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철의 멋진 신세계?] 괴물이 된 인터넷과 기술의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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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인터넷의 바탕을 이루는 월드와이드웹(WWW) 창시자 팀 버너스-리는 지금의 인터넷은 괴물이 되어버렸다고 비판했다. 그는 자신의 블로그와 언론 인터뷰를 통해 분열과 불평등을 가속화하는 중앙집중적 웹 시스템에 맞서 사용자 개인 자신의 데이터를 제어할 수 있는 새로운 오픈소스 프로젝트 ‘솔리드(Solid)’를 개발하고 있다고 밝혔다. ‘솔리드’는 버너스-리가 벌이고 있는 인터넷분권화 운동의 일환으로 제안되었으며 세계적으로 큰 관심과 주목을 받았다.

버너스-리가 자신이 창시한 웹 세계에 대해 이처럼 강력한 비판을 하게 된 것은, 세상 사람 모두의 자유로운 교류와 소통을 위해 만들었다고 하는 인터넷이 소수 독점기업이 지배하는 공간으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그는 지금 인터넷 세상은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으로 대표되는 거대 IT기업을 위한 공간으로 오염되었다고 진단한다. 세계의 절반에 가까운 사람들이 인터넷을 이용하고, 자신의 이력이 담긴 각종 정보를 소셜미디어와 같은 플랫폼에 자발적으로 헌납한다. 이렇게 해서 수집된 데이터를 통해 몇몇 소수의 기업이 가만히 앉아 막대한 부를 독점하는 현행 인터넷 시스템은, 분명 버너스-리가 꿈꾸었던 세상은 아니었을 것이다.

괴물이 되어버린 인터넷

인터넷의 역사를 제대로 들여다보면 버너스-리의 발언과 구상은 어딘지 모르게 자기 모순적이라는 점을 깨닫게 된다. 그가 모두의 자유로운 교류를 위해 만들었다는 월드와이드웹(WWW)이 실은 지금의 인터넷 상업화와 독점의 시발점이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나치기 쉬운 사실은 인터넷이 초창기에는 소규모 네트워크들의 연합에 의해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텔레코뮤니스트 선언』의 저자 드미트리 클라이너는 초기 인터넷이 또래협력(p2p)에 기반을 둔 네트워크라고 확언한다. 그는 초창기 인터넷 시스템은 중앙의 통제나 서버에 의존하지 않고도 또래협력 네트워크에 의해 검색, 이메일, 채팅, 영상스트리밍, 파일 공유와 같은 인터넷 활동이 자유롭게 이루어졌다고 말한다.

클라이너에 따르면, 버너스-리가 창시한 웹의 등장으로 또래협력에 기반을 둔 네트워크는 파괴됐다. 거대 기업의 서버에 의존하지 않고 협력적 네트워크를 통해 수평적 관계에 있었던 인터넷은 웹의 등장으로 상업화의 기반이 된 서버-클라이언트 구조로 재편됐다. 인터넷이 또래협력 네트워크라는 공유지에서 기업의 서버에 의존하는 상품으로 전락하게 된 시점이 바로 웹이 등장하여 보급된 시기라는 것이다. 이를 두고 클라이너는 “정보-인클로저”의 과정이라 칭했다.

클라이너의 진단이 사실이라면 월드와이드웹은 인터넷 중앙집중화와 독점, 상업화의 뿌리이자 온상이었던 셈이다. 이는 버너스-리 자신이 최근 들어 혹독하게 비판하고 있는 인터넷 문제가 실은 자신이 창시했던 월드와이드웹에 이미 내재해 있음을 의미한다. 그가 새로운 인터넷 시스템 ‘솔리드’를 구상하면서 내세운 것은 바로 디지털 거대기업의 지배로 오염된 웹 구조 전복이다. 자신이 창시했던 ‘웹’이라는 피조물이 괴물로 변하자 새로운 시스템으로 맞서 싸우겠다는 것이다.

버너스-리의 모습은 SF 고전 『프랑켄슈타인』(1818)에서 자신이 만든 피조물이 기괴하고 흉측한 괴물로 변하자 끝까지 쫓아가 사투를 벌이는 프랑켄슈타인을 연상하게 한다. 프랑켄슈타인은 우리가 흔히 잘못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괴물 이름이 아니라 괴물을 만들어낸 과학자 이름이다.

웹 2.0과 자본의 독점

2000년대 초반에 등장한 웹 2.0은 사용자들 간 온라인 협업과 공유를 강조하는 소셜 네트워크와 같은 2세대 인터넷 기반 서비스를 가리킨다. 웹 2.0 시대에 이르러 인터넷 콘텐츠 생산과 유통에 거대한 변화가 일어났다. 웹 2.0은 비용이 많이 들고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 만들 수 있었던 디지털 콘텐츠를 무상의 플랫폼 브라우저에서 손쉽게 제작하고 유포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했다.

사람들은 구글의 검색창에 들어가 구글을 위해 일하는 노동자가 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페이스북에 올린 글과 사진은 고스란히 페이스북의 다양하고 창의적인 콘텐츠가 되었다. 유튜브는 간단한 플랫폼 하나만으로도 단숨에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영상 콘텐츠 기업이 되었다. 구글은 전 세계 검색의 87%를 독점하고 있으며, 페이스북 월 사용자는 세계 인구 세 명 중 한 명꼴인 22억 명이고, 유튜브도 월평균 19억 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용하고 있으며 상승세가 매우 가파르다. 구글과 페이스북은 유튜브나 인스타그램과 같은 자회사까지 포함하여, 전 세계 웹 광고의 60% 이상을 독점하고 있다.

