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방탄소년단 ‘원폭 티셔츠’가 문제적인 이유 /이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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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12 10:33 | 최종 업데이트 2018-11-12 10:33

2년 전 가본 일본 히로시마 모토야스 강은 유난히 평화롭게 흐르고 있었다. 강을 가로지르는 ‘상생(相生)의 다리’라는 뜻의 아이오이 다리 옆에 ‘원폭 돔’이라고 불리는 히로시마 평화기념관이 서 있었다. 5층으로 이뤄진 돔을 3층 건물이 감싸고 있는 구조였다. 철강 골조로 된 외벽은 대부분 무너진 채 골격만 앙상했다. 1945년 8월6일 오전 8시15분, 아이오이 다리 상공 570m에서 터진 원자폭탄으로 3~4천도의 열기와 초속 340m 폭풍이 들이닥쳤다. 이 건물을 제외한 반경 1.6km 주변 모든 건물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리고, 출근과 등교를 서두르던 일본 시민과 학생들은 그 자리에서 녹아버렸다. 히로시마 평화공원에는 돌계단 위에 앉아있던 사람이 재로 변하면서 남긴 검은 흔적이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다. 생명이 그렇게 순식간에 인간의 형상이 아닌 무늬로만 남았다.

▲원폭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히로시마의 돔. [사진=천용길 기자]

흔적 없이 사라진 죽음만 있었던 게 아니었다. 일본 방사선영향연구소는 원자폭탄이 터진 뒤 2개월에서 4개월 사이 사망한 피폭자를 히로시마 9만~16만6000명, 나가사키 6만~8만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당시 히로시마에는 34만~35만명, 나가사키에는 25만~27만명 정도가 살고 있었다. 히로시마 사망자 가운데 군인은 2만명 정도로 추산되고, 나가사키 사망자 가운데 군인은 250명에 불과했다. 나머지 13만~22만명은 그러니까 일상을 살아가던 시민들이다. 게다가 일본 내무성 정보국 자료를 보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조선인 피폭자 5만명도 목숨을 잃었다. 자발적으로 일본에 간 이들도 있었겠지만, 강제징용 등으로 일본에 끌려간 조선인도 있었다.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이 일본 TV아사히의 ‘뮤직 스테이션’이라는 프로그램 출연을 하루 앞두고 출연 취소 통보를 받았다. TV아사히는 출연 취소 통보에 대해 “이전에 한 멤버가 착용한 티셔츠 디자인이 파문을 일으켜 일부에서 보도됐고, 소속사에 착용 의도를 묻는 등 협의를 진행했지만 최종적으로 출연을 연기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들이 문제 삼은 티셔츠는 방탄소년단 멤버 지민이 지난해 7월 입었던 광복절 기념 티셔츠를 말한다. 티셔츠에는 ‘애국심(PATRIOTISM)’, ‘우리 역사(OURHISTORY)’, ‘해방(LIBERATION)’, ‘코리아(KOREA)’ 등의 문구가 영문으로 새겨져 있고, 그 문구 위에 원자폭탄이 터지는 사진, 광복을 맞아 만세를 하는 한국인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 덮여 있다. 언론 보도를 보면, 일본 극우 매체와 단체들이 이 티셔츠를 문제 삼기 시작했고, 방탄소년단의 일본 방송 출연에 항의하면서 출연 취소 통보까지 이어졌다. 이에 한국 사회에선 일본 방송의 출연 취소 통보를 강하게 비판하고, 일본 사회를 조롱하는 동시에 방탄소년단을 응원하는 반응이 거세게 일고 있다.

▲방탄소년단의 멤버가 입고 있어 논란이 된 티셔츠. [사진=이재훈]

이 사건에는 최근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일본 기업이 배상해야 한다는 한국 대법원의 최종 판결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판결 이후 일본 정부는 해당 기업을 대상으로 설명회를 열고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해결됐으니 (강제징용에 대해) 배상이나 화해에 응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도 그동안 사용하던 ‘징용공’이라는 표현 대신 앞으로 ‘한반도 출신 노동자’라는 용어를 사용하겠다고 밝혔다. 공식 용어에서 ‘징용’이라는 역사적 사실 자체를 부정하겠다는 의도다. 이런 배경을 등에 업은 일본 우익들이 방탄소년단 멤버 지민의 1년 전 티셔츠 문제를 새삼스럽게 거론했고, 일본의 방송국도 우익들의 여론에 쉽사리 편승해 출연 취소 조처를 내렸다.

우선 이번 일로 새삼 알 수 있는 것은 일본 사회 내 혐한 정서가 점점 더 강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재일 조선인이 일본 사회에서 특혜를 받고 있다면서 몰아내자는 일본인들이 있는가 하면, 혐한 정서를 등에 업고 출간한 <매한론>이나 <치한론>, <대혐한시대> 등과 같은 책이 서점가에서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다. 이 책들은 특별한 근거도 없이 “술자리에서 안주 삼아 오가는 얘기들”로 가득차 있다. 마치 일종의 ‘놀이’처럼 퍼져 가는 특정한 인종이나 민족을 대상으로 한 극우적 혐오 정서가 위험한 건 사람들 사이의 공동체에서 “이 놀이를 함께하지 않으려는 사람은 그저 흥이나 깨는 사람으로 여겨”(<어느 독일인 이야기>, 제바스티안 하프너, 돌베개, 2014)지기 때문이다.

