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수경 칼럼] 캐버너 대법관 인준, 침묵 대신 용기를 전염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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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15 16:19 | 최종 업데이트 2018-10-15 16:29

미국 연방대법관 후보 브렛 캐버너의 성폭력 혐의에 대한 청문회가 열렸던 9월 27일과 그 이후는 많은 성폭력 생존자들에게 잊으려고 노력해 온 악몽과 트라우마가 생생하게 되살아나는 날들이었다.

▲신임 대법관으로 임명된 캐버너 by flcik.com Ninian Reid

트럼프는 지난 7월 케네디 대법관 퇴임으로 공석이 된 자리에 브렛 캐버너 연방항소법원 판사를 지명했다. 여러 의혹에도 큰 어려움 없이 상원 인준절차를 통과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한 여성의 용기 있는 폭로가 균열을 냈다. 크리스틴 블라지 포드 교수가 36년 전인 고등학생 시절 캐버너가 자신을 성폭행하려 했다고 폭로한 것이다. 9월 27일 열린 상원법사위 청문회는 9시간 동안 생중계됐다.

포드 교수는 평생 트라우마를 남긴 경험을 공개적으로 말하는 게 공포스러운 일이고 청문회 자리에 나오지 않게 되기를 바랐다고 했다. 그러나 미국 최고 사법기관 대법관으로 30년 이상 미국인들의 삶에 영향을 미칠 대법관 후보에 대해 증언하는 것이 시민으로서 의무를 다하는 것이라 생각해 용기를 냈다며 1982년 여름 사건을 차분하게 증언했다.

그녀에 따르면 당시 15살 여고생 포드 교수는 친구들이 모인 자리에 갔다가 술에 취한 캐버너와 그의 친구 마크 저지에게 성폭행을 당할 뻔했다. 다른 친구들이 듣지 못하도록 음악을 크게 틀어 놓고, 소리를 지르려는 그녀의 입을 당시 17살 고등학생 캐버너가 손으로 막았다.

그녀는 캐버너가 자신을 실수로 죽일 수 있다는 공포를 느꼈다고 했다. 그녀의 옷을 벗기며 강제로 성폭행하려 했지만, 옆에서 응원하던 마크 저지가 침대에 뛰어오르면서 중심을 잃는 바람에 모두 바닥으로 떨어졌고, 그 틈에 사력을 다해 빠져나올 수 있었다고 증언했다.

포드 교수는 흥분하지 않고 차분하게 말을 이어 나갔다. 시간이 흘러 제대로 기억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서는 솔직하게 기억나지 않는다고 인정하면서도, 지울 수 없이 각인된 사건 자체에 대한 증언은 생생했다. 36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나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녀는 두 남학생의 웃음소리라고 말했다. 자신을 희생양으로 삼으면서 즐거운 듯이 웃어대는 그들의 웃음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생생하다면서. 그리고 자신을 성폭행하려던 남학생이 캐버너인 것을 100% 확신한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그녀가 진실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증언이 끝난 후 트럼프조차 그녀의 증언이 믿을 만하다고 했고, 트럼프를 열렬히 지지하는 우파언론 폭스뉴스 또한 포드 교수가 믿을 만한 증언을 했고, 그걸 듣고 공감하지 않을 사람이 있겠느냐며 “공화당에게는 재앙”이라고 논평했다. 이로써 캐버너 인준은 물 건너간 것으로 보였다.

오후에 있었던 캐버너의 증언은 오전과 뚜렷이 대비됐다. 캐버너는 언성을 높이면서 흥분했다. 때로는 눈물까지 보이면서 혐의를 부인했다. 질문하는 여성 의원을 공격적으로 대하면서 불리한 질문에는 대답을 회피하고 태연히 거짓말을 하기도 했다. 또, 이 모두가 클린턴 부부를 비롯한 민주당과 좌파의 음모라고 몰아붙였다. 포드 교수가 성폭력을 당한 것은 맞지만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가해자라면서 포드 교수를 좌파의 음모에 동원된 정신 나간 사람 취급하며 모욕했다.

변명과 자기 합리화는 전형적인 가해자의 모습이었다. 무조건 부인하고 불리하면 상대를 공격하며 도리어 자신이 희생양인양 하는 트럼프 스타일이 엿보였다. 마치 자신을 지명한 트럼프에게 그의 선택이 옳았다는 것을 입증하고 충성을 과시하는 듯했다.

이런 캐버너의 모습은 성폭력 생존자들에게 지나간 악몽과 트라우마를 다시 떠올리게 했다. 마치 자신을 공격했던 가해자가 눈앞에 다시 나타난 듯했다. 청문회가 생중계 되는 동안 많은 여성들이 SNS를 통해 청문회 시청을 후회한다고 토로했는지 모른다. 만약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위력에 의한 강간 사건 재판이 중계되어서 피해자를 심문하는 재판관의 질문과 무죄를 주장하는 피고의 진술을 성폭력 생존자들이 직접 들었다면 어땠을까 상상해본다면 그 느낌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의 분노와 반대에도 캐버너는 상원투표를 50대 48로 통과해 대법관으로 임명됐다. 무분별한 미투 고발이 남성들의 삶을 파괴하고 있다는 불평과 달리 현실은 성폭력 혐의가 폭로되어도 여전히 명예와 권력을 지닌 종신직 대법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9명의 대법관으로 이루어진 연방대법원은 미국 최고 사법기관으로 3억 명이 넘는 미국인들의 삶에 근본적인 영향을 미치는 판결을 내린다. 종신직 대법관은 사망, 사임, 은퇴 또는 탄핵으로 물러날 때까지 수십 년 동안 자리를 지킬 수 있다. 1790년 대법원이 시작된 이래 지금까지 단 한 명의 대법관만 하원에 의해 탄핵당했다. 그때도 상원에 의해 무죄 판결을 받아 그 대법관은 죽을 때까지 자리를 보전했다.

