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찰, 박근혜 대통령 풍자 그래피티 수사 나서

“재물손괴 혐의 핑계로 표현의 자유 침해” 지적

19:45

경찰이 박근혜 대통령을 풍자한 그래피티 게시자 수사에 나섰다. 재물손괴 혐의다. 그래피티가 게시된 건물 주인은 신고하지 않은 상황이라 “재물손괴 혐의를 핑계로 대통령 풍자를 단속하는 것”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문제가 된 그래피티는 영국 밴드 ‘Sex Pistols’의 앨범 자켓에 박근혜 대통령의 얼굴을 담은 A4 크기의 작품으로 알려졌다. 이 작품은 6월 중순경 대구시 중구 대구백화점 인근 건물 외벽에 6점이 게시됐고, 당일 출동한 경찰이 모두 제거했다.

▲이번 그래피티의 컨셉인 영국 밴드 ‘Sex Pistols’의 앨범 자켓. 출처: flickr.com

대구중부경찰서는 그래피티가 재물손괴 혐의가 있다고 보고 수사에 나섰다. 중부서는 작품이 게시된 곳 인근 CCTV 영상을 확보해 게시자를 추적했다. 게시자가 시내의 한 술집에 들어가는 것을 확인한 경찰은 수차례 해당 술집을 방문해 수사를 진행했다.

이규용 중부서 지능팀장은 “신고된 사건이고 혐의도 있어 기초 조사 차원에서 수사했다. 재물손괴가 될 수 있지만, 명예훼손 여부는 법률적 검토가 필요하다”며 “관계자에게 추후 발견 시 연락 달라는 협조를 구했는데, 수사가 진척되지 않으면 통신수사도 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래피티 수사 사실이 알려지자 예술계와 법조계는 표현의 자유를 위축할 수 있다며 우려를 드러냈다.

한상훈 대구민예총 사무처장은 “왜 지금 예술가들이 처벌의 위험까지 무릅쓰고 나서서 박근혜와 박정희를 그리는지 주목해야 한다”며 “사회가 통제되고 정보공유가 안 되면서 표현의 자유가 위축되는 상황에서 예술가들이 반발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대구시에도 그래피티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있는데 박근혜나 박정희가 등장한 것만 과도하게 수사해왔다. 충분히 의도가 의심스럽고 재물손괴 혐의로 수사하는 것도 정당한지 의심스럽다”고 덧붙였다.

대구의 한 변호사는 “재물손괴는 주인의 의사에 반하는 효용가치 훼손”이라며 “당사자가 아닌 주변에서 문제 제기를 받았다고 거기에 대해서 경찰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조사를 시작하는 것은 절차적으로 의도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표현의 자유 탄압받는 사회···“위험”
“탄압을 가해 입막음하는 악순환”

박근혜 정부 들어 표현의 자유는 화두로 떠올랐다. 대구에서는 2014년 세계에너지총회 총회 장소 인근에서 했던 한 시민의 퍼포먼스를 제지해 국가손해배상청구를 했고, 대구시의 컬러풀 축제 당시 송전탑 반대 퍼레이드가 저지되기도 했다. 이어 대구시 새누리당 당사 앞에서 박근혜 비판 전단지를 배포한 시민이 압수수색됐고, 전단지를 제작한 시민은 구속된 사례도 있다. 또, 박정희 전 대통령을 풍자한 그래피티를 그린 시민이 벌금형에 처해지기도 했다.

서창호 인권운동연대 활동가는 “표현의 자유는 헌법이 보장하는 시민의 기본적 권리다. 최근 들어 표현의 자유 탄압 사례가 많은 문제는 그만큼 정치적인 표현이 많아진 배경을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박근혜 정권이 대중의 기본권을 충족시키지 못하면서도 반민주적, 반인권적 사례가 나타나는 것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는 차원”이라면서 “분노에 대해 반성하고 해결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탄압을 가해 입막음하는 악순환에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