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은행, 경산 시금고 선정 특혜 보려 ‘알아서 공무원 자녀 채용?’

박인규 전 대구은행장 채용 비리 혐의 등 3차 공판
주요 증인, ‘공무원이 직접 청탁한 적 없다’ 진술 뒤집어

20:56

경산시 A 공무원이 2013년 시금고 선정 과정에서 대구은행에 자녀 채용을 청탁했다는 혐의와 관련해 주요 증인들이 증언을 번복하면서 사건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됐다.

14일 오후 대구지방법원 제11형사부(손현찬 부장판사)는 업무상 횡령, 업무방해, 증거인멸교사, 뇌물공여 등으로 구속기소 된 박인규(64) 전 대구은행장에 대한 3차 공판을 열었다.

공판은 지난달 25일 2차 공판에 이어 경산시 공무원의 자녀 채용 비리 혐의에 대한 증인 신문으로 진행됐다. 증인으로 출석한 이들은 2013년 당시 각각 대구은행 경산시 출장소장, 대구은행 경산영업부장이었던 B, C 씨와 김경룡 전 대구은행장 내정자 등 3인이다. 김경룡 전 내정자는 2013년 당시 대구은행 경북미래 본부장이었다. 이중 C 씨는 박인규 전 행장과 함께 업무상배임 혐의 등으로 기소된 상태다.

검찰은 B 전 소장, C 전 부장, 김경룡 전 내정자의 검찰 조사 당시 진술을 토대로 2013년 여름 이들 셋과 A 공무원이 만난 자리에서 A 공무원이 자녀 채용을 청탁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증인들은 모두 이날 법정에서 검찰 조사 진술을 뒤집고 A 공무원이 청탁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이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경산시 공무원이 직접 자녀 채용을 청탁한 적은 없지만, 시금고 선정에서 이득을 보기 위한 목적으로 대구은행이 자체적으로 경산시 공무원 자녀를 채용했다. 대구은행이 이런 식으로 경산시 공무원 자녀를 채용한 건 A 공무원 자녀뿐 아니라 최소 1명은 더 있다.

지난달 증인 신문 과정에서 공개된 대구은행 인사부서 작성 기록에는 A 공무원뿐 아니라 또 다른 국장급 공무원 자녀 인사 카드에 ‘부행장 채용 약속건’이라고 적혀 있었다. 때문에 대구은행이 채용 과정에 특혜를 준 사실은 인정이 되지만, 이 과정에서 해당 공무원들의 청탁이 있었는지 여부는 이날 증인 신문으로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게 됐다.

김경룡, 김대유에게 “경산에서 원서 냈다” 보고
전 대구은행 경산시 출장소장, 대구은행 7급 공고문 전달

지난달 25일 증인으로 출석한 김대유 전 경북경제진흥원장(당시 대구은행 부행장)이 자신에게 해당 채용 문제를 보고했다는 김경룡 전 내정자는 김대유 전 원장에게 채용 문제를 보고한 건 인정했지만, A 공무원의 청탁을 입증하는 증언은 뒤집었다.

검찰에 따르면 김 전 내정자는 검찰 조사에서 A 공무원이 ‘아들이 대구은행 취업을 준비 중인데 잘 됐으면 좋겠다’는 취지로 말했고, 김 전 내정자가 ‘아들 취업 문제를 본부에 잘 건의해보겠다’는 취지로 화답하자, A 공무원이 다시 ‘아들이 취업되면 편의를 봐주겠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이날 김 전 내정자는 “그렇게 진술했지만, 당시에 대구은행장 내정자여서 일정이 많았다”며 “기억 안 난다고 여러 번 주장했고 정확히 기억이 안 나지만, 여러 사람이 그렇게 진술했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인정하고 나온 것”이라고 증언을 번복했다.

다만 김 전 내정자는 “A 공무원 아들이 채용 원서를 냈다는 보고를 받고 얼마 후 회의 석상에서 김대유 부행장을 만나 악수를 하면서 ‘경산에서 원서 냈다’며 이야길 했다”면서 “김대유 부행장이 고개를 끄덕여서 저는 그걸로 (채용 문제를) 알고 있구나 생각했다”고 밝혔다. A 공무원이 청탁을 한 건 아니지만 본인들이 자체적으로 채용 문제를 처리했다는 취지다.

다른 두 증인 역시 당시 시금고 선정에 중요한 위치에 있던 A 공무원에게 잘 보이려고 자체적으로 아들 채용 문제를 진행했다는 취지로 진술을 번복했다. 모두 A 공무원이 ‘직접’, ‘먼저’ 청탁을 했다는 기존 수사 내용을 뒤집은 거다.

그렇지만 다른 직장에서 근무 중이던 A 공무원 아들이 대구은행에 원서를 내는 과정에 B 전 소장이 먼저 채용 공고 사실을 알리면서 먼저 원서를 내보라고 제안한 점이나 B 전 소장이 A 공무원을 만난 자리에서 아들 문제를 언급했다는 진술은 그대로 유지됐다.

B 전 소장은 A 공무원 측 변호인 반대 신문에서 “A가 금고 담당 과장이 되고 만나 이야길 하는 중에 아들이 뭐하냐고 물었고, 구미 소재 기계설계 회사에 다닌다고 답하니까 대구은행 7급 공모 이야길 하지 않았냐”고 묻자 “은행이 진행하는 게 있다고 말했다”고 답했다.

B 전 소장은 또 “2014년 3월경에 상반기 7급 공채 요강 공고문과 관련 자격증 메모한 걸 피고인(A 공무원)에게 전하지 않았냐”는 물음에도 “네”라고 답했고, “피고인이 부탁한 게 아니고 증인이 도움이 될 것 같아서 가져다준 거냐”는 물음에 다시 “네”라고 답했다.

박인규 전 은행장에 대한 다음 공판은 8월 22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열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