중도적인 성향으로 알려진 케네디 대법관의 사임은 보수진영에게는 보수 성향 대법관을 임명해 5대 4로 대법원의 방향을 확실히 보수 쪽으로 기울게 하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런 목적으로 지명된 캐버너는 부시 정부에서 일했고, 이후 연방항소법원 판사로 임명되어 그동안 계속 보수적인 판결을 해 온 판사이다. 그는 일관되게 친기업, 반노동, 반이주민, 반여성적인 판결을 내려왔다. 특히 그가 대법관이 되면 여성의 낙태권을 인정한 “로 대 웨이드(Roe v. Wade)” 판결을 뒤집으려 할 것이고 민권, 이주민 권리, 성소수자 권리 등에 대한 공격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보수적인 판사들은 캐버너가 아니어도 많다. 포드 교수의 폭로 이후 별문제가 드러나지 않은 다른 보수적인 백인 남성 판사로 대법관 후보를 바꾸는 것이 더 합리적일 수 있었다. 그러나 저들은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캐버너를 기필코 지켜냈다. 왜 그랬을까?

캐버너의 대법관 인준은 미투운동에 대한 미국 지배 엘리트들의 응답이다. 할리우드 실세 하비 와인스틴이 저지른 성폭력을 폭로하며 지난 10월 시작된 미투운동이 그동안 각계각층으로 퍼져 나가며 기존 질서를 흔들어 왔다. 하지만 여성 억압과 차별에 기반한 체제를 근본적으로 바꿀 생각이 전혀 없고 모든 힘을 동원해 그 체제를 유지하겠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그들이 체제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제 여성들이 세상을 지배하려 한다고 불평을 늘어놓는다. 트럼프는 “미국의 젊은 남성들에게 끔찍하게 무서운 시절”이라며 캐버너를 방어했다. 수많은 여성들이 성폭력을 폭로한 트럼프로서는 당연한 대응이다. 고작 3명의 여성들이 폭로한 캐버너가 낙마한다면 지금까지 적어도 22명의 여성들이 폭로한 트럼프 자신의 운명은 어찌 될 것인가?

하지만 캐버너를 방어한 것은 트럼프 같은 노골적으로 드러난 성폭력 가해자만이 아니었다. 부시 전 대통령은 캐버너 인준을 주저하는 상원의원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해 캐버너 지지를 강력히 주문했고, 공화당 중진 그레이엄 상원의원도 청문회에서 이 모든 것이 정치적 이유로 캐버너의 인생을 망치려는 시도라며 분노를 표출했다.

캐버너를 지지한 것은 소위 남성연대만이 아니었다. 백인 상류 특권층 여성들도 캐버너를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서로 간의 차이가 있어도 똘똘 뭉쳐 이 시스템을 지키겠다는 걸 보여주었다. 이들의 메시지는 분명했다. ‘우리는 성폭력 생존자들의 고통 따위에는 관심이 없어. 너희들이 아무리 떠들어도 세상은 절대 변하지 않을 거야.’

하지만 여성들은 더 이상 침묵하지 않고 결코 미투운동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강력히 보여주었다. 포드 교수의 증언을 들은 수많은 여성이 그녀에게 공감했다. 그리고 그들 또한 포드 교수처럼 용기를 내었다. 포드 교수가 증언 중인 몇 시간 동안 전국성폭력핫라인 신고전화가 147% 증가했다고 한다. 수많은 여성이 SNS와 이후 벌어진 캐버너 인준 반대시위에서 자신들이 겪은 성폭력 경험을 밝혔다. 이들 대부분은 처음으로 자신들이 겪은 성폭력에 대해 말한다고 했다.

▲브렛 캐버너 대법관 임명 반대 1인 시위. by flick.com Lorie Shaull

용기는 전염성이 있다. 살해 위협에 시달리면서도 용기 있게 증언하는 포드 교수를 보면서 수많은 여성들이 자신들도 더 이상 침묵하지 않겠다고 입을 연 것이다. 온갖 조롱과 위협과 폭력에도 굴하지 않고 침묵을 거부한 사람들이 세상을 바꾼다. 1991년에 아니타 힐 교수가 용감하게 나섰고 2018년에는 포드 교수와 미투운동이 있다.

15살 크리스틴 포드가 소리내지 못 하도록 그녀의 입을 막았던 손이 36년이 지난 지금도 그녀의 입을 막으려 했지만 그녀의 증언은 전세계에 생생히 전달되었다. 사람들은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최고의 권력기관에 앉아 있는 자들의 진짜 모습을. 9월 27일 청문회에서 폭로된 오만한 특권 뒤에 가려져 있던 저들의 민얼굴을. 포드 교수 같은 성폭력 생존자들의 입을 막으려는 손들이 도처에 존재하지만 여성들은 외치고 있다. 다시는 침묵을 강요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캐버너 대법관 인준과정에서 예전의 트라우마가 떠올라 다시 고통을 겪는 모든 성폭력 생존자들에게 이 말을 하고 싶다. 우리는 비록 이번 전투에서 졌지만 결코 전쟁에서 진 것이 아니라고. 모든 성폭력에 반대하는 이 전쟁에서 우리는 반드시 이길 것이고, 당신의 용기가 결국 세상을 바꿀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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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수경
뉴욕에서 도시빈민, 이주민, 여성, 성소수자 등을 대변하는 공익인권변호사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