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수경 칼럼] 사이버성폭력 앞에서 공권력 스스로 인정한 진실, ‘성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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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이 단단히 화가 났다. 지난 십수 년 동안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사이버 성폭력에 대한 단속과 처벌에는 미온적이었던 공권력이 여성이 남성을 대상으로 범죄를 저지르자 곧바로 신속하게 대응한 것이다. 지난 5월 홍익대 남성 모델 사진 유출 사건과 며칠 전 경찰이 온라인 여성 커뮤니티 사이트 워마드 운영자에 대해 체포영장을 발부했다는 소식이 그렇다.

경찰이 밝힌 워마드 운영자의 혐의는 ‘음란물 유포 방조죄’, 즉 회원이 올린 남성의 나체 사진을 삭제하지 않았다는 이유다. 미국에 있는 운영자를 체포하기 위해 미국에 공조 수사를 요청했고, 범인 인도 요청과 인터폴 적색 수배 요청도 검토 중이라고 한다. 경찰이 드디어 사이버 성폭력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기 시작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런데 문제는 여성이 피해자이고 남성이 가해자인 수많은 사건에서 전형적으로 보여준 대응과 다르다는데 있다.

마치 가정폭력을 신고할 때마다 집안일은 둘이 알아서 해결하라며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고 돌아가던 경찰이 참다못한 피해 여성이 정당방위로 가해 남성에게 상해를 입히자 바로 ‘가해’ 여성을 구속 수사, 엄벌에 처하는 경우와 비슷하다.

그래서 여성들이 화가 난 것이다. 지금까지 네 차례에 걸쳐 불법촬영에 대한 편파적인 수사를 규탄하는 여성시위가 열렸다. 지난 5월 19일 처음 시작된 시위는 8월 4일 열린 4차 집회까지 주최즉 추산으로 도합 19만 명이 참여했다. 여성들의 분노와 항의는 ‘동일범죄 동일처벌’이라는 여덟 글자로 압축될 수 있다.

수많은 여성들이 동의 없이 유포된 영상이나 사진으로 인해 고통을 받고 법에 호소해 왔다. 하지만 지금까지 경찰을 비롯한 공권력은 피해 여성들의 호소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았다. 디지털 성범죄 반대 활동가들에 따르면 불법 영상물을 신고해도 ‘당사자도 아니면서 왜 자꾸 일을 만드느냐’는 경찰의 핀잔을 듣기가 허다하다고 한다.

경찰 주장처럼 해외에 서버를 두고 있는 경우 수사와 단속이 수월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국내에 서버를 두고 여전히 성업 중인 각종 인터넷 사이트와 웹하드 업체들에는 워마드에 적용한 ‘음란물 유포 방조죄’라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지 않았다. 이런 선별적인 법적용이 성차별 편파수사라는 비판을 불러온 것이다.

▲경찰이 ’워마드’ 운영자를 ‘음란물 유포 방조’ 혐의로 체포에 나선 가운데 한국여성단체연합, 성폭력상담소 등 여성단체 회원들이 10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앞에서 성차별적 편파수사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일간베스트(일베), 디시인사이드 등 남성 중심 커뮤니티뿐만 아니라, 웹하드 및 파일 호스팅 서브스를 제공하는 웹사이트에 여성을 대상으로 한 불법촬영물이 수십년간 넘쳐났다’ ‘경찰이 십수년간 할 수 있는 것을 하지 않다가 여성피의자가 등장하자 즉각 체포-수사하고 국제공조를 펼치는 등 편파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주장하며, ‘동일범죄 동일수사 즉각 진행’ ‘웹하드 카르텔과 디지털 성범죄 산업에 대한 특별수사단 구성’ 등을 촉구했다. ⓒ오마이뉴스 권우성 기자

여성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정당방위법’

차별적인 법 적용은 한국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몇 년 전 미국을 뒤흔든 두 사건을 살펴보자. 그 첫 번째는 2012년 2월 플로리다주에서 일어난 17세 흑인 청소년 트레이본 마틴 살해 사건이다. 한국에도 많이 보도되었듯이, 후드티를 입은 트레이본 마틴을 길에서 마주친 자경단원 조지 짐머만이 특별한 사유도 없이 트레이본을 수상하다고 여기고 (흑인은 잠재적 범죄자라는 인종적 편견 때문에) 뒤를 쫓다가 총으로 살해했다.

경찰은 사건 후 한 달 반 동안 짐머만을 체포조차 하지 않았다. ‘스탠드 유어 그라운드(Stand Your Ground)’라는 플로리다의 정당방위법 때문에 그를 처벌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이 법은 위급한 상황에서 일단 한발 물러날 것을 요구하는 전통적인 정당방위권과 달리 적극적으로 총기 같은 물리력을 사용해 상대를 제압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상대가 사망해도 법적 처벌을 받지 않는다. 쉽게 말해 ‘위기 상황’에서 일단 쏘고 보자는 이 법은 당연하게도 미국총기협회(NRA)가 강력히 지지하는 법이다.

인종차별에 분노한 대중이 거리에 나와 정의를 요구하자 경찰은 마지못해 짐머만을 체포하고 2급 살해 혐의로 기소했다. 하지만 흑인이 단 한 명도 포함되지 않은 배심원단은 짐머만에게 무죄 판결을 내렸다. 몸집이 훨씬 크고 총기를 지닌 짐머만이 비무장한 트레이본 마틴에게 생명의 위협을 느껴 정당방위로 총을 쏘았다는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다.

그러나 이 정당방위법은 비슷한 시기 플로리다에서 일어난 다른 사건의 피의자인 가정폭력 피해 여성에게는 적용되지 않았다.

