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기득권의 논리에 포획당한 민주주의 /이택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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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26 10:55 | 최종 업데이트 2018-11-26 10:57

지난 9월에 있었던 선거에서 스웨덴 사회민주주의당이 28.3%의 득표율을 얻어서 간신히 정권을 지켰다. 극우정당의 집권이라는 악몽은 현실화되지 않았지만, 스웨덴 사민당은 1911년 보통선거권 확립 이후 최저의 지지율을 보였다. ‘그나마 선방했다’라는 평가도 있지만, 저조한 지지율은 스웨덴의 사회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했다는 사실을 가시적으로 드러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역설적으로 이런 위기는 자신들의 복지제도를 유지하기 위한 스웨덴 중간계급의 이탈을 통해 일어난 것이다. “진보적이고 공정한 스웨덴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이민자들에게 국경을 개방하지 말아야 한다는 역설도 이런 현실에서 기인한다.

무한한 관용과 공정한 분배를 약속했던 전후의 가치들은 사실상 위기에 봉착했다. 스웨덴의 사례는 다소 늦게 도착한 사태일 뿐이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루었다는 자부심은 통합보다도 배제의 기제로 드러나고 있다.

예멘 난민에 대한 편견 어린 발언들은 자국민들의 안전을 해칠 수 있는 난민들을 무분별하게 수용하는 것을 허락할 수 없다는 “시민들의 목소리”로 포장되었다. 난민을 거부하는 이런 목소리는 “이것이 국가인가”라는 정부에 대한 비판의 다른 면이라는 점에서 분열적이다. 말하자면, 이 ‘정상국가’에 대한 요청은 ‘자국민’이라는 폐쇄회로에 갇혀 있는 것이다. 이 ‘자국민’은 포용이 아니라 배제의 논리로 작동한다는 점에서 호혜평등주의와 대립한다.

이런 의미에서 사민주의의 위기는 결국 보편주의의 위기이기도 하다. 전체주의라는 미명으로 모든 보편주의의 가능성을 봉쇄한 결과가 이런 현실로 나타난 것이라는 지적도 없지 않지만, 여하튼 중요한 것은 보편주의의 위기가 배제의 논리를 더욱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배제의 논리는 지금 현재 상태를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유지하기 위한 행동을 조장한다. 미국의 트럼프 당선과 유럽의 극우주의 약진은 이와 같은 분위기에서 도드라진 것이라고 하겠다. ‘극우주의는 시대착오’라는 ‘정치적 올바름’의 수사만으로 이 상황을 타개할 수는 없다.

문제는 극우주의가 제기하는 해결책에 대응할 만한 반대편의 입장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지금 위기는 정확하게 ‘좌파’의 몰락을 통해 심화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 역시도 마찬가지이다. 한때 ‘좌파’로 불리는 것을 자연스럽게 여겼던 이들이 속속 우향우를 감행하고 있는 모습은 우연이 아니다.

조국 민정수석이 본인의 페이스북에 현 정부는 민주노총만의 정부가 아니라는 취지의 글을 올렸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역시나 그의 논리는 현 정부는 ‘반보’를 위해 노력하고 있기 때문에 민주노총의 요구만큼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마치 민주노총의 주장은 현실을 너무 앞서 나가는 급진적인 양 비치게 만드는 논법이다.

▲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11월 2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총파업대회를 열고 적폐청산, 노조할권리, 사회대개혁을 촉구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희훈 기자

그러나 과연 그런가. 그렇게 민주노총의 주장이 급진적인가. 사실 ‘좌파’의 관점에서 보자면, 민주노총의 주장은 오히려 현실적인 요구에 너무 가깝다. 현 정부가 말하는 그 ‘반보’는 도대체 누구를 위한 반보일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조 수석의 논리는 결과적으로 민주노총을 국민으로부터 배제해서 분리시키려는 익숙한 책략이다.

촛불의 힘으로 집권했다는 현 정부에서 노동자는 여전히 이 공화국의 시민권을 얻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조 수석의 글이 증명하고 있는 셈이다.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강사법도 마찬가지이다. 대학 측은 재정을 핑계로 강사 수를 줄이겠다고 말한다. 물론 재정이 중요하다는 것을 십분 인정하더라도 정작 뜨거운 감자 노릇을 하는 쟁점은 강사에게 교원자격을 부여할 수 없다는 대학구성원 일반의 생각일 것이다. 사실상 재정문제는 이 외설적 진실을 감추고 있는 가면일 뿐이다.

스웨덴의 사회민주주의가 지금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고자 하는 중간계급의 욕망으로 인해 절뚝거리는 것처럼, 한국의 민주주의 주역이라고 할 수 있는 중간계급이 기득권의 논리에 포획당한 채 그 이념의 확장력을 상실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루었다는 한국의 자부심은 왜 공평하게 만인의 것이 될 수 없을까. 그 자부심 자체가 이미 배제와 분리의 논리에 근거해서 작동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독재자의 딸이 집권했던 과거의 오류를 되풀이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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