웹 2.0 이후 인터넷 사용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사용자의 대부분이 인터넷 노동계급이 되었다. 사용자들의 인터넷 활동은 엄밀히 말하면 거대 기업을 위해 일하는 노동으로 기능한다. 콘텐츠 제작과 유통은 얼마든지 자유롭게 이루어지지만 여기에서 나오는 이윤은 기업이 독점한다. 웹 2.0이 표방한 “웹을 통한 협업과 공유”라는 슬로건은 결국 허위에 지나지 않음이 여실히 드러났다.

협업과 공유는 독점 기업을 위한 무상 노동으로 기능했을 뿐이고, 그들이 주구장창 부르짖은 집단지성은 결국 아무런 사회적 변화도 가져오지 못했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는 인공지능,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클라우드 기술을 기반으로 맞춤형 웹 시대로 진화한 웹 3.0에서도 여전히 마찬가지다. 웹이 어떠한 단계로 업그레이드된다고 하더라도 웹이 지닌 생산의 분산, 소유의 독점이라는 구도는 변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 심화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

결과가 이러한데도 최근 ‘공유경제’라는 이름으로 또 다른 기만의 역사가 쓰이고 있는 게 현실이다. 우버나 에어비앤비로 대표되는 공유경제 플랫폼은 차량과 숙박을 공유한다는 의미 외에는 ‘공유’의 가치와는 정반대로 운영되고 있다.

공유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이들의 공격적인 시장 점유는 산업생태계를 교란시키고, 노동자들의 경쟁을 부추겼다. 우버가 들어서는 곳마다 노동자들의 시위는 끊이지 않고 일어나고 있으며 에어비엔비는 불법과 탈법, 그리고 무책임 운영으로 곳곳에서 원성을 사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행태에도 이들 두 기업은 미국 비상장기업 중 기업가치 순위를 놓고 1, 2위를 다투고 있다.

이들이 말하는 ‘공유경제’란 결국 ‘편의’로 유혹하는 ‘착취’ 시스템에 불과하다. 소비자를 편의로 유혹하고 공급자와 소비자에게 돌아가야 할 혜택을 중간 네트워크 플랫폼이 가로채는 것을 과연 공유경제라고 할 수 있겠는가? 이들이 하는 일이란 결국 막대한 자본을 투자해서 플랫폼을 선점하는 일이다. 어떻게 이러한 중간착취 구조를 두고 “소유를 함께 나눈다”는 뜻의 ‘공유’라는 말을 쓸 수 있겠는가?

가짜뉴스와 기술의 책임

근래 세계는 온통 ‘가짜’가 점령한 시대가 되었다. 자세히 들여다보고 찬찬히 따져 보지 않으면 그럴듯한 가짜가 진짜로 둔갑해서 우리를 완벽하게 속이는 세상이다. 심지어는 공영 언론에서조차 가짜뉴스에 속아 오보를 내는 일이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가짜뉴스를 조직적으로 생산하는 무리가 있는가 하면 이를 통해 돈벌이하는 부류도 생겨났다.

그렇다면 예전에는 가짜뉴스와 같은 현상이 전혀 없었던 것일까? 물론 그렇지 않다. 가짜뉴스는 늘 만들어져 왔고 사회적으로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처럼 가짜뉴스가 이렇게 강력한 사회 문제가 된 적은 없다. 오죽했으면 탈진실(post-truth)이라는 말이 생겨났겠는가.

여러 사람들이 말해 온 것처럼 전통적 미디어의 몰락과 그 과정에서 생겨난 사회적 신뢰 상실, 빠르고 단편적으로 유통되는 정보와 데이터,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얻는 편향적인 정보 습득,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짜뉴스를 만들어내게 하는 사회적 불안과 적대 등을 가짜뉴스 현상의 원인으로 진단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원인의 근저에는 결국 기술의 급격한 발전과 이에 대한 무책임이 자리하고 있다.

어떻게 손쓸 겨를도 없이 기술은 미디어의 환경을 순식간에 바꿔 놓았다. 오랜 세월 지켜온 기존의 관습과 틀을 완전히 깨버렸다. 세상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제 디지털 기기의 간단한 조작만으로도 얼마든지 자신의 입맛에 맞게 진실을 조작하고 이를 널리 알릴 수 있게 되었다. 정보의 습득도 편향되고 고립된 소셜미디어 구조 속에서 자신들이 원하는 것만을 보고 듣는다. 진짜를 알아내기 위해서 들여야 할 시간과 노력을 대신하여 디지털 기술은 너무나 간단하게 진실을 은폐한다. 한때 쌍방향적이고 민주적인 소통과 교류가 가능할 것이라던 뉴미디어의 전망은 이전 시대보다 훨씬 어두워졌다.

진실로 돌아가는 길이, “보편적 해방이라는 새로운 인식론적 관점에서 진실의 재구성”(슬라예보 지젝, <한겨레>, 2018.9.27.)에 있든, “불평등에 대한 정밀한 분석을 통해 가장 설득력 있는 설명 모델과 대안을 제시하고 다양한 배경의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유연한 정치조직을 구성하는 일”(박권일, <뉴스민>, 10.1.)에 있든, 우선적으로 고민하고 해결해야 할 것은 앞으로 더욱 가속화할 것이 확실한, 한계를 모르는 기술 발전과 이로 인한 인터넷과 미디어의 생태계 붕괴에 대비하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결국 기술 문제에 대한 시민의 주도권을 찾아오는 것이 반드시 전제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