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모두가 정규직이 되면 김용균 같은 죽음이 사라지는가’라는 질문에 대하여 /이재훈

13:15

2011년 12월 9일 0시 29분께 인천공항철도 계양역에서 검암역 쪽으로 1.2㎞ 떨어진 철길. 백인기(당시 54살) 씨 등 6명의 노동자가 선로 보수작업을 하고 있었다. 이날 자정, 서울역에서 출발해 검암역으로 향한 공항철도 마지막 열차가 시속 80㎞로 달리다 이들의 등 뒤를 덮쳤다. 5명이 그 자리에서 숨졌고, 1명은 다리가 부러졌다.

▲2011년 12월 9일 비정규노동자 사망 사고에 대해 코레일을 규탄하는 기자회견. [사진=참세상 천용길 기자]

이들은 사고 전날까지 인천공항 쪽 운서역부터 검암역 사이 구간에서 선로 보수작업을 해왔다. 공항철도 인천공항행 막차는 0시 20분 이전에 이 구간을 통과한다. 이 때문에 이들은 계양역과 검암역 사이 구간에서도 평소와 같이 0시 20분이 지난 뒤 선로에 들어갔다. 그런데 이들이 몰랐던 사실이 있었다. 계양역과 검암역 사이 구간에는, 서울역을 출발해 검암역까지만 운행하는 막차가 한 대 더 남아 있었다.

사고를 낳은 핵심 문제점은 세 가지였다. 첫째, 누구도 이들에게 0시 20분 이후에 남은 열차가 한 대 더 있다는, 간단하지만 무거운 사실을 말해주지 않았다.

둘째, 이들은 형광 작업복이나 야광 반사판 같은 보호 장구를 하나  갖추지 못했다. 이 때문에 열차 기관사는 이들을 발견하지 못했고, 경적조차 울리지 못한 채 이들을 덮쳐야 했다.

셋째, 선로 보수작업에는 안전 책임자인 관리 감독원이 동행해야 하지만, 이날 현장에는 관리 감독원이 없었다. 관리 감독원은 하청에 맡긴 한 달이라는 작업 기간 동안 겨우 사흘 나타났을 뿐이다.

사고를 당한 6명의 노동자는 원청인 코레일공항철도㈜로부터 공항철도의 선로작업을 하청받은 코레일테크㈜ 소속 비정규직이었다. 코레일테크는 2003년 코레일이 시설운영 부분을 단계적으로 민영화하는 과정에서 설립한 사실상 코레일의 자회사다. 직원 1200여명 가운데 정규직은 40여명에 불과하고, 96%가 비정규직이었다.

사고를 당한 6명의 노동자는 철도 설비만 10~20년씩 해온 베테랑 기술자들이었지만, 누구도 자신의 안전 보장에 대해 회사에 요구할 수 없었다. 회사에 안전 문제를 거론했다가 언제 계약이 해지될지 모르는 신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원청이든 하청이든 ‘열차 진입 정보’라는 단순한 정보를 전달하는 데 신경 쓰지 않았고, 안전 장구를 갖출 비용을 마련해주지 않았으며, 열차가 다가오고 있다는 현장에서 확인해줄 관리 감독원조차 없는 상황에서, 노동자들은 어이없이 죽임을 당했다.

7년 전 발생한 이 죽음은 한국 사회에 ‘위험의 외주화’라는 개념을 처음 공론화하게 만들었다. 이 공론화 이후 위험 노동 현장에서 다수의 죽음이 발생했다는 소식이 들려오면, 한국 사회는 대체로 그들이 하청 노동자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2013년 3월 여수국가산업단지 폭발사고 때 목숨을 잃은 6명의 노동자는 모두 한달짜리 초단기 계약직 노동자였고, 2013년 5월 충남 당진의 현대제철에서 아르곤 가스에 질식해 숨진 5명의 노동자들도 모두 하청업체 소속이었다.

2014년 3월과 4월에는 울산 현대중공업 조선소에서 5명의 하청 노동자가 추락이나 폭발사고 등으로 사망했다. 2015년 7월에는 한화케미칼 울산공장 폐수처리 저장조에서 일어난 폭발사고로 현장에서 작업하던 하청 노동자 6명이 숨졌다.

이런 죽음들은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 고용노동부 통계를 보면, 2014년부터 2018년 7월까지 산업 현장에서 중대재해로 사망한 하청 노동자는 1426명에 이른다. 하루에 0.85명의 하청 노동자가 중대재해로 사망하고 있다는 얘기다. 2011년부터 2015년까지 5년 동안 주요 업종별 30개 기업에서 발생한 209건의 중대재해에서 사망자가 245명에 달했는데, 이들 가운데 하청 노동자가 무려 86.5%(212명)를 차지했다는 통계도 있다.

