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먹칠] ‘안희정, 무죄 날 줄 알았다’는 사람들에게 / 김자현

11:52

14일 안희정의 위력에 의한 성범죄 1심 재판이 무죄로 끝났다. 무죄 판결 이후 가장 당혹스러웠던 반응은 일부 법조인들의 ‘그럴 줄 알았다’는 반응이었다. 무죄판결이 날 줄 짐작했다는 것이다. 이번 사건이 위력에 의한 성범죄라는 것을 증명할 만한 ‘실질적 증거’가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더불어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을 우선한다는 근대 형법의 기본을 지킨 것이라는 얘기도 있었다. 사법부가 처벌의 의지가 있다 한들 현행법하에서는 이를 실현할 방법이 없다고 적힌 판결문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이 모든 이야기는 ‘일반 시민들은 납득하기 힘들겠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법리적 이유가 있다’로 정리할 수 있겠다. 이렇게 되면 14일, 18일 양일 벌어진 사법부 규탄 시위와 시민들의 격앙된 반응은 ‘법알못’들의 멋모르는 소리가 된다.

‘무죄판결 날 줄 알았다’는 말은, 현재 상황에서 내뱉을 수 있는 가장 나쁜 말이다. 이 말 한마디로 시민들의 분노는 여론재판을 조장하는 목소리가 되고, 사법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리에 맞는 판결을 내릴 수밖에 없는 위치로 재조정되기 때문이다. 이 사이에서 가해자는 사라진다. 법정에서처럼 피해자만이 남아 피해사실을 증명하려고 애를 쓰게 된다. 시민들은 증거도 없이 가해자를 처벌해달라고 이야기한 게 아니다. 애초에 실질적 증거라는 것이 나올 수 없는 상황에서, 사실 여부를 가릴 때 과연 법정이 피고와 원고에게 공정하였는가를 따져 물었을 뿐이다.

▲지난 18일 안희정 전 지사 성폭행 무죄 판결 규탄 집회가 서울 신문로 서울역사박물관 앞에서 열렸다. (사진=권우성 오마이뉴스 기자)

판결문의 내용과 재판 중 판사들이 한 발언이 언론을 타면서 사법부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더욱 커진 것만 봐도 그렇다. 법원은 가해자가 도지사로서 위력을 가졌지만 평소에 ‘다정한 상사’였다는 것을 강조했다. 즉 위력이 있으나 그 위력을 이용하지는 않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후, 사건을 소명하는 것은 모두 피해자의 몫이 되었다. ‘성적 자기결정권’이라는 단어를 쓰면서 왜 단호하게 거부하지 않았냐고 물었다. 범행 직후 원활하게 업무를 수행했다는 점을 들어 ‘피해자답지 않았다’고도 말했다. 가해자 발언의 모순은 크게 지적되지 않았는데, 피해자 발언의 혼란만 크게 꼬집었다. 그 사이에서 범죄 피해자가 흔히 처할 수 있는 심리적 상태, 그가 범죄 현장인 일터에서 빠르게 빠져나올 수 없었던 이유는 참작되지 않았다. 이를 법정에서 추궁당할 때 피해자가 느낄 고통도 고려되지 않았다. ‘안희정의 법정이 아니라 김지은의 법정 같았다’라고 표현할 법했다.

시민이 법을 모르는 것일까, 사법부가 현실을 모르는 것일까? 판결문의 내용을 읽고 있노라면 사법부는 그 어떤 위력도 존재하지 않는 파라다이스처럼 보인다. 많은 사람이 ‘판사들은 상사의 무리한 요구에 어쩔 수 없이 응해본 적이 없느냐’고 분개하는 이유다. 가해자는 임면권을 가지고 밤낮과 공사의 구분 없이 온갖 일을 시키던 상사였다. 피해자는 그의 말 한마디에 일자리를 잃을 수도, 직장 내에서 오갈 데 없는 처지가 될 수도 있는 임시직 비서였다. 아직 싫은 일은 ‘아니오’ 할 수 있는 직장환경이 갖추어지지 않은 나라에서 이 위계차가 어떤 압력으로 다가왔을지 절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감정이입이 곧 비논리는 아니다. 사람들은 현실적 맥락에서 이 사건을 파악했을 뿐이다. 결국 사법부에 대한 분노는 법리적 해석에만 골몰해 현실의 맥락은 따지지 않은 맥락맹적 태도에 대한 분노이고 무능에 대한 분노다.

법관도 우리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사회문제와 구조에 눈 돌리지 않기를 바란다. 판결뿐만 아니라 판결문과 재판 과정도 사회에 메시지를 던질 수 있다. 이번 재판은 재판장도 2차 가해의 장이 될 수 있음을, 국가 권력이 가해자와 피해자를 동등하게 보호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잘못된 메시지를 남겼다. 피해자는 국가가 자신을 보호하고 가해자를 심판해주길 바라며 법정을 찾는다. 자신이 사적 복수를 하는 대신 재판부가 판결을 통해 사회 보편에 정의를 실현해줄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이번 재판은 피해자를 보호하지도, 가해자에게 소명의 책임을 동일하게 묻지도, 사회 정의를 실현하지도 못한 것으로 보인다. 시민이 사법부에 건 기대와 이후의 실망은 비이성적인 것이 아니다. 시민이 법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사법부가 사회를 모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