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수경 칼럼] 인간의 존엄성에는 등급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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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17 15:10 | 최종 업데이트 2018-09-17 15:10

지난여름 살인적인 폭염 속에서 사람들의 눈길을 끈 청와대 청원이 있었다. 교도소 냉방시설 설치 계획을 철회해 달라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죄를 짓고 감옥에 갇힌 주제에 일반 국민들도 맘껏 누리지 못하는 에어컨 냉방이 웬 말이냐는 것이다. 법무부가 그런 계획이 없다고 발표하면서 논란은 일단락되었지만, 이 에피소드는 한국 사회 인권 상황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폭염의 여파는 교도소라고 예외가 없다. 바깥세상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다. 신영복 선생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 “여름 징역은 자기의 바로 옆사람을 증오하게 한다”고 썼다. 좁은 방에 많은 인원을 수용해 재소자들은 똑바로 눕지도 못하고 옆으로 누워 소위 ‘칼잠’을 자는데, 여름에는 “옆사람을 단지 37℃의 열덩어리로만 느끼게” 하는 형벌 중의 형벌을 받는다고 한다. 이번 여름 폭염에 그 형벌의 고통이 어느 정도였을 지 상상하기도 힘들다.

국가인권위원회 의뢰로 진행된 ‘2016년 구금시설 건강권 실태조사’ 보고서에 의하면 재소자들은 선풍기에 의존해 더위를 견디는데, 그나마 과열을 막기 위해 매시간 20분 정도 가동이 중단되고 밤에는 선풍기 가동이 아예 중단된다. 열대야에는 사람들의 숨결로 데워진 공기 때문에 숨쉬기가 곤란할 정도라고 보고서는 전한다. 한 재소자는 더위로 인해 어지럼증이나 구토증을 느끼고 쓰러지는 경우가 여러 번 있었지만, 얼음과 찬물 반입조차 안 된다고 말했다. 보고서는 이런 열악한 상황이 재소자들의 건강에 위협을 주고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실제로 2016년 8월 부산교도소에서 재소자 2명이 열사병으로 사망하기도 했다.

교도소 냉방시설 설치 여부는 쾌적함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권과 건강권 문제다. 교도소 에어컨 설치를 반대하면서 재소자보다 선량한 일반 국민을 먼저 살펴야 한다는 주장은 얼핏 듣기에 일리가 있는 말 같다. 에어컨 없이 여름을 나는 사람들, 에어컨이 있어도 요금 폭탄 때문에 맘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적어도 이들은 일시적이라도 폭염을 피해 시원한 곳을 찾아갈 수 있다. 정부는 이들을 위해 더 많은 폭염 대피소를 운영해야 한다. 하지만 재소자들은 제 발로 더위를 피하러 갈 수가 없다.

무엇보다 교도소 에어컨 설치 논란은 재소자들도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보장받을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감옥에 갇혀 있다는 것 자체가 권리에 일정한 제한이 가해진 것은 맞다. 무엇보다 자유가 제한된다. 하지만 감옥이 고문실이어서도 안 된다. 적어도 문명사회에서는.

최근 미국에서는 감옥에 있는 재소자들이 동맹파업을 벌였다. 8월 21일부터 19일 동안 약 17개 주에 있는 재소자들이 파업에 참여했다. 재소자 처우와 교도소 환경 개선 등 10개 요구사항을 내걸었는데, 특히 현대판 노예제를 철폐하라는 요구가 큰 주목을 받았다.

재소자들은 시간당 10센트(약 110원)에서 35센트(약 385원)의 임금을 받고 노역에 동원된다. 남부의 일부 주에서는 아예 한 푼도 지급하지 않는다. 재소자들의 노예 노동으로 기업은 막대한 이윤을 챙기고 있다. 정부도 경제적 이익을 본다. 예를 들면 악명 높은 캘리포니아 산불 진압에 매년 재소자들이 동원되는데, 목숨을 걸고 불을 끄는 재소자들은 시간당 겨우 1달러(약 1100원)를 받는다. 옆에서 같이 산불을 끄는 캘리포니아주 소방관 시급은 최소 11달러가 넘는다. 재소자들을 화재 진압에 동원하면서 캘리포니아 주정부는 연간 1억 달러의 경제적 이익을 보고 있다.

재소자들은 노역 거부, 연좌농성, 교도소 물품 구매 거부, 단식 투쟁 등 다양한 방식으로 파업 투쟁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파업 가담자들에 대한 보복과 탄압에도 불구하고 재소자들은 스스로 노예가 아니라며 일어섰다. 그리고 이들의 투쟁은 감옥 밖에서도 지지를 받았다. 파업이 진행되는 동안 약 21개 도시에서 재소자 파업을 지지하는 연대 행진과 집회, 행사들이 열렸다.

재소자들은 파업의 시작과 끝을 역사적인 사건 기념일에 맞추었다. 파업 첫날인 8월 21일은 1971년 캘리포니아의 교도소에 수감 중 교도관에게 살해당한 흑표범당(Black Panther Party) 당원인 조지 잭슨의 사망 47주년 기일이었다. 파업을 마친 날은 지금까지 미국 역사상 가장 큰 재소자 봉기인 아티카 봉기 47주년이 되는 날이다.

