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쳐도 신고 없었던 포스코, 26년 하청노동자는 목숨을 잃었다

조용하게 지나간 산재 사고, 포스코 내부 문건 입수
“노조 없던 포스코, 산재 공포로 죽음 기다리는 닭 같았다”
"포스코, 일하다 다치면 다친 사람이 역적···차라리 침묵"
포스코 포항제철소, 5년간 사망 10명으로 파악

20:08

지난 2014년 6월 어느날 포스코 포항제철소에서는 산재 사망 사고가 일어났다. 그러나 외부 신고는 없었고, 결국 하청노동자는 목숨을 잃었다. 산재 사망 사고였지만, 밖으로 알려지지 않았는데 ‘뉴스민’이 입수한 포스코 내부 문서에는 사망 사고가 일어났고, 장비가 구조적으로 안전에 취약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뉴스민’이 입수한 포스코의 ‘재해 속보’ 문서

포스코 외주협력사 직원 김모(당시 나이 48세) 씨는 파이넥스3공장에서 4.5t 대차(화물 운반용 기구)를 운전하다 가슴 협착 사고를 당했다. 자재를 실어 30t을 넘긴 대차를 좁은 공간에서 운전하던 직원은 뒷 쪽의 H빔을 보지 못했고, H빔과 대차 사이에 끼인 것이다.

당시 파이넥스1공장에서 일하던 한대정(41) 씨도 소식을 전해 들었다. 사고를 당한 김 씨는 가슴을 다쳤는데도 의식이 있었고, 말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응급차는 오지 않았다. 신고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장에 있던 책임자는 부상자를 들쳐업고 승용차 뒷좌석에 실어 병원으로 갔다.

김 씨는 결국 목숨을 잃었다. 88년부터 포스코 공장에서 26년을 일한 하청노동자였다. 외부로 소식이 알려지지 않은 탓인지 언론 보도는 없었다. 다만 포스코가 작성한 한 장짜리 <재해 속보>에 그의 인적사항과 간단한 사고 발생 상황, 원인이 담겼다. 사고 발생 원인은 “대차 후진 작업 중, 후방 확인 소홀, 대차도 구조적으로 안전에 취약(협소)”이라고 기록됐다.

▲’뉴스민’이 입수한 포스코의 ‘재해 속보’ 문서에는 ‘대차’가 구조적으로 안전에 취약하다고 나와 있다.

포스코에서 사망 사고가 일어날 때마다 공장 분위기는 침울해진다. 한대정 씨는 사고 소식을 들을 때마다 공장이 거대한 닭장처럼 느껴졌다. 도축을 앞둔 닭이 잡혀 나가는 공포 속에서도, 오늘은 나의 차례가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하는 것이다.

하청업체 사장부터 포스코 현장 책임자까지도 책임을 피할 수가 없기 때문에 이들은 산재가 벌어지면 은폐하는 방법을 택했다. 응급 환자가 발생해도 신고하지 않았다. 웬만한 재해가 생겨도 치료비를 쥐여 주며 병원에 가도록 했다. 2014년의 협착 사고 당시 119 신고를 먼저 했다면 어땠을까. 응급조치와 안전한 후송이 있었다면 사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한 개인이 나설 수는 없었다. ‘눈에 띄는 닭’이 될 수는 없었다. 포스코의 문화는 현장 개선보다 재해자를 징계하고, 동료들의 연대 책임을 묻는 ‘군대 문화’였다. 사고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는 ‘관심병사’가 될 것이다.

2018년 1월 포스코 하청노동자 4명이 질식사한 사건처럼 외부에 알려지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드물었다. 한대정 씨는 근무하는 동안 주변 동료들의 재해를 수없이 봤고, 철저히 은폐됐다. 크고 작은 재해가 시시콜콜 일어나는데, 공장마다 적힌 ‘무재해 ○○○일’ 문구는 날마다 더해진다.

▲경북 포항시 남구 포스코 공장

<뉴스민>은 포스코 노동자 3명에게서 산업재해가 일어나는 현장 상황을 들었다.

“한번은 제강공장 사람이 설비 점검을 하러 갔는데 쇳물이 튀어서 화상을 입었어요. 그런데 그 사람이 징계를 받았어요. 거기에 왜 들어갔냐는 겁니다. 재해가 일어나면 숨깁니다. 공장장이 그냥 사비로 치료비를 줘요. 진급이 걸려 있거든요. 산재로 등록되는 경우는 거의 본 적이 없어요”(A씨)

“회사는 사고가 일어나면 작업자의 부주의로 몰고 갑니다. 왜 거기에 있었느냐. 왜 혼자 했느냐. 쉴새 없이 돌아가는 현장에서 어떻게 하나하나 다 지키고 일을 할까요. 하나하나 따지다 보면 결국 작업자의 책임이 됩니다”(B씨)

“예전에는 손가락, 발가락 잘리는 정도는 일도 아니었습니다. 산재 당한 본인도, 주변 동료도 힘든데, 본인에게 징계를 주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연대책임을 묻습니다. 이제 다친 사람이 역적이 되는 겁니다.”(C씨)

2013년부터 2018년 8월까지 포스코 포항제철소 내 재해로 사망한 노동자는 10명(하청 9명, 원청 1명. 자료출처=문진국 자유한국당 국회의원실)으로 나타났다.

산업재해가 끊임없이 발생하는데도 나아지지 않는 상황은 노조(금속노조 포스코지회) 결성의 주요 사유가 됐다. 앞서 산재 사고가 보도돼 외부로 알려지는 경우도 나왔지만, 사고 처리 시스템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았다. (포스코 재해 관련 기사: 머니투데이=포스코 폭발 사고…6시간 지나도록 ‘신고無’, 국제신문=포스코 폭발사고, 119 신고 않고 자체수습…소방서 신고 없이 ‘자체 수습’ 5명 부상)

한대정 씨는 동료들과 함께 노조를 만들기로 했다. 건강한 노조 만이 공장 분위기를 바꾸고 안전한 일터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한대정 금속노조 포스코지회장

한대정 금속노조 포스코지회장은 “지금 산재가 일어나면 회사가 단독으로 조사하고 처리한다. 사내 자체 응급 처리 시스템은 현장 접근이 빠르다는 장점은 있지만, 전문성이 떨어진다. 증거인멸의 우려도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군대식 조직문화, 연대책임을 묻는 문화 때문에 관리자들도 현장 노동자도 사고에 쉬쉬한다”라며 “공장을 쉬지 않고 돌리고 서로 경쟁에 부치는 상황에서 표준 안전 작업 기준에 맞출 여건도 되지 않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앞으로는 사고가 발생하면 현장에 우리 노조가 가장 먼저 가고 조사에도 참여할 것이다. 재해를 은폐하지 못하게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포스코 관계자는 “사고가 발생하면 자체 소방서가 일단 출동한다. 신속한 조치가 필요하기 때문”이라며 “사망자가 발생하는 경우에는 외부에 알려서 외부 소방서가 온다. 산업재해가 발생하면 숨길 수 없다”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