독일의 언론인 제바스티안 하프너는 제1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독일에서 혁명이 실패하고 게르만 민족의 순혈주의와 우월성을 강조하는 극우 나치즘이 어떻게 독일인들의 일상에 스며들게 됐는지에  대해 쓴 <어느 독일인 이야기>에서 이때의 분위기를 이렇게 묘사했다. “역겨운 것, 진창 같은 것, 메스꺼움이 뚝뚝 떨어지는 것도 극단까지 밀고 가니 매혹적으로 변했다.” 그러니 한국 사회는 일본 사회의 혐한 정서를 적극적으로 비판하고, 그것이 ‘놀이’처럼 여겨져선 안 된다는 사실을 대항 담론으로 펼 수 있어야 한다.

문제는 한국 사회의 대항 담론이 순식간에 수만명의 무고한 시민들을 ‘검은 흔적’으로 만들어버린 20세기 인류사 최악의 비극을 소재로 해서 이뤄졌다는 점이다. 수많은 무고한 생명을 고문과 강제징용, 성노예와 전쟁으로 앗아간 일본 제국주의와 식민지배만큼이나, 전쟁을 끝내겠다며 민간인들이 살아가는 도시 한가운데 핵폭탄을 터뜨려 십수만명의 무고한 생명을 말살한 미국의 선택 역시 분명한 전쟁 범죄다. 전쟁 범죄는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해서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일본 원폭을 소재로 한 대항 담론이 문제인 두 번째 이유는 그것이 두 번의 원자폭탄 사용으로 마무리된 태평양전쟁과 5년 뒤 있었던 한국전쟁, 그리고 또다시 5년 뒤 벌어진 베트남전쟁을 겪으면서 세계적으로 일어난 반전 평화 운동의 역사적 맥락을 몰각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특히 일본 진보 정치의 중요한 뿌리 가운데 하나가 바로 반전평화운동이다. 그리고 이 반전평화운동의 중요한 계기 중 하나가 바로 원자폭탄으로 인한 참혹한 인간 말살의 경험이었다.

원자폭탄이 대항 담론이 되어서는 안 되는 세 번째 이유는 그런 행위가 한국 정부와 한국인들을 한 덩어리로 묶어서 해석하는 일본 사회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일본 사회 일각에선 박정희 정부가 1965년 맺은 한-일 청구권·경제협력 협정, 그리고 박근혜 정부가 2015년 맺은 한-일 위안부 합의를 부정하는 한국인들을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하는 목소리가 있다. 정부는 당연히 한국인들을 대표하는 기관이기 때문에 정부가 맺은 협정이나 합의는 곧 한국인들의 견해가 되어야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런 지적에는 역시 역사와 맥락이 배제되어 있다. 피해 당사자의 목소리가 배제된 채 사실의 인정과 법률에 따른 손해배상, 역사교육을 포함한 후속 조처를 기반으로 일본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경로를 삭제한 협정과 합의에 대해 다수의 한국인들은 박정희와 박근혜 정부를 비판했다. 여기서 정부와 시민은 당연히 분리될 수 있다.

그런 점은 일본 역시 마찬가지다. 일본 극우가 목소리를 높이고 아베 정부가 이들의 정서에 기댄 극우적 행보를 이어간다고 해도, 그것이 일본 사회 전체의 선택이라고 볼 수는 없다. 일본 사회에도 박근혜 정부의 한-일 위안부 합의를 부정하는 한국인들처럼, 아베 정부의 극우적 행보를 견제하는 것과 동시에 일본의 식민지배를 인정하고 사과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일본 정부와 분리된 행보를 하는 일본인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대체로 진보적인 반전평화운동을 주도하거나 이들과 연대하는 이들이다. 원자폭탄 사진을 내걸고 하는 일본 비판이 문제적인 건 이런 이유 때문이다.

사실 방탄소년단의 ‘원폭 티셔츠’는 일본 극우와 동전의 양면이다. 우리는 (일본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의) 피해자이기 때문에 가해자를 응징하는 그 어떤 대항논리도 문제 될 것이 없다는 반응들이 증폭되면, 그것은 누군가의 절멸을 바탕으로 ‘순수한 세상’을 꿈꾸는 극우주의 이데올로기에 가닿게 된다. 심지어 그 반응들이 ‘음악으로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한국의) 방탄소년단을 통해 증폭되고 있다는 사실은 다분히 징후적이다. ‘헬조선’이라고 자조하는 청년들이 있는 반면, ‘이만큼 살만한 대한민국’을 자랑스러워하는 청년들이 있고, 이 청년들에게 방탄소년단과 같은 K-POP 한류는 ‘이만큼 살만한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에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첨병이다. 이번 ‘원폭 티셔츠’에 대한 일본의 비판을 두고 “방탄소년단은 어차피 굳이 일본 시장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을 수 있는 진정한 월드 스타이기 때문에 일본의 반응에 신경 쓸 필요 없다”와 같은 반응이 나오는 건 이런 현상을 방증한다.

인간의 절멸을 바라는 행위는 그것이 어떤 명분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용인되어서는 안 된다. 일본 제국주의나 식민지배에 대한 비판과 원자폭탄으로 인한 참혹한 인간 말살은 같은 곳을 바라볼 수 없는 행위다. 우리는 원자폭탄이나 일본 제국주의, 그리고 식민지배가 낳은 전쟁으로 인해 발생한 참혹한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역사를 반성하지 않는 이들을 비판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나는, ‘원폭 티셔츠’를 입은 방탄소년단이 세간의 여론처럼 역사의식이 뚜렷한 이들이라면, 최소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폭 피해자들을 향해 고개 숙여 사과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본 사회 일각의 어리석은 대응에 대한 비판은 그 뒤에나 가능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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