실제로 이 두 사건은 서로 연관이 있다. 감옥 안에서도 흑인 민권운동에 앞장섰던 잭슨이 교도관에게 살해되었다는 소식은 대륙 반대편 뉴욕주 아티카 교도소에도 전해졌다. 다음 날 아침, 잭슨의 죽음을 추모하는 아티카 감옥 재소자 800여 명이 식당에 모였다. 추모의 의미로 모두 검은 끈을 팔에 두르고 나타났다. 그들은 배식받은 아침식사에 손도 대지 않고 가만히 자리에 앉아 잭슨의 죽음을 추모하는 침묵시위를 벌였다. 그리고 몇 주 후 9월 9일 아티카 감옥 재소자들은 자신들이 처해 있는 가혹한 조건을 바꾸기 위해 봉기를 일으킨다.

1,200명의 재소자가 교도관들을 인질로 잡고 건물 일부를 점거해 주정부와 협상을 벌였다. 아티카 재소자들 대다수는 흑인이었는데, 한 명만 빼고 모두 백인인 교도관들은 재소자들 위에 노예주처럼 군림했다.

‘교도관들의 가혹 행위를 중지하라’, ‘일주일에 한 번은 샤워를 하게 해 달라’, ‘한 달에 1통만 지급되는 화장실 휴지를 더 늘려 달라’ 이런 재소자들의 요구사항만 봐도 그들이 얼마나 열악한 환경에서 비인간적인 취급을 당했는지 알 수 있다. 미국 같은 제국주의 국가에서 살 수 없으니 제3국으로의 망명을 허용하라는 급진적인 요구사항도 있었다. 민권운동과 반전운동 등으로 고조된 당시 미국 사회 분위기가 감옥의 높은 담장을 넘어 재소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친 것이다.

하지만 봉기는 나흘 만에 주정부가 보낸 군대에 의해 진압됐다. 진압 과정에서 43명이 죽고 100여 명이 다쳤다. 사망자에는 11명의 교도관이 포함되었는데, 재소자들 손에 살해당했다는 정부의 발표와 달리 한 명만 빼고 모두 진압 과정에서 군인들에게 무차별 사살된 것으로 드러났다. 살아남은 재소자들에게는 가혹한 고문과 보복이 가해졌다. 비록 아티카 봉기는 유혈진압으로 끝났지만, 재소자들이 처한 비인간적이고 열악한 환경을 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됐다.

47년이 흐른 오늘날 미국의 재소자들이 처한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1971년 20만 명 미만이었던 재소자 수는 현재 230만으로 늘어났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감옥에 갇혀 있고 인구 대비 투옥률이 가장 높은 나라가 미국이다. 감옥 인구의 증가는 범죄가 늘어난 것이라기보다 인종 차별적인 대량 투옥의 결과이다. 또한 감옥 민영화와 ‘교도소-산업 복합체’의 팽창으로 사람을 가두는 것이 짭짤한 돈벌이가 되는 세상이 됐다.

미국의 재소자 동맹파업은 다시 한번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의 인권도 보호되어야 함을, 인간 존엄성에 높고 낮음이 없음을 그리고 인권은 추상적인 원칙인 아닌 구체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보여준다. 재소자는 노예나 동물이 아니다. 우리와 같은 인간이며 따라서 인간으로서 누릴 최소한의 권리와 존엄까지 침해당해서는 안 된다.

사회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의 인권이 무시될 때 그 사회의 전반적인 인권은 같이 공격을 받는다. “만일 한 사회를 알고자 한다면 감옥을 들여다보라”는 도스토예프스키의 말은 그 사회에서 가장 가치가 없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이 어떤 대우를 받는지가 그 사회 전반의 인권 감수성을 잴 수 있는 잣대이기 때문이다.

일반인들도 힘드니 재소자들은 가만히 있으라는 교도소 에어컨 설치 반대 논리는 다른 상황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그 하나의 예시가 ‘난민보다 국민이 먼저다’, ‘국민의 복지도 제대로 살피지 못하는데 왜 난민을 도와줘야 하냐’는 주장이다. 난민을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며 가짜 난민을 쫓아내자고 주장하는 집회가 서울 도심에서 여러 차례 열리고 난민 반대 청원에 무려 71만 명이 서명했다고 한다.

하지만 인권이란 무엇인가? 그 사회의 가장 바닥에 있는 사람들, 가장 소외되고 힘이 없는 사람들의 존엄성도 보호하는 것이 진정한 인권이다. 인권에 차등을 두고 등급을 매기는 순간 모든 이들의 인권은 바닥을 향해 곤두박질치기 시작한다. 재소자들의 인권을 무시하는 사회는 다른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인권에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 난민을 사지로 쫓아내는 나라는 자국의 소수자 권리에도 등을 돌린다.

그러하기에 온갖 탄압과 보복에도 파업을 벌인 미국의 재소자들은 자신들의 권리뿐 아니라 미국인 전체의 인권을 지키기 위한 싸움을 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난민에 대한 모든 모욕과 멸시를 멈추고 인간답게 대접해 달라고 청와대 앞에서 목숨을 건 단식농성을 벌인 난민들도 결국은 한국 국민 모두의 인권을 위한 싸움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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