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리스트 사태 이후, 2018년 대구 문화예술계 갑질과 대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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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27 15:52 | 최종 업데이트 2018-12-27 15:52

사례 1. 대구 한 구청이 운영하는 문화시설에서 오랫동안 전시 준비를 한 A 씨는 전시 오픈 당일 전시를 시작하지 못했다. 일부 작품에 구청 행정에 대한 비판 내용이 담겼다는 이유다. 해당 구청은 A 씨 작품에 대한 한 큐레이터의 비평도 문제 삼았다. 구청은 비평의 특정 문구를 삭제하라고 A 씨에게 요구했다.

사례 2. 지난 해 대구아트스퀘어 행사에 작품을 냈다가 검열된 윤동희 작가. 윤 작가는 당시 다른 검열 피해 예술가들과 함께 행사 보이콧을 선언했고, 지역 예술가들도 이에 동참했다. 문체부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원회(공동위원장 도종환·신학철)는 해당 사건 진상조사 후, 대구시에 검열 사태 관련 공무원 3명의 징계를 권고했다. 하지만 대구시는 대상자 중 누구도 징계하지 않았다. 보이콧에 따른 가시적 성과는 없었다. 검열 사태에 대한 여론은 사그라들었고, 윤 씨는 주최측 한 인사에게 모욕죄로 고발됐다.

2017년 대구아트스퀘어 행사 당시 일어난 검열 사태 이후에도 대구 문화예술계에서 갑질이 여전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지역 문화예술계 인사들의 모임인 대구문화예술현장실무자정책네트워크는 26일 오후 3시, 대구시 북구 한 카페에서 2018년 한해의 갑질과 대책을 논하는 포럼을 열었다. 문화예술인 10여 명이 모였다.

▲26일 오후 3시, 대구시 북구 한 카페에서 2018대구문화예술현장실무자 정책네트워크 포럼 ‘갑질은 박멸되었는가?’가 열렸다

이날 포럼은 2017년 대구 아트스퀘어 검열 사태 당시 행사 보이콧을 선언했던 윤동희 작가의 피해 사례부터 소개됐다.

윤 작가는 “검열 사태가 실질적으로 해결되지도 않았고, 이후 개인적으로 송사가 생겨 심리적으로 위축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한상훈 대구민예총 사무처장은 “대구시나 미협에서 행동해야 하는데 아무런 반응이 없다. 징계도 없고 문제시했던 사람들이 오히려 피해 보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손호석 예술공간 천권당 대표는 “사건 이후 관심이 사그라들었는데 피해는 이어지는 상황에서 이제 가만히 있는 게 장땡이라는 인식이 생길 것”이라며 “찍히면 끝이고 찍히기 전에 문제제기를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강화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윤 작가도 “그런 의식이 내재되고 당사자에게 망설이게 만든다”라고 덧붙였다.

도종환 장관도 말한 ‘팔길이 원칙’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겠다는데
“대구시는 잘팔리는 것만 원해”
“시장이 임명하는 문화예술 기관장 너무 많다”

한 문화시설에서 일어난 검열 사건(사례 1)처럼, 예술을 바라보는 행정의 관점이 문제라는 지적도 나왔다. 도종환 장관은 취임사를 통해 문화예술 분야에서는 지원하되, 내용에는 간섭하지 않겠다는 이른바 ‘팔 길이 원칙’을 밝혔다. 그러나 지역 예술가들의 목소리는 사뭇 다르다.

특수한 사례를 제외하고는 예술활동 만으로 수익을 낼 수 없어 행정, 기업의 지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행정은 ‘쉽고, 잘 팔리는’ 예술만 원한다는 지적이다.

시민이 문화예술을 접하는 창구인 전시관, 미술관, 콘서트하우스 등 문화시설이 대구시의 영향에서 독립적일 수 없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각 기관 대표를 개방형 공모로 뽑는다고 해도, 당연직 이사장이 대구시장인 상황에서 ‘눈치 안 보는’ 기관 대표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구시의 예술단체 지원, 개별 예술가 지원, 문화예술 육성 등 대구시 예술 정책 전반을 집행하는 대구문화재단도 유사 사례가 될 수 있다. 대구문화재단은 대표가 개방직이지만, 대구시장은 당연직 이사장이다. 이외에도 대구시장은 대구오페라하우스의 당연직 이사장이다. 또한, 시 산하 사업소로 대구콘서트하우스, 대구문화예술회관, 대구미술관이 있다.

권현준 대구경북독립영화협회 사무국장은 “사업을 확장하려면 공무원과 친하게 지내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라며 “정책 사업 파트너가 아니고 결국 잘보이란 얘기”라고 말했다.

손호석 대표는 “대구에서는 (각종 예술 사업에) 대구시 관계자가 참여해서 시의 입장을 계속 피력한다”라며 “눈치를 안 볼수가 없다.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은 꿈꿀 수 없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대구시가 임명하는 문화예술 관련 기관장이 너무 많다. 임명된 기관장은 대구시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독립성 확보를 위한 고민도 필요하다”라고 덧붙였다.

강구민 코뮤니타스 연구원은 “수직적인 부당한 권력 관계에서 갑질이 나타난다. 갑질은 지역 문화생태계를 파괴하고 창작자에 대해 신체적, 정신적인 폭력을 가한다”라며 “문제 재발을 막기 위해 제도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정보가 개방되고, 참여자가 다양하고, 네트워크와 협업에 기반하는 생태계적 제도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 포럼에서는 이외에도 ▲대구 문화예술계의 해결되지 않는 성폭력 문제 ▲배타적인 청년문화예술 정책 기획 등에 대한 토론도 진행됐다.

한상훈 사무처장은 이날 토론 내용을 정리하며 “앞으로 관이 말하는 ‘시민이 원하는 예술’이 무엇인지, 문화예술 예산을 어떻게 사용해야하는지 좀더 논의가 필요하다”라며 “행정이 검열과 갑질을 잘 모르니 교양교육이나 메뉴얼을 만드는 체계화도 필요”라고 말했다.

이어 “문화예술 기관 대표를 민주적으로 선출하고 시민의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라며 “문화계 성폭력 관련 이차적 공청회도 열어야하고 문화시설 책임자 선정 등 단계에서도 문화 민주주의 확대가 필요하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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