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먹칠] 극우 유튜브 채널이 존재하는 이유 / 이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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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01 10:46 | 최종 업데이트 2018-10-01 10:50

유튜브 채널 <뉴스타운TV>는 지난 7월 23일, 고(故) 노회찬 의원의 서거를 조롱하며 라이브로 ‘잔치국수 먹방’을 진행했다. 고인을 향한 욕설과 모욕이 난무했던 이 방송분은 조회수 약 3만회를 기록했다. <뉴스타운TV>가 유별난 것은 아니다. ‘정치 시사’로 분류되는 유튜브 콘텐츠에는 ‘5·18 북한 특수군 개입설’, ‘북한의 박근혜 탄핵 지령설’, ‘문재인 치매설’을 비롯한 근거 없는 이야기가 가득하다. 동성애자, 이슬람교 등 소수자를 향한 각종 혐오 콘텐츠도 난무한다. 영향력도 결코 작지 않다. 보수 성향 유튜브 상위 20개 채널의 총 구독자수는 약 200만 명에 달한다. 이쯤 되면 더 이상 ‘그들만의 콘텐츠’가 아니다.

200만 명에 달하는 이들은 대체로 50대 이상의 장년층이다. 왜 하필 그들은 유튜브를, 또 극우를 선택한 것일까? 보수 우파 채널에 주로 출연하는 배승희 변호사는 그 이유를 ‘갈 곳 잃은 50대 이상’을 받아주는 유일한 채널이 유튜브(로 옮겨간 극우세력)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지금의 한국을 만들어낸 가장인 50대 이상인 그들이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기성 언론에서는 해주지 않기 때문에, ‘속 시원한’ 말을 들려주는 유튜브 채널을 자꾸 찾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원하는 이야기를 속 시원하게 듣기 위해 그들은 극우 채널을 자신의 목소리를 대변해주는 유일한 ‘언론’으로 호명한다.

언론은 팩트와 취재에 기반해 시민들이 ‘들어야 하는’ 이야기를 전달해주는 의무를 지닌다. 하지만 극우 유튜브 채널은 그것이 가짜뉴스에 가깝다고 할지라도 소비자가 듣고 싶은 이야기‘만’ 전한다. 극우 채널은 뉴스를 편향된 방법으로 가공하고 해설해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데 집중한다. 종북좌파나 빨갱이로 대변되는 보이지 않는 적을 설정하고, 적들로부터 나라를 구하는 ‘애국시민’이 되자고 선전한다. ‘애국시민’으로의 역할을 부여받은 그들은 마침내 존재 이유를 증명받는다. 이것이 극우 채널이 ‘진실된 언론’이 된 이유가 아닐까. 그리고 이는 가짜뉴스와 혐오 콘텐츠의 확산 문제를 넘어, 정치적으로 편향된 극우 집단의 등장을 예고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극우 유튜브 채널을 규제하거나 폐쇄하는 것이 현시점에서 근본적인 대안이 아닌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금까지 시민사회와 언론은 꾸준히 배제의 논리에 따라 행동해왔다. 대다수 시민이 극우 유튜브 채널과 그 소비자들을 단순히 무시했고, 그들끼리의 자폐적 소통에 비웃음을 보냈으며, 윤리적으로 분노하기만 했다. 기성 언론도 마찬가지였다. 극우 콘텐츠 소비자들이 기성 언론에 ‘진실’이 없다고 주장했듯, 언론 또한 그들에게 ‘시민’의 자격을 부여하지 않았다. 때문에 그들을 외면했고, 시민이 아닌 ‘그들’의 이야기를 굳이 찾아 들으려 하지 않았다. 어쩌다 나오는 기사도 이해보다는 관찰에 가까웠다.

이런 방식으로 언론과 시민사회가 함께 축적해온 일방적 배제는 그들에게 외려 강한 결집력의 동기로 작용했다. 만약 현 극우 채널들에 법적으로 어떤 규제를 가한다고 해도, 다음번에 그들이 유튜브가 아닌 다른 통로에서, 이번에는 더 거대하고 위협적인 세력이 되어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그렇다면 이제까지 ‘우리’는 잘못된 방법으로 ‘그들’을 대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뭔가 다른 방법으로 그들과 마주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극우 세력의 주장이 옳은지 그른지를 논박하며 토론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극우 세력의 결집이 파시즘으로 확산되는 것이 두렵다면, 그 결집력의 동기를 깨뜨려야 한다는 이야기다.

극우는 더 이상 거리를 떠도는 유령이 아니다. 그들의 실체를 인정하고 사회적 문제로 논의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극우 콘텐츠 소비자들의 존재 기반과 심리에 대해 분석하고, 우리 사회에서 그들이 지닌 정치적 메시지가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그 시작이라 생각한다. 또 언론이 그들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시민사회는 어떤 방식으로 그들과 소통하고 대화해야 할지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 치열한 고민과 적극적인 공론화 과정 속에서 우리는 익숙한 배제의 논리 대신, 새로운 공존의 문법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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