이런 죽음들을 낳은 이유도 공항철도 선로 보수작업 노동자들의 참변 이후 7년째 반복되고 있다. 첫째, 원청은 하청 노동자들에게 위험 업무를 맡기면서도 안전 교육을 하지 않고, 사고가 나도 책임지지 않는다.

둘째, 원청은 하청에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율을 올리기 위해 무리한 업무 일정을 강요한다. 하청 업체는 재계약을 따내기 위해 원청의 무리한 요구에 복종하고, 하청 노동자들을 압박한다. 하청 노동자들도 하나의 작업으로 받을 수 있는 임금이 적기 때문에 최대한 빠른 일정으로 업무를 끝내고 다른 업무로 모자란 임금을 충당하기 위해 무리한 일정을 따를 수밖에 없다.

셋째, 하청은 역시 최소한의 비용으로 원청의 사업을 따내기 위해 인건비를 최소화한다. 이에 ‘2인 1조’와 같은 업무 매뉴얼을 무시한 채 최소한의 인력을 투입하고, 위험 업무 현장에 훈련되지 않은 노동자들을 ‘유연하게’ 교체해가면서 투입한다. 넷째, 수많은 업무가 외주화한 상태에서 안전을 감시해야 할 업무마저 외주화해서 누가 어디에서 어떤 작업을 하고 있는지 관리되지 않는다. 다섯째, 노동자가 이렇게 죽어 나가도, 원청이나 하청업체 사업주는 약간의 벌금만 내면 될 뿐,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다.

이 이유들을 풀 해결책은 두 가지 정도다. 하나는 정부와 의회가 ‘죽음을 부른 이유’들을 방지하는 제도를 만드는 일이다.

▲[사진=페이스북 페이지 ‘구의역 스크린도어 9-4 승강장`]

2016년 6월 서울메트로의 외주로 스크린도어 관리를 맡은 하청업체 비정규직이던 19살 김아무개군이 홀로 구의역 승강장 안전문을 수리하다 참변을 당한 사건이 계기가 되어 2년 정도의 논의 끝에 올해 초 정부는 산업안전보건법 전면 개정안을 내놨다. 전면 개정안은 원청의 안전관리 책임을 대폭 늘리고, 안전보건조처 위반으로 노동자가 숨졌을 때 사업주가 받는 징역형에 ‘1년 이상’의 하한형을 새롭게 추가하면서 형사처벌을 강화했으며, 유해작업의 하도급을 전면 금지하는 내용도 담았다.

하지만 입법 예고가 시작되면서,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가 총공세에 나섰고, 보수언론과 경제신문이 이들의 논리에 힘을 실어주면서 전면 개정안은 누더기가 됐다. 일각에서 얘기가 나왔던 ‘기업 살인법’ 제정이나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의 도입은 거론조차 되지 못했다. 그렇게 아무런 진전 없이 정기 국회가 마무리된 직후인 지난 11일,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24살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 씨가 석탄이송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숨졌다.

▲20일 오후 2시, 구미역 앞 광장에 故 김용균 씨 추모 시민분향소가 설치됐다.

한국 사회의 많은 일들이 그렇듯, 참변이 발생하는 이유는 언제나 자명하다. 문제는 그 이유를 해결하기 위해 누구도 나서지 않는다는 점이다. 의회 정치는 몫 없는 자들의 목소리보다는 자본과 정보력을 갖춘 이들의 목소리에 휘둘리고, 기업은 위험 업무를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전적으로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서 외주를 선택한 뒤 간편하게 책임을 외면한다.

사법기관은 의회 정치가 만들어놓은 법을 핑계 삼고, 기업 자본이 유려하게 해석해놓은 변론을 발판 삼아 역시 몫 없는 자들을 외면한다. 이렇게 이 명징한 죽음의 이유들을 두고도 한국 사회는 7년 동안 아무런 해결책을 내놓지 못했고, 그러는 동안 구의역 김군도, 태안 서부발전 김용균 씨도, ‘꽃다운 청춘’이 아니어서 죽임당했다는 사실조차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하청 노동자들도, 기업에 의해, 나아가서는 한국 사회에 의해 살해당했다.

이런 상황이니, 남은 해결책 하나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그 해결책은 위험 업무에 투입되는 당사자인 노동자들이 사회와 기업에 위험 업무에 대한 안전 보장을 요구하고 감시하면서 동시에 싸우는 일이다.

그런데 그런 요구를 하려면, 최소한 노동자들이 그런 요구와 감시와 싸움을 했다는 걸 빌미로, 요구와 감시와 싸움을 위해 노동조합을 만들었다는 이유로, 일자리를 잃거나 임금이나 각종 노동 조건에 불이익을 받지 않아야 한다. 김용균 씨의 죽음 이후, 발전과 원전, 철도와 지하철, 항공과 병원, 각종 주요 산업 시설 등에서 위험 업무와 안전 업무를 맡는 이들이 정규직이 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 건 그런 까닭에서다. 이런데도 과연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위험의 외주화’의 해결책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