면 아직까지 ‘공주’로 불릴 정도니까.

공주는 동화책을 읽으며 공주의 꿈을 키운다. 신데렐라, 잠자는 숲속의 공주, 백설공주를 통해서 말이다. 동화 속 공주는 하나같이 예쁘고 착하다. 그래서 남자들은 홀딱 반하고 여자들은 시기와 질투를 한다.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가진 것은 미모밖에 없는 공주는 한없이 약하고 눈치도 없다. 굳이 남들이 말리는 짓을 하여 사서 고생을 하고 위기에 처하기도 한다. 물론 그 상황에서도 문제를 해결할 능력과 의지도 없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 없다. 공주의 아름다움에 반해 주변 사람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두 팔 걷어붙이고 도울 테니까. 세상 가장 쓸데없는 걱정이 공주걱정이다. 그리고 오매불망 기다리던 ‘백마 탄 왕자님’이 나타나 결국 공주를 구한다. 드디어 왕자를 만난 공주는 식상하지만, 당연한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로 끝나는 해피엔딩을 맞이한다. 예쁘고 착하고 운까지 좋다. 이 정도면 양반이다. 감금 당하고 납치당하는 엄지공주 같은 동화는 읽어주기 민망할 정도다.

▲KBS2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출연 중인 봉태규 씨는 아들 시하가 커서 공주가 되고 싶다고 하자, “시하는 공주해도 돼요”라고 말해준다. (사진=슈퍼맨이 돌아왔다 갈무리)

공주는 또 애니메이션을 통해서 여성의 역할을 배운다. 거의 주인공은 남자 캐릭터, 여자 캐릭터는 조력자에 불과하다. 지구를 지키는 용사 중에서도 여자는 홍일점 딱 한 명에 불과하다. 남자는 설치고 나대도 괜찮고 여자는 상냥하게 다 받아줘야 한다. 보조하고, 양보하고, 이해해야 하는 것이 여자의 역할이자 미덕인 것처럼 보인다. 한때 ‘뽀통령’이라 불렸던 ‘뽀로로’도 그렇다. 주인공이자 팀의 리더인 펭귄 뽀로로는 남자 캐릭터다. 우당탕 실수도 많고 제멋대로지만 모두가 이해해준다. 여자 캐릭터인 비버 루피는 성격이 좀 예민하고 변덕스럽다. 루피의 취미는 요리다. 요리를 해서 잘 먹이는 것이 삶의 낙이다. 소심하고 잘 삐지는 루피는 항상 주위의 관심을 갈구한다. 또 다른 여자 캐릭터 펭귄 패티의 등장으로 관심이 쏠리자 질투를 하고 상처를 받기도 한다. 반면 패티는 진취적이고 외향적인 성격을 가진 정반대의 캐릭터다. 남자 캐릭터들은 대놓고 패티를 좋아한다. 여자가 꼭 누구의 관심과 사랑을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닌데 말이다.

공주는 현실에서도 ‘여자다움’을 강요받고 배운다. 딸에게 “멋져”라고 한마디 했더니 대뜸 하는 말이 그건 남자한테 하는 말이라고 한다. 남자가 멋있어야 하고 여자는 예뻐야 한다고 배운다. 또 좋아하는 색은 꼭 핑크색 계열이어야 한다. 블링블링, 샤방샤방 화려한 액세서리와 드레스로 주위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아야 한다. 아동복을 파는 가게마다 온통 그런 색들의 옷과 가방이 진열되어 있다. 오히려 평범하고 무난한 스타일을 찾기 어려운 지경이다. 반대로 남자 아이의 옷은 온통 남색 아니면 검정색이다. 특색이 없다.

행동거지도 공주답게 조신하고 차분해야 한다. 다리를 쩍 벌리거나 옷을 벌렁 까뒤집다가는 “여자는 그러면 안 돼!” 불호령을 맞는다. 뛰어놀 때도 항상 머리와 옷가지를 단정하게 해야 한다. 밥을 먹을 때도 허겁지겁 게걸스럽게 먹으면 안 된다. 남자 아이가 까불고 노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여자 아이는 행실에 주의해야 한다. 사랑받기 위해서는 눈웃음과 애교는 기본이다. 부탁하거나 원하는 것이 있을 때는 몸을 배배 꼬면서 혀 짧은소리도 내야 한다.

여자니까 하지 말아야 하는 것과 조심해야 하는 것이 세상에 너무 많다. 공주로 사는 것은 참 힘들다. 그리고 좀 더 크면 훈장이라도 되는 듯 ‘여신’이라는 타이틀을 붙여댄다. 모든 집에는 공주라 불리는 딸들이 있다. 그 딸들은 동화를 읽고, 만화를 보고, 어른들의 가르침을 받으며 여자다움을 배우고 강요당한다. 하지만 여자라고 해서 예쁘고 귀여울 필요는 없다. 애교를 장착할 필요도 없다. 남자도 예쁠 수 있고 여자도 멋있을 수 있다. 남자도 핑크색을 좋아할 수 있고, 여자도 남색을 좋아할 수 있다. 여자도 주인공이 될 수 있고 남자도 빛나는 조연이 될 수 있다. 각자의 개성과 취향이 다를 뿐, 능력에 맞춰 역량을 발휘하면 되는 일이다.

세상이 변하고 있다. 여성들이 이제는 공주로 불리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 백마 탄 왕자님은 필요가 없다고 말하고 있다. 여자도 무엇이든 스스로 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제는 공주라는 애칭, 여신이라는 타이틀과 작별을 할 때다. 일단 집집마다 있는 수많은 공주를 이제 놓아주자. 솔직히 공주 대접도 해주지 않으면서 말이다. 아들은 그냥 ‘아들’이라 부르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