마리사 알렉산더라는 여성은 오랫동안 남편의 폭력에 시달렸다. 남편과 별거한 후에도 살해 위협은 계속됐다. 남은 짐을 가지러 갔다 마주친 남편은 또 그녀를 죽이겠다고 위협했고, 겁에 질린 마리사는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경고 사격을 했다. 살해 의도가 없었던 그녀는 남편 뒤의 벽을 향해 총을 쐈고, 남편은 털끝 하나 다치지 않았다.

하지만 마리사는 무죄가 아니라 20년 형을 선고받았다. 남편이 마리사를 폭행해 두 번이나 체포된 경력이 있었고, 마리사가 아무도 해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재판부는 그녀의 정당방위권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다행히 항소심에서 원심이 파기되었지만, 그동안 마리사는 아이들과 떨어져 3년 동안이나 감옥에 갇혀 있어야 했다. 풀려난 뒤에도 2년 동안 전자발찌를 차야 했고, 2017년 1월이 되어서야 비로소 자유의 몸이 되었다.

비무장 흑인 청소년을 살해한 것은 정당방위 무죄. 가정폭력 피해여성이 폭력 남편의 위협에 맞서 총을 발사한 것은 다친 사람이 없어도 20년 중형. 인종주의자가 무고한 흑인을 살해한 것은 정당방위법의 보호를 받았지만, 가정폭력 피해 여성이 자신을 지키기 위해 총을 쏘았을 때 법은 이 둘에게 동일하게 적용되지 않았다.

왜 여성 몰카와 남성 몰카는 다르게 취급하는가?

법은 기존 사회 질서 유지를 주목적으로 한다. 그 사회 질서가 아무리 반동적이라 해도 말이다. 역사적인 예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노예제 사회에서 노예는 법적으로 인간이 아니라 사유재산이었다. 도망친 노예를 숨겨주는, 지금의 기준으로 볼 때 너무나 당연한 인간적 행위는 노예제의 근간을 뒤흔드는 범죄로 단죄되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법 집행은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에 함축적으로 담겨있다. 삼성 이재용을 보라.

마찬가지로 여성과 소수인종이 차별받는 사회에서 법은 근본적으로 여성과 소수인종의 편이 아니다. 물론 법이 항상 노골적인 차별을 법제화하지는 않는다. 이미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여성의 바지 착용 금지법이나 현재도 여전히 존재하는 낙태죄 같은 경우는 분명히 반여성적인 법이지만, 대부분의 법은 공평하고 중립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법이 적용되는 방식은 그 대상의 계급, 성별, 인종 등에 따라 다르다. 공평한 법 적용은 허상일 뿐이다.

인종주의와 성차별이 공기처럼 스며있는 사회에서는 백인 남성이 저지르는 범죄와 소수인종이나 여성이 저지르는 범죄는 동일한 범죄로 다루어지지 않는다. 그러하기에 백인이 흑인을 죽이는 것은 정당방위법 하에 처벌을 면할 수 있지만, 폭력에 노출된 여성의 정당방위는 같은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여성의 벗은 몸을 들여다보는 것과 남성의 벗은 몸을 들여다보는 것은 같은 범죄로 취급되지 않는다.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하는 것은 일상적으로 용인되고 심지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기도 하지만 반면 남성성을 모욕하는 시도는 성차별과 젠더 위계에 기반한 사회 질서를 뒤흔드는 행위이다.

홍대 남성 누드모델 사진을 올린 여성 피의자가 실형을 선고받았다. 그동안 비슷한 몰카범죄의 경우 대부분 선고유예, 벌금형, 집행유예 등 가벼운 판결이 내려진 것에 비춰볼 때 범죄 전력이 없는 피의자가 실형을 받은 것은 이례적이다. 2017년 한해 동안 서울지방법원의 판결을 보면 80% 이상이 벌금형과 집행유예 처분을 받았고, 실형을 선고한 경우는 10%가 채 되지 않았다. 이런 기존 관행으로 봤을 때 이번 판결이 ‘공평’한 것인지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재판부는 홍대 사건의 피고인이 저지른 범죄가 “피해자에게 회복할 수 없는 인격적 피해를 가했다”며 실형을 선고한 이유를 설명했다. 그렇다. 여성들이 지난 십수 년 동안 반복해 온 주장이 바로 이것이다. 사이버 성폭력은 피해자에게 회복할 수 없는 인격적 피해를 가하는 범죄이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왜 이런 여성들의 정당한 호소에 경찰과 사법부는 진지하게 귀기울이지 않았을까? 남성이 범죄의 피해자가 되고서야 비로소 피해자의 고통에 공감하기 시작한 걸까?

13일 경찰은 ‘사이버성폭력 특별수사단’을 꾸려 앞으로 100일 동안 웹하드 등 불법촬영유통 카르텔을 수사하겠다고 발표했다. 경찰과 사법부가 이제라도 사이버 성폭력이 얼마나 심각한 범죄인지 인지하고 그에 걸맞게 대응한다면 다행이다. 하지만 여성이 남성을 대상으로 비슷한 범죄를 저지르고서야, 수만 명의 분노한 여성들이 거리에 나와 항의해야 비로서 문제의 심각성을 알게 되었다면 씁쓸한 일이다.

그동안 수많은 여성들의 고통에 찬 절규에도 불구하고 남성들은 거의 피해를 보지 않는 범죄라서 몰카 범죄를 심각하게 다루지 않은 것이라면 이 사회와 공권력이 여성과 남성을 동등한 인격체로 보지 않았고, 그리고 여성에게 가해진 범죄와 남성에게 가해진 범죄를 동일한 범죄로 여기지 않았다는 걸 스스로 인정하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