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대 사학과 교수 전원 국정교과서 집필 거부

[인터뷰] 윤재석 경북대 사학과 교수, "국정화 교과서는 사상탄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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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교육부의 한국사 국정화 교과서 이른바 ‘올바른 역사교과서’ 방침 발표?후 역사학계에서는 국정화 교과서 집필 거부 선언이 이어지고 있습니다.?대구·경북 대학 역사학계도 오는 19일 오전 한국사 국정화 교과서 집필 거부 선언을 발표할 예정입니다. 현재(16일)까지 10개 대학 30여 명의 역사학 전공 교수가 참여 의사를 밝혔습니다. 특히, 경북대학교 사학과 교수 10명 전원은 집필 거부에 동참했고, 영남대 역사학과 교수도 일부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번 선언을 준비 중인 윤재석(경북대학교 사학과) 교수를 만나 한국사 국정화 교과서가 가져올 후폭풍에 대해 들어봤습니다. 윤재석 교수는 한국사 국정화 교과서 발간의 결과는 “참담할 것이 뻔하다”고 지적합니다.

“한국사 교과서를 국정화하겠다는 것은 사상탄압의 일종입니다. 다른 생각을 허용하지 않으려고 하는 큰 범주에서 보면 사상탄압이죠. 사상탄압을 자행하는 정권이나 국가치고 오래가는 곳 없습니다. 그 예는 역사에서 가장 잘 보여줍니다.?대표적으로 진나라가 분서갱유 후 몇 년 버티지 못하고 멸망했죠. 사료 등 간접적인 자료를 통해 이해해야 하는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 여러 이견이 나오는 건 당연합니다. 이걸 하나로 모은다는 발상은 상당히 독재적이고 전체주의적인 발상입니다.”

현재 검인정 발행 체제인 한국사 교과서도 교육부가 정해 놓은 집필 기준이 있습니다. 그 기준에는 어떤 내용을 포함해야 하는지, 얼마의 비율로 분배해야 하는지까지 구체적으로 명시합니다. 교과서 집필자와 최종 인정도 물론 교육부가 합니다. 결국 현 검인정 체제도 교육부의 승인 아래 발행되는 것인데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나 교육부나 지금 교과서에 주체사상이 나온다, 한쪽으로 치우쳐져 있다고 이야기하는데 정말 무식하기 짝이 없습니다. 교과서에 주체사상이라는 표현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 이유는 교육부에서 나오는 집필 지침 때문이에요. 사실 현재 한국사 교과서가 검인정이긴 하지만 거의 국정화나 다름없습니다. 검인정 교과서 집필기준으로 국가에서 모든 걸 다 통제하고 있는데, 그것마저도 하나로 통제하겠다는 것이죠.”

“역사를 기술하는 것은 역사학자들이 제일 잘?알기 때문에전문가 집단에 맡기고 존중해야 합니다. 오히려 그걸 정치적으로 부정하고 잘못됐다고 하니…많은 역사학자의 전문지식과 공통 기준으로 쓰는 교과서에 대해 정치인들이 감?놔라 배 놔라하는 건 월권 중의 월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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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재석 경북대학교 사학과 교수.

전문가는 물론 각계의 우려와 반대에도 박근혜 정권은 국정화 교과서를 밀어붙일 것으로 보입니다. 늘 그래 왔듯이 말이죠. 예상되는 문제가 한두가지가 아닌데요. 중학교 역사 교과서마저 국정화되면서 세계사 영역도 국정화에 포함됐습니다.

“국정 교과서 체제로 간다면 일선 교사들은 교과서 채택권이 사라지게 됩니다. 교육권 침해인 거죠. 교사들의 자율적 판단으로 교과서를 선택해 교육할 권리를 국가가 박탈하는 겁니다.”

“또 하나의 문제는 이번 국정화에 중학교 역사 교과서가 포함되는데 그러면 세계사까지도 국정으로 바뀝니다. 세계를 보는 안목도 국가가 정한 기준으로 봐야 하는 거죠. 그렇게 국가 정한 기준으로 역사를 배운 학생들이 대학에 오면 중고등학교 때 배운 역사가 거짓말이 될 수도 있죠. 그야말로 다양한 학설과 그에 따른 의견이 나오는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데 엄청난 혼란이 생길 것입니다.”

15일 김정배 국사편찬위원장은 <KBS>와의 인터뷰에서 역사학계에서 논란이 있는 학설에 대해서는 국정 교과서에 싣지 않겠다고 밝혔습니다. 교육부가 밝힌 “다양한 견해를 소개할 것”이라는 방침과 배치되는 내용입니다. 하나의 관점으로 국정 교과서에 실린 내용이 수능 등 시험에 출제됐을 때 또 다른 문제가 생길 수도 있는데요.

“만약 국정 교과서에 따라 시험 문제를 낸다면 그 내용은 소송의 대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현재 검인정 교과서가 8종이나 있지만, 수능에서는 공통된 부분만 출제됩니다. 즉, 역사학계에서 공통으로 인정되는 부분, 학설상 문제가 없는 것만 내는 거죠. 그런데 국정 교과서에서 서로 다른 학설을 소개하지 않고 하나의 학설로만 설명하고 문제를 낸다면 그 학설에 반대하는 학계에서는 소송을 제기할 수도 있죠.”

구체적인 예로 대한민국 탄생이 언제냐는 문제라면 상해임시정부가 생긴 1919년이냐, 이승만 대통령의 남한 단독정부를 수립한 1948년이냐 논란이 되겠죠. 대한민국 탄생의 학설이 논란이 된다고 해서 국정 교과서에 빠지지는 않을 테니 말입니다. 예상되는 소송 거리는 무궁무진합니다.

“사실 7~80년에는 싸우기가 더 좋았죠. 실력행사로 나서면 바꾸려고 하는 노력이 있었는데 지금 정부는 그런 게 없어요. 아무리 반대해도 자기식대로 밀고 나가고 있잖아요. 경북대 총장 사태만 봐도 명백히 잘못된 사안에도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합리적인 이유나 대화가 안 통하는 상당히 비이성적인 상황입니다. 교수들의 집필 거부도 중요하지만 또 다른 전문가 단체인 일선 교사들, 출판업계, 학생들이 목소리를 내는 것도 필요합니다.”

12일 교육부는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질의응답’ 자료를 만들어 배포했습니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가 세계화 추세에 부합하는가”라는 질문에 스스로 “우리나라 역사과목의 경우 남북분단 등 특수한 상황과 이념 간 견해차이로 편향성 논란이 있어 왔다”고 답합니다. 이승만 정권 시절 부정선거와 독재도 박정희 정권 시절 5.16쿠데타와 유신 독재도 모두 ‘남북 분단’이라는 변명으로 이루어졌고 용인되었죠. 이후 정권의 행보가 우려스러울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