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가짜뉴스의 뿌리의 뿌리 /박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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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01 10:28 | 최종 업데이트 2018-10-01 10:28

가짜뉴스의 뿌리에 개신교 신극우주의 세력이 있음이 『한겨레』 단독보도로 밝혀졌다. 행태는 심각했다. 유튜브 등을 통해 사실무근의 이야기가 확대 재생산하고, 이런 가짜뉴스들이 다시 언론에 인용되며 파급력이 극대화됐다. 기획 기사가 잇따라 올라오자 “이 정도일줄 몰랐다”는 시민들의 경악과 탄식이 이어졌다.

사람들의 반응만 보면 마치 가짜뉴스가 요 몇 년 사이 생겨난 새로운 사회문제처럼 보인다. 하지만 꼭 그렇게 보긴 어렵다. ‘가짜뉴스’라는 말은 최근에 생겨난 단어가 맞지만, 가짜뉴스라는 현상 자체는 최근에 생겨난 사건이 아니다. 과거 정권이 직접 기획하고 실행한 사건들, 이를테면 금강산 댐 괴담, 북풍, 총풍, 간첩단 조작 사건, 민간 차원에서 횡행하던 각종 유언비어들을 떠올려보자. 요즘 말로는 전부 ‘가짜뉴스’다.

가짜뉴스를 ‘적의 전력을 깎아내고 자신의 승리에 유리한 여건을 조성하기 위한 정보조작’이라고 정의한다면, 심지어 고대 문헌에서도 이를 발견할 수 있다. 예컨대 『손자병법』 용간(用間) 편에는 허위 사실을 외부에 유포하여 아군의 명령을 탐문한 적의 간첩이 이를 적장에게 잘못 전달하게 하는 전술이 나온다. 전쟁이라는 비상 상황에서만이 아니라 일상에서 가짜 사실을 흘리거나 확산시켜 자신의 의도를 관철하려 했던 집단은 예나 지금이나 숱하게 많았다. 가짜뉴스란 사실 인류 역사와 함께 존재해왔던 셈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조금 더 명료해진다. 다음 질문들로 정식화해볼 수 있겠다. 최근 가짜뉴스 현상은 과거 가짜뉴스 현상과 정말로 ‘동일한’ 현상인가? 차이는 없는가? 차이가 있다면 어떤 점에서 다른가? 왜 하필 지금, 가짜뉴스가 마치 새로운 문제처럼 부각되는가?

엄밀히 말해서 최근 가짜뉴스들은 과거의 그것과는 다르다. 물론 레거시 미디어에서 뉴 미디어로의 다변화로 여론 유통경로가 양적으로 비교할 수 없이 증가한 것도 중요한 측면이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초점(focus)이다. 과거에 적이 누군지는 명확했다. 적은 유태인이거나, 히틀러이거나, 소비에트이거나, 김일성이었다. 가짜뉴스의 내용은 그래서 그 적이 우리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혹은 무슨 짓을 꾸미는지에 집중됐다. 그러나 지금 가짜뉴스는 ‘적이 대체 누구인가’에서부터 시작한다. 요컨대 과거 가짜뉴스의 내용이 ‘숙적의 새로운 음모’라면, 오늘 가짜뉴스의 주요 내용은 ‘새로운 적의 출현’ 혹은 ‘적대의 발명’이다. 이 차이는 결코 작지 않다.

마지막 질문, ‘왜 하필 지금, 가짜뉴스가 마치 새로운 문제처럼 부각되는가’와 관련해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은 『한겨레』 기고문(「가짜뉴스에서 거짓말까지」, 『한겨레』, 2018.09.27.)에서 이렇게 주장한다.

“지금 우리는 포퓰리즘의 물결로 기존 정치제도가 불안정해지는 와중에, 이 제도를 이데올로기적으로 떠받들던 ‘진실 대 거짓’이라는 구도가 무너지고 있는 현상을 보고 있다. 이러한 붕괴가 일어나는 이유는 포스트모더니즘적 상대주의 때문이 아니라, 지배체제가 이제는 이전처럼 이데올로기적 헤게모니를 유지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지젝이 주로 비판하는 이들은 극우파 및 급진좌파와 구별되는 리버럴-자유주의자들이다. 그들은 “팩트, 사실이란 것이 존재하고 ‘의견의 자유’와 ‘사실의 자유’는 구분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트럼프 같은 우파와 이상주의적 급진좌파가 함께 “진실의 죽음”을 가져왔다고 탄식한다.

그러나 지젝은 “진실의 죽음”을 탄식하는 이들이 진실의 수호자가 아니라 그저 안정적인 질서를 선호했을 뿐임을 상기시키면서, 그들이야말로 진실의 “죽음과 관련된 가장 진정하고도 근본적인 행위자”라고 일갈한다. 한 마디로 오늘날 가짜뉴스에 대한 과민반응은 헤게모니 위기에 직면한 자유주의 지배세력의 비명이라는 것이다.

지젝의 글을 참고하고 다시 한국사회를 보자. 가짜뉴스나 극우‧혐오세력은, 말하자면 ‘증상’이지 ‘원인’이 아니다. 당장 여기의 증상을 없앤다고 해도 좀 지나 저기서 또 증상이 발생한다. 원인을 건드리지 않으면 해결은 난망하다. 오히려 모든 사회악을 가짜뉴스나 극우‧혐오세력 탓으로 돌리는 태도야말로 진짜 문제다. 사태의 본질을 은폐하는 까닭이다. 가짜뉴스를 만드는 사람 혹은 단체를 밝혀내는 것은 물론 중요하지만, 거기서 멈추면 곤란하다. ‘그들은 왜 그런 짓을 하는가?’ 이 질문이야말로 핵심이다. 우리는 가짜뉴스의 ‘뿌리의 뿌리’, 즉 심층근(深層根)을 찾아야 한다.

가짜뉴스의 진정한 원인은 무엇일까? 사람들이 겪는 현재의 고통과 미래의 불안이 해명되지도 해소되지도 못하는 상황, 그 상황이 바로 가짜뉴스의 뿌리의 뿌리다. 극우‧혐오세력이 점점 득세하게 된 것은, ‘유튜브로 진출했기 때문’이 아니다. 난민, 이주노동자, 무슬림, 동성애자, ‘맘충’ 등 쉽게 차별하고 배제할 수 있는 대상을 지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기득권 집단에 저항해 그들 몫을 재분배하는 것은 위험하고 지난하지만 사회적 약자를 차별하고 배제하는 것은 안전하고 쉽다. 그런 짓은 사회문제를 전혀 해결해 줄 수 없음에도 적어도 강렬한 정치적 효능감(political efficacy)은 줄 수 있다.

대안부재 상황이 지속되는 한, 가짜뉴스는 번성할 수밖에 없다. 이런 국면에서 진보좌파를 표방하는 세력이 무엇에 집중해야 하는지는 명백하다. 불평등에 대한 정밀한 분석을 통해 가장 설득력 있는 설명 모델과 대안을 제시하고, 다양한 배경의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유연한 정치조직을 구성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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