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예멘 난민과 역사의 교훈 /이택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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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22 09:38 | 최종 업데이트 2018-10-22 09:38

오스발트 슈펭글러는 <서구의 몰락>이라는 저서에서 1차 세계대전 이후 파리강화회의에서 이루어진 조약을 ‘독일 민족의 수치’라고 말하면서 ‘서구의 쇠퇴’를 보여주는 하나의 징후라고 주장했다. 이후 이어진 유럽의 경제 위기와 나치즘의 등장은 이런 슈펭글러의 생각에 힘을 실어주었다. 슈펭글러가 강조한 ‘민족’은 당시 독일에서 좌절한 중간계급의 분노에 기름을 붓는 역할을 했다. 한 연구에 따르면 나치에 가담한 이들은 대체로 ‘좌절한 중간계급’에 속했고, 이들은 전후의 위기와 대공황으로 인해 삶의 의욕을 완전히 상실한 상태였다.

이 ‘좌절의 경험’을 모두가 동일하게 겪은 것은 아니었지만, 일부에게 닥쳐온 고통을 자신에게도 닥쳐올 문제로 쉽게 받아들였다. 이들 역시 나치가 모든 문제를 단번에 해결해줄 것이라고 믿지 않았다. 다만 나치 활동을 통해 그나마 삶을 견딜 수 있다고 믿었다. 끊임없는 투쟁과 운동은 공허한 삶을 채워주는 것 같았고, 강제당한 수치에서 벗어나는 ‘민족’의 위업에 가담함으로써 고귀한 의미를 스스로 부여할 수 있었다. 정책과 강령이 좋아서 나치를 지지했다기보다 운동의 형식에 가담함으로써 쉽사리 현실을 잊는 자기도취에 빠졌던 것이다.

흔히 알려진 것과 달리, 나치가 외국인 노동자들을 배제한 것은 아니다. 전시의 나치 정책은 놀랍게도 외국인 노동자를 ‘초빙 노동자’라고 지칭하면서 징집으로 발생한 노동력의 공백을 이들을 통해 보충하려고 했다. 실제로 군수산업 노동자의 3분의 1 이상이 외국인 노동자였다. 그러나 이런 외국인 노동자의 거주는 철저하게 인종주의의 위계화를 통해 통제 관리되었다. 이런 위계 맨 아래에 위치한 인종들은 주로 러시아 전쟁 포로들이거나 동유럽 노동자들이었고, 이들에게 가해진 중노동을 일컬어 나치는 ‘노동을 통한 학살’이라고 불렀다.

비단 이들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시선은 나치의 것만은 아니었다. 심지어 나치에 반대하던 독일인들조차도 외국인 노동자를 불신하고 거리를 두었기 때문에 이들과 연대해서 나치에 대항하는 정치적 연대를 구축하려는 시도는 없었다. 이런 광경은 1900년대 러일전쟁 이후 만주에 진출한 일본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1909년 친구의 초청으로 만주를 방문한 일본 소설가 나쓰메 소세키는 당시 <아사히신문>에 연재한 여행기에서 공공연하게 ‘쿨리’라고 불리는 중국 노동자의 모습을 믿을 수 없는 존재로 그린다. 일본문학사에서 개인주의에 기초한 민주주의를 옹호하고 제국주의를 반대한 것으로 잘 알려진 이 근대문학가가 만주라는 경제적 식민지에서 취했던 자세는 이처럼 사뭇 이질적인 것이다.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시선을 개인의 윤리 문제로 바라보는 것은 단편적일 수밖에 없다. 나치를 지지했던 독일 중간계급의 ‘병든 욕망’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이 시선은 수미일관한 사상의 결과물이라기보다, 그 사상의 틈을 감추고 있는 증상이라는 관점에서 숙고할 필요가 있다.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또는 경제발전을 추동하기 위해 장엄한 민족서사를 동원하지만, 현실에서 필요한 것은 바로 노동력이다. 노동자는 국가의 입장에서 노동력의 담지자이지만 동시에 전쟁을 위해 동원해야 하는 무력의 담지자이기도 하다. 국가의 역량을 총동원해야 하는 전쟁 상황은 노동자를 병사로 만들어야하지만, 그렇기에 그 빈자리를 다른 노동자로 메워야 한다. 이 모순의 조건은 결과적으로 자신들이 제거해야할 대상을 자신들의 본래성 내로 반입해야 하는 문제를 노출시키는 것이다.

이 문제는 먼 역사의 이야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한국 역시 비슷한 모순에 처해 있다. 올해 제주도로 입국했던 예멘 난민들을 둘러싼 논란도 있었다. 지난달 이들 중 23명에게 “인도적 체류 허가”를 당국이 내림으로써 논란은 일단락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체류 허가를 받았을 뿐 이들 중 누구도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한 마디로 이들은 믿을 수 없는 존재인 것이다. 이 현실은 무엇을 말해주는 것일까.

급격한 인구감소라는 ‘재난 상황’은 이미 현실적으로 외국인 노동자라는 타자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고 있다. 그런데도 저항은 여전하다. 앞서 이야기한 독일과 일본의 경우에 비추어 지금 당면하고 있는 한국의 경우는 얼마나 다른 것일까. 평소에 우리는 가혹했던 식민지 경험을 인용하면서 부강한 국가발전을 통해 ‘민족의 수치’를 극복해야한다고 강조한다. 국민 개개인의 권리를 공평하게 보장하는 민주주의를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가치를 본래적이고 순수한 민족의 문제로만 인식한다면, 우리는 역사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는 우를 범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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