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목한 집은 드라마에서나 ‘우리 집’에선 살 수 없다 극심한 가정폭력·성폭행 노출

[대굴대굴] 집보다 길거리가 안전한 탈가정 청소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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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재원 보호를 위해 가명을 사용하고 취재 장소를 생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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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대구 시내 밤거리를 탈가정 청소년이 걷고 있다.

■금지된 삶?또 튕겼다. 노래방 문을 두드리길 네 번째, 이번에는 뚫을 뻔했는데. “여기는 민증 검사도 안 하나 보죠?” 노래방을 나서던 20대 손님이 주인에게 타박을 줬다. 월요일 자정 무렵, 손님이 없었던 주인은 짐짓 모른체 하려다가 입맛을 다신다. “에이 쌍X이···” 밤과 새벽 사이, 번화가에서 유령도시로 변한 대구시내, 거리로 쫓겨난 이들이 허공에 욕을 퍼붓는다. 유령처럼 도시를 떠도는 이들은 집 나온 청소년들. 거리에서 서로 사귄 여자 2명 남자 3명의 일행이다.

면전에서 문이 닫힐 때마다 미간에 주름이 잡힌다. 위조 신분증을 하나씩 갖고 있지만, 앳된 얼굴은 가릴 수 없다. 의견이 갈라졌다. 1. 근처 초등학교로 가자 2. 마지막 한 번만 더 뚫어보자. 평소 의견을 내세우지 않던 채린(16)이 이날은 노래방으로 앞장섰다. 초등학교로 가자던 윤도(18)는 미간에 주름을 하나 더 잡으며 뒤를 따랐다. 새벽 1시, 주인이 눈도 안 마주치고 방을 내준다. 손님이 없어 타박 주는 사람도 없다.

방에 들어서자마자 호주머니와 무릎담요에 숨겨뒀던 소주를 푼다. 채린도 주머니에서 청포도 맛 소주를 꺼낸다. 곧이어 방이 담배 연기로 가득 찬다. “왜 이 좋은 걸 안 피워요?” 채린이 눈을 반짝이며 묻는다. 윤도는 담배 링을 몇 개 뿜더니 드디어 숨통이 트인다는 듯 마이크를 잡는다. 예약곡이 재떨이처럼 가득 찼다. 안주는 술 게임이다. 벌칙은 옷 벗기. 공!공!칠!빵! 으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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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린(왼쪽)은 오랫만에 온 노래방에서 흥이 돋았다

외줄 타듯 경계에 선 청소년
화목한 집은 드라마에서나
‘우리 집’에선 살 수 없다
극심한 가정폭력·성폭행 노출

12일 처음 만날 당시 이들은 모두 경계심으로 가득했다. 윤도와 다른 남자 청소년들은 포켓볼이나 3구를 치는데 몰두하며 기자를 못 본 체했고, 채린과 다른 여자 청소년들은 전화하거나 페이스북을 했다. 한 시간이 흐른 저녁 10시 무렵, 어디서 술을 마시고 온 성훈(18)이 다가온다. 알코올 냄새를 화악 풍기면서도 눈은 부릅떴다. “은혜 이야기는 묻지 마세요. 다른 건 다 말해드릴 테니 오사마리 짓죠” 당시 누군지 몰랐던 은혜(18)는 14일 알게 됐다. 최근 한 방송프로그램에서 은혜를 취재하려고 했었는데, 성훈은 기자는 믿을 것이 못 된다며 거절하라고 했단다.

“우리요? 뭐 있나요. 술 먹고, 담배 피우고, 노래방 가고. 집에는 안 들어가고. 알바하고, 정 없으면 오토바이 털고 또 이것도 하고”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하며 주먹을 손바닥으로 두드린다. 혀가 꼬여 알아듣기가 힘든 차, 당구를 치던 윤도 등 5명이 이제 그만 노래방에 가자고 성훈을 잡아끈다. 경계심 가득한 성훈은 기자를 떼어내려다 자릴 비웠다. 밖에서 찾아보니 영화관 화장실에서 나오는 길에 곯아떨어져 있다. “걔는 술만 마시면 그래요”. 성훈 덕분에 이들이 경계를 누그러트렸다.

이들 중에는 며칠씩 집을 나오는 생활을 반복하는 이도 있고, 채린 처럼 다시는 집에 안 들어갈 작정으로 나온 이도 있다. 14일, 채린은 집을 나온 지 9일째다.

■반복되는 탈출···지옥같은 집?채린이 처음 집을 나온 것은 15살 때다. 친엄마가 채린을 때리면서 집을 나가라고 했다. 지금은 횟수로 10번을 넘었다. 집과 거리를 드나들길 2년, 엄마는 채린이 집을 나갈 때마다 대문 비밀번호를 바꾼다. 돈이나 입을 옷을 마련할 방법이 없다.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에게 기대야 했다. 남자친구가 위조 민증을 파줬고, 잘 곳도 마련해 줬다. 찜질방이나 피시방을 진전하다?보니 건강은 조금 나빠졌다.

