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교과서 대구 토론회, “검인정 교과서도 바뀌어야 할 마당에…”

"교과서 그대로 가르치는 교사 없어...국정교과서 질적차이 없을 것"

12:37
Voiced by Amazon Polly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반대 여론이 연일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현행 검인정 한국사 교과서의 서술 방향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26일 오후 7시, 대구시 중구 가톨릭근로자회관에서 ‘역사 교과서 국정화 무엇이 문제인가’ 시민 토론회가 열렸다. 한국사교과서국정화반대 대구네트워크가 주관한 이번 토론회에는 주보돈 경북대 사학과 교수, 차경호 대구역사교사모임 대표,?김찬수 대구경북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상임대표, 이시훈?영남대학교 대학원생이?토론자로 나섰고, 이정찬 민족문제연구소 대구지부 학술국장이 사회를 맡았다. 토론회에는 시민 30여 명이 참석했다.

토론자들은 현재 검인정 한국사 교과서도 완벽한 것은 아니라고 지적했다.?차경호 대표는 “검인정 교과서가 되면서 현장 교사들이 교과서 제작에 많이 참여했다. 답이 없는 과제를 다양하게 생각해 볼 수 있는 활동이 많아졌다. 검인정체제는 자유발행제로 가는 징검다리 역할이라 생각했다”며 “국정화 이전 작업이 한국사 수능 필수화였다. 한국사를 안 배우면 안 되는 과목으로 만들어놓고 가르치겠다는 전략이었다.?수능에 나오는 걸 안 가르칠 수 없으니까 활동을 할 시간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주일에 국사 2시간, 근현대사 4시간 수업하던 것을 ‘한국사’ 한 권으로 통합하면서 시수는 4시간으로 줄었다. 부피는 줄었지만 내용은 그대로다. 내용 서술이 줄어드니 선생님이 설명하는 게 많아진다”며 “그래서 지금도 교과서 그대로 가르치는 역사 선생님이 거의 없다.?교과서 서술 방향이 개선될 때 바람직한 역사 교육이 현장에서 이루어지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IMG_6305
▲차경호 대구역사교사모임 대표.

주보돈 교수는 “윤선도라는 사람이 어부사시사를 쓰는데, 일반적으로 가르치는 건 윤선도 입장에서 고기 잡는 장면을 묘사한다. 우리는 어부가 어떤 심정으로 고기를 잡는가 교육받지 못한다.?오랫동안 한쪽 만 보도록 길들여져 왔다”며 “하루빨리 수능시험을 없애야 한다. 한가지 답을 요구하는 수능시험은 결국 논란이 되는 근현대사를 제대로 배울수 없다”고 말했다.

김찬수 상임대표는 “여전히 왜곡되거나 진실이 밝혀지지 않은 역사가 많다. 대구지역에 대표적으로 인혁당 사건, 10월 항쟁이 있다”며 “10월 항쟁이 유일하게 금성 출판사 교과서에 실렸다. 항쟁이라 표현하지는 않지만 사실이 기록돼 있다. 인혁당 사건은 몇 해 전 간첩사건이 아니라고 재판에서 밝혀졌고, 그 희생자들이 무죄라고 밝혀졌지만 어느 교과서에도 실리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도 유족들은 마지막 명예회복이 교과서에 실리는 것이라 말한다. 왜곡된 역사를 나라가 인정하고 후세에 알리는 것이다.?검인정 교과서도 이렇게 국가 차원에서 정리된 과거사, 친일 청산 운동 등이 반영되어 진보한 교과서로 나아가야 하는데 거꾸로 국정화를 하려고 한다”며 “국정교과서 문제는 그동안 지난 시기 노력과 국민들의 바램을 한꺼번에 물거품으로 만드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시훈 씨도 “현행?검인정 교과서와 국정 교과서는 질적으로는 별 차이는 없을 거라 생각한다. (물론 현 정권이 만드는 국정 교과서는 수준이 많이 떨어지겠지만…) 국민교육, 시민교육으로서 역사가 중요한 것은 고통받는 이들에 대한 연대의 자세라고 생각한다”며 “단순히 한 정권이 자기 아버지 명예를 복권하기 위해 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한편으로는 우리의 역사 교육, 역사론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IMG_6295
▲주보돈 경북대 사학과 교수.

또 이들은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시도가 영속적인 정권 유지를 위한 작업이라고 지적했다. 주보돈 교수는?”한국사 국정화 작업의 하나는 박정희 정권 시절 강조한 민족주체성을 다시 강조하는 것이다. ‘한국적 민주주의 토착화’라는 논리로 독재 권력을 미화하려는 것이 유신의 본질이었다”며 “박정희 정권은 유신 독재의 논리를 역사에서 만들었다. 신라의 화백회의, 화랑도, 단군신화가 그 당시 강조됐다. 그 당시처럼 과거를 만들어 현재를 미화하고, 미래를 장악하려는 모습이다”고 지적했다.

이어 “또 하나는 식민지근대화론에 입각한 주장이다. 일제시대 친일은 근대화를 위한 거라고 포장한다. 그 논리는 1948년 8월 15일 건국절 논리로 이어져 이승만 정권을 높이고, 박정희 정권 18년도 높이고자 하는 생각에서 나온 게 아닐까”라며 “정부와 여당에서는 아직 교과서를 쓰지도 않았는데 그러냐고 하지만 그동안 경험을 통해 된장과 똥은 구분할 줄 안다. 무식하게도 정치하는 사람들은 찍어 먹어봐야 안다고 생각하는 현실이다”고 꼬집었다.

주 교수는 “국정화란 다양성을 말살키시고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적 토대를 말살하는 것이다. 하나의 생각을 갖도록 하는 전체주의다. 이게 심해지면 정당도 하나면 된다는 굉장한 위험한 논리가 된다”며 “이번 정권이 내년 총선, 대선을 노리고 있다. 아마 일본 자민당 정권처럼 일당 체제를 만들려는 거대한 음모가 국정화와 맞물려 나타나는 거다”고 말했다.

이시훈 씨도 “한국 보수 우익들은 민주화 과정에서 역사적으로 도덕적으로 제약이 있다. 과거에 대한 명백한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다. 5.18 민주화 운동, 6월 항쟁 등 책임이 본인들에게 있다. 역사 문제에서 끊임없이 자기 굴레가 생긴다”며 “그래서 역사를 새로 쓰는 일은 자기들의 취약한 정치적 정당성 재건하는 일이라 생각한다. 끊임없이 정권 재창출하겠다는 것으로밖에 읽히지 않는다”고 말했다.

IMG_6315

한국사교과서국정화반대 대구네트워크는 매주 금요일 저녁 7시 대구시 중구 한일극장 앞에서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촛불집회를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