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준의 육아父담] 커서 뭐 될래?

12:59

딸아이가 대뜸 묻는다. “아빠는 꿈이 뭐야?” 글쎄? 사실 꿈같은 것은 없는데 마땅히 생각나는 것이 없다. 대충 얼버무리며 말한다. “우리 가족 행복하게 사는 거?” 실망스럽다는 듯이 다시 따져 묻는다. “아니 그런 것 말고 되고 싶은 거 없어?” 찬찬히 생각해본다. 무엇이 되고 싶을까? 무엇이 되고 싶었을까? 아빠가 되고 싶어서 되었는데 또 다른 게 없을까? “아빠는 예전에 PD나 기자 같은 일을 하고 싶었어.” 반갑다는 듯 대답한다. “잘됐네. 내가 키즈 크리에이터가 될 거니까 아빠가 PD해.” 앗싸! 언제 바뀔지 모르는 꿈이지만 덕분에 내 꿈을 이룰 기회도 얻었다.

한창 꿈 많을 나이. 아이는 되고 싶은 것이 너무 많다. 학교에 가니 선생님이 되고 싶고, 미술학원에 가니 패션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 또 피아노 학원을 가니 피아니스트도 되고 싶다. 사실 패션디자이너는 마음 맞는 친구 몇몇과 장사를 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자기는 옷을 팔고 친구는 옆에서 커피를 팔기로 했단다. 또 한 친구는 악세사리를 팔기로 했다나 어쨌다나. 아이는 배우고 경험하는 모든 것에 재능이 있다고 생각했고 마음만 먹으면 그 무엇도 될 수 있다고 상상했다. 아마도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이 딱 이런 것이 아닐까. 그래도 엄마는 되기 싫다 한다. 너무 힘들어 보인다면서 말이다. 그래도 냉정하게 보는 구석도 있으니 조금은 다행이다.

아이가 말하는 꿈, 흔히 말하는 장래희망. 어떻게 부르든지 간에 꿈을 가진다는 것은 참 행복한 일이다. 물론 지금 꾸고 있는 꿈이 언제 또 변할지, 실현가능할지는 또 모르는 일이지만 말이다. 자기가 하는 일에 보람을 느끼고 행복하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다. 그래도 부모가 되니 가급적 안정적이고 편안한 일을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생기는 것은 여느 부모와 다를 바 없다. 예술 쪽은 얼씬도 안 했으면 좋겠다. 운이 없게도(?) 재능이 있다면 뒷받침을 할 자신이 없다. 과연 나는 아이가 선택하고 결정한 길을 간섭하지 않고 묵묵히 지켜보고 격려하는 아빠가 될 수 있을까? 성격상 쉽지 않을 것이다. 틀림없이 온갖 경우의 수를 늘어놓으며 아직 세상 물정을 잘 몰라서 그런다고 잔소리를 해댈 것이다.

돌아보니 잔소리 대마왕 아빠도 한때는 꿈이 많았다. 남자아이가 흔히 그렇듯 경찰, 소방관, 군인 같은 누군가를 구하고 지키는 일을 꿈꿨던 적이 있었다. 한창 감수성이 예민한 시절에는 좋아하는 가수 소사(청소, 음식, 심부름 등등 온갖 일을 다 하는 사람 말이다.), 음악평론가, 스포츠 신문 기자를 꿈꾸던 적도 있었다. 피 끓는 대학시절에는 추석 보름달을 보며 ‘조국통일’을 진심으로 소원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다 옛날얘기다. 막연했던 것이 현실로 다가오고 그 현실의 벽에 맞닥뜨리는 순간 꿈에서 깨어났다. 지금은 하고 싶은 것보다 지킬 것이 많아진 겁 많은 아저씨에 불과하다. 사실 가진 것도 별로 없지만 말이다.

그래서일까? 지금은 내 꿈보다는 아이의 꿈이 훨씬 궁금하다. 때로는 혼내면서 “너 뭐가 되려고 이러니?” 나무라기도 하기도 하고, 때로는 기대에 차서 “어른이 되면 뭐가 되고 싶어?” 묻기도 한다. 그때마다 아이는 하고 싶은 일을 줄줄 늘어놓고, 자기가 잘하는 것을 자랑한다. 시도 때도 없이 바뀌는 다양한 그 꿈속에 아이의 현재 모습이 있고 관심사가 보인다. 그것을 확인하는 것은 참으로 즐거운 일이다. 비록 “아빠 생각은 어때?”라는 물음에 ‘정말 원하고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식상한 모범답안을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이 참 안타깝긴 하지만 말이다.

이제 수능이 끝났다. 명문 대학에 붙는 것은 과연 아이들의 꿈일까? 부모들의 꿈일까? 정말 수능이 대박 나면 인생이 대박 나고 시험을 망치면 인생도 쪽박 차는 것일까? 자식을 위해서라고 말하는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여 보자. 우리는 여전히 좋은 대학을 가야만 성공할 수 있다고 여기고 학벌이 많은 것을 좌우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냉정한 현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서열을 정하고 줄을 세운다고 해서 꿈에도 등수가 있어서는 안 된다. 아이들이 점수에 맞춰 꿈을 맞추는 일도 없어야 한다.

어느 날 네 살 아들에게도 꿈을 물어봤다. “우영이는 뭐가 되고 싶어?” 잠시의 고민도 없이 단호하게 답한다. “아기” 그래 너도 좀 컸다고 한창 아기가 부러울 때다. 아빠도 나이 사십에 다시 스무 살 청년처럼 살고 싶으니 말이다. 사실 뭐가 될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어떻게 살지가 훨씬 더 중요하다. 그래도 궁금한 것은 어쩔 수 없다. 너희들 커서 정말 뭐 될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