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설 나와도 외출 못하는 장애인…활동지원 시간 부족

“신체 기능만 따지는 활동지원서비스 인정 평가, 장애인 특성 고려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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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22 19:51 | 최종 업데이트 2018-08-22 20:28

정종삼(64) 씨는 30년 전, 고기를 잡는 뱃사람이었다. 남해 연안에서 멸치와 갈치를 주로 잡았지만, 돈을 많이 벌지는 못했다. 갑판에서 그물을 온종일 던져도 받는 일당은 같았다.

종삼 씨는 40년 전에는 부잣집 머슴이었다. 가난한 홀아버지 밑에서 국민학교도 가지 못하고 어린 시절부터 스물 다섯 살 먹을 때까지 경남 거창군에서 머슴살이를 했다.

배를 타기 전에는 잠시 여러 지역을 떠돌며 엿장사도 했다. 배운 것이 없었고, 누나 둘도 식모살이를 하는 처지라 가족의 도움도 기대하기 어려웠다. 어릴 적 아버지에게 국민학교에 보내 달라고 졸랐지만, 집에는 돈이 없었다. 배우지 못했다는 사실은 두고두고 부끄러웠다. 그래도 그때 종삼 씨에게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몸이 있었다.

서른 다섯 살이 되던 해, 그때도 종삼 씨는 남해에서 고기를 낚고 있었다. 거제도에서 혼자 살며 하루에 오천 원씩 모아 아버지에게 부쳤다. 남는 돈은 술을 마시는 데 썼다. 고된 일을 맨정신으로는 견디기 어려웠다. 어느 날, 어망을 던지다가 종삼 씨는 갑자기 어지러웠고,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뇌졸증이었다.

목숨을 건진 것은 운이 좋았다. 반신 마비가 온 것은 운이 좋지 않았다. 혼자 힘으로 일어서지도 못하는 몸을 확인한 그는 아차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날부터 결혼한 누나가 있는 대구로 왔다.

▲정종삼 씨와 종삼 씨의 활동지원사

누나는 혼자서 옷도 갈아입지 못하는 종삼 씨를 돌볼 능력이 없었다. 가난했기 때문이다. 종삼 씨처럼 어려운 사람을 받아주는 곳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서울에 있는 천주교 재단에서 운영하는 한 거주시설이었다. 종삼 씨는 누나에게 폐를 끼치기 싫어 거주시설에 입소했다.

시설 생활은 따분하기 그지없었다. 다른 거주인은 일이라도 할 수 있었다. 봉투 작업, 양산 작업을 하러 가는 다른 거주인을 종삼 씨는 방에서 우두커니 보고만 있었다. 답답한 마음이 들면 운동장에 나가는 것이 고작이었다. 시간이 느리게 갔다. 어느 순간부터는 나이도 잊어버렸다.

답답한 마음에 시설에서 무작정 나왔다. 다시 대구 누나 집으로 들어왔다. 몇 년이 흘렀는지도 몰랐다. 도저히 시설에서는 살 수가 없을 것 같았다. 누나는 여전히 가난했다. 종삼 씨에게 누나는 시설에 들어가지 않으면 자기가 죽을 것이라고 했다.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희망원을 찾아 들어갔다.

희망원에서 종삼 씨는 성당에 다니기 시작했다. 정 세베로라는 세례명을 받았다. 성당에 나가는 것이 종삼 씨의 큰 기쁨이 됐다. 하지만 할 일이 없는 것은 희망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2018년 5월, 자립생활에 대해 알게 된 종삼 씨는 곧바로 자립을 결심했다. 답답함을 견디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2년 동안 우선 자립생활 체험홈 생활을 하기로 했다.

고기 잡으며 했던 독방 생활을 30년 만에 되찾은 종삼 씨는 감격했다. 휴대전화도 난생처음 생겼다. 글을 읽을 수 없는 것이 문제였지만, 활동지원사를 통해 전화를 걸 수 있었다. 제일 처음으로 전화를 건 사람은 같이 희망원 생활을 하다 자립생활을 시작한 친구였다.

문제는 친구를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오랜 기간 시설에서 생활한 종삼 씨는 길을 몰랐다. 글도 몰라 대중교통도 혼자 이용할 수 없다. 활동지원사가 있지만, 하루에 여섯 시간 일할 수 있는 활동지원사는 외출까지 감당할 수가 없다. 식사 준비를 포함한 가사노동을 하다 보면 어느새 여섯 시간이 가 버리는 것이다. 몇 시간씩 걸리는 외출은 생각할 수가 없다. 활동지원사가 없는 바깥은 나침반 없는 망망대해였다.

성당에도 나가지 못한다. 희망원에서는 성당이 가까웠지만, 지금은 활동지원서비스 시간이 부족해 외출할 여유가 없다. 종삼 씨는 묵주를 머리맡에 걸어두고 방 안에서 어항을 보내며 시간을 보낸다.

▲자리에 누워 어항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는 정종삼 씨

7월, 종삼 씨는 오후 1시 방에서 넘어져서 갈비뼈가 골절됐다. 당시에는 활동지원사가 있어서 곧바로 응급실에 갈 수 있었다. 비가 내리는 바람에 응급실에는 환자가 많았다. 진료가 밀리다 보니 활동지원사의 업무시간이 끝났다. 활동지원사가 등록된 중계기관에서 다행히 파견을 나왔고, 그날 밤 10시에 입원절차를 마칠 수 있었다. 만약 밤에 넘어졌다면 어떻게 했을까. 종삼 씨는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다.

뇌병변장애 2급 진단을 받은 종삼 씨는 활동지원급여 인정점수도 낮아서, 국비 시비를 모두 합쳐 종삼 씨는 월 153시간의 활동지원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하루 6시간씩 나눠도 다 돌아가지 못하는 시간이다. 신체 기능만 따지는 인정점수는 종삼 씨처럼 오랜 시간 시설 생활을 한 장애인의 특성을 반영하지는 못한다.

인정조사 자체도 굴욕적인 경험으로 남았다. 종삼 씨는 활동지원서비스 신청으로 조사 나온 연금공단 직원으로부터 불쾌한 말을 들었다. 공단 직원은 종삼 씨의 다리를 만지며 '근육이 살아 있네', '걸어 다닐 수 있죠?'라는 말을 들었다. 이에 종삼 씨는 8월, 국민연금공단 대구지사를 찾아 항의했다.

▲국민연금공단 대구지사 앞에서 항의 기자회견 중인 정종삼 씨

활동지원급여 인정조사 기준 평가표는 옷 갈아입기, 목욕하기 등 장애인의 신체 기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5개 평가영역 중 '일상생활 동작영역' 점수는 260점인 반면, 사회활동 참여, 위험상황 대처능력 등 '사회환경 고려영역' 조사항목 총점은 25점에 불과하다. 사회활동에 참여하기 어려운 종삼 씨의 특성은 반영되지 않는 셈이다.

노금호 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은 "희망원에서 자립생활을 위해 나온 분들은 장기간 거주로 인해 고령층인 경우가 많다. 장기간 시설에서 의존적인 생활을 했기 때문에 일상생활에 적응이 어렵다"라며 "장애인 특성에 맞출 수 있는 대인 지원 서비스는 활동지원 서비스밖에 없다. 하지만 그마저도 충분하지 않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 활동지원급여 인정조사 평가는 신체 기능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하지만 자립생활을 단지 기능만 보고 평가해서는 안 된다"라며 "안전사고 우려 문제도 있다. 장애등급제 폐지를 앞두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개별 장애인에게 맞는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노력은 복지부나 대구시나 하지 않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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