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향민 2세 박기영 시인의 삶과 꿈, 시집 ‘무향민의 노래’

0
2018-11-20 23:05 | 최종 업데이트 2018-11-20 23:25

평안남도 맹산을 ‘원적지’로 둔 박기영 시인이 지난 9월 시집 『무향민의 노래』(한티재)를 출간했다. 이북에 고향을 둔 탓에 그리움이 사무쳤던 아버지와 시인의 삶을 그린 ‘원적지’ 연작과 ‘무향민’, 통일을 꿈꾸며 노래한 ‘분명 올 거야, 그날이’ 등 신작시 47편을 담았다. 『맹산식당 옻순비빔밥』(모악)을 출간한지 2년 만이다.

▲박기영 시인[사진=정용태 기자]

‘무향민’은 이북에서 내려온 고향 없는 사람이다.

“내려와서 새로 살림 낸 / 우리를 그 사람들이래 어떻게 보갔어. / 통일되어서 그곳에 가서 / 살 수 있는 것도 아니지비 그러니 / 우리는 고향 없는 무향민이야.”
- ‘무향민- 박영수 형님에게’ 중에서

‘시인의 말’에서 박기영은 “어머니의 자궁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모든 인간은 무향민이다”라고 했다.

비슬산 진달래 지천으로 핀 봄날 / 당신 생각은 어떤지 궁금해 / 잡풀 무성하게 돋아난 산길 올라 / 산소 옆에 앉아 말없이 / 이승과 저승 오가는 대화 주고받는다. //가셔야 되겠지요? / “......” / 살아서 그렇게 그리워했던 곳 / 못 가시게 붙잡아 두면 버럭 / 옛날처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 제 멱살 잡아 흔드시겠지요. //북쪽 처남이 / 고향에 남은 조카들 대신 / 기어이 만들어 세워 놓은 상석. / 제주 따르다 고개 드니 / 하늘 한쪽 기울어져 눈앞이 흐려진다.
-‘원적지 5’ 중에서

시인은 한반도에 이는 평화의 바람을 간절히 바랐다. 시인은 ‘분명 올 거야, 그날이-이동순 선배님에게’에서 섬진강에 살며 전국을 누비는 이원규 시인을 불러내어 열차 타고 몽골로 가는 꿈을 꾼다. 이번 시집 출간도 ‘남북 이산가족 상봉’ 보름 만이었다.

그렇게 될 거야. / 그때에는 / 내가 사는 대전 / 중앙시장 생일식당 국밥집에서 / 서둘러 아침 먹고 / 북쪽으로 출발하는 열차 타고 / 평양 모란봉 극장쯤 가서 / 나를 기다리고 있던 친구와 만나 / 천천히 냉면 가락 편육과 함께 먹은 뒤에 / 또다시 출발을 하는 거야. // 몽골 들판에 야생화가 피었다는데 / 그것 보러 간다고 / 신의주와 단둥을 거쳐 울란바토르까지 / 지난겨울 한탄강에서 / 검독수리가 물고 간 장단콩 커다란 씨앗 / 제대로 뿌리 내리고 있는지. / 그 옛날 우리 할아버지들이 떠나 왔다는 / 알혼 섬 자작나무 숲까지 / 열차 타고 한번 다녀오겠다고 / 섬진강 강둑에서 매화 소식 듣고 출발한 / 원규와 함께 가 보는 것이지.
-‘분명 올 거야, 그날이 - 이동순 선배님에게’  중에서

박일환 시인은 발문에서 “평화가 이 시대의 화두라고 할 때, 그게 단순히 철조망을 걷어내는 일로 국한되어서는 안 될 일이다. 또한 정권 담당자들에게 모든 걸 맡겨 놓고 기다리기만 해서 될 일도 아니다. 우선 지금 여기서 평화를 가로막고 있는 현실적 조건들을 쳐내는 일에 눈감지 말아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박기영 시인의 발걸음이 사드 철회 투쟁을 하고 있는 성주 소성리로 향하고 있음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향후 박기영 시인의 작업이 어디로 향하고, 어떻게 확장될 것인가 하는 고민의 일단을 엿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느 인터뷰에서, 30년 동안 절필하다시피 했던 시를 다시 쓰게 된 계기가 세월호 참사였다고 한 얘기를 기억한다”라고 썼다.

▲'무향민의 노래' 출간기념회와 같이 극단 함께사는세상 무대에 오른 시극 '맹산 박포수' 공연 관람 후 문학청년 친구들과(김경호, 박기영, 나문석 시인(왼쪽부터)과 마임이스트 조성진) [사진=정용태 기자]

박기영은 시를 바탕으로 만든 시낭송극 <맹산 박 포수의 망향가>(정지창 대본, 김창우 연출)도 전국에 알려지길 바랐다.

박기영 시인은 1959년 평안도 맹산 출신의 아버지와 경북 상주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충남 홍성 출생이나 충청도, 강원도 등지를 전전하다 대구에 정착해 성장기를 보냈다. 1982년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시로 당선, 『우리 세대의 문학』 등에 작품을 발표했다. 장정일과의 2인 시집 『聖・아침』, 『숨은 사내』, 『맹산식당 옻순비빔밥』 등을 냈다. 현재 충북 옥천에서 옻 관련 음식을 만들고 있다.

▲125×200mm | 168쪽 | 8,000원 | 2018년 9월 10일 출간 | ISBN 978-89-97090-92-1 03810

tele
Print Friendly, PDF &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