이혼할 때 엄마를 따라나선 것이 잘못이었다. 성형수술을 해 준다는 사탕발림에 넘어갔다. 동생 둘은 친아빠를 따라가서 연락도 하지 않는다. 새아빠는 나이트에서 일한다. 새아빠를 생각하면 맞아서 발바닥에 피가 나던 기억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파우더를 발라 하얀 얼굴이 일그러진다. 학교에는 친한 친구도 없다. 이혼 이후 전학을 갔는데, “이미지가 안 좋게 찍혀서 애들이 배신하고 갔다”고. 급식실에서도 말없이 밥만 먹었다. 하지만 남자친구를 생각하면 얼굴이 활짝 펴진다. 채린에게는 남자친구와 그냥 강변에 앉아있는 것이 좋다. 그다음으로는 거리에서 사귄 친구들이다.

“다른 남자들은 다 변태 같은데 얘는 안 그러거든요. 변태 오빠들은 며칠 만에 뽀뽀하려고 하고 안고 막. 그런데 얘는 장난으로 모텔?가자고 해도 정색하고. 순수해요. 얘랑 결혼할 거예요. 걔가 헤어지자고 하면 난 죽을 거예요. 처음 한 번 깨졌을 때 죽으려고 했다니까요.”

아빠 이야기가 나오니 옆에 있던 은혜도 끼어든다. 은혜에게 가족은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아름다운 것”과는 다르다. 기억도 안 나는 2살, 사는 게 힘들어 우울증에 걸린 엄마가 보육원에 맡겼다고 들었다. 어린이일 때는 보육원에서 예쁨 받고 자랐지만, 한 차례 다른 보육원으로 옮기자 옮긴 보육원 언니들에게 종종 구타를 당했다. 다툼을 이어가다, 16살이 된 2013년 혼자 살던 이복언니와 연락이 닿아 보육원을 나왔다.

■심각한 가정 폭행?이복언니는 보육원 언니들보다도 은혜를 못살게 굴었다. 언니한테 맞아 피멍 든 얼굴로 학교에?다니고, 입이 찢어졌는데도 병원에 보내주지 않았다. 결국, 언니 집도 나왔다.

“차라리 밖에서 춥고 배고픈 게 나을 것 같아서 무작정 집을 나왔어요. 집 자체가 생 날라리 집이니까. 16살에 첫 가출이었는데 2주 정도··· 아는 언니나 동생 집에서 자거나 미안해서 당구장이나 피시방 계단에서 자기도 했어요.”

어느 날 은혜의 남자친구가 라면을 사 준다는 말에 편의점에 갔다. 남자친구가 계산을 안 하고 시간을 끄는데, 갑자기 누가 뒤에서 머리를 홱 잡아챘다. 이복언니였다. 짧았던 첫 가출도 잡아챈 듯 끝났다.

이후 은혜는 담임선생님의 권유로 탈가정 청소년을 위한 보호쉼터에서 생활하게 됐다. 그럭저럭 삶을 꾸려나가던 차, 7년간의 교도소 복역을 마친 아빠가 출소했다. 출소한 아빠는 은혜가 1년 정도 받아 모았던 기초생활수급비 100여만 원을 가로챘다. 그리고 여행을 가자며 은혜를 데려갔다. 그 여행에서 아빠는 은혜에게 폭행을 가했고, 그 일로 다시 경찰서에 입감됐다.

“너무하다 아니에요? 누구 때문에 내가 이렇게 사는데···나도 잘살아 보고 싶어서 아빠 그림도 그려주고 기다렸는데. 경찰서에서 나오면 또 맞을 것 같아요”

서클렌즈로도 흔들리는 눈빛은 가려지지 않는다. 흉터가 남은 입은 앙다물었다. 수환(16)과 성훈이 쉼터 통금 지났다며 데려다준다고 야단이다. “그냥 여기서 사귄 친구들이랑 술 먹고 담배 피우는 게 좋아요. 아, 같이 노래방 가는 게 제일 재미있고. 그걸로 끝이에요. 살기 어려워도 아껴쓰고 화장품은 돌려쓰고, 수급비도 쉼터랑 중복수급이라고 안 나와서 힘들지만, 웨딩 알바도 하고 초밥집 알바도 하고 있어요”

은혜나 채린의 사례처럼, 청소년 탈가정의 주된 원인은 가족 폭력이다. ‘가출 여자청소년 공간 이용 및 폭력 피해 실태’(가출여자청소년실태자료)에 따르면 이들의 첫 가출 연령은 13.8세이며, 주로 가족 폭력이나 폭언(63.8%) 때문에 집을 나온 것으로 나타났다. 가출여자청소년실태자료는 서울시가 이화여대·한국개발연구원 등에 의뢰했고, 현재 서울시·수도권에 거주하는 10대 여자청소년 218명을 대상으로 심층조사 했다.

가출이유

가정 폭력에 시달리던 청소년들의 경우, 집을 나온 이후 오히려 폭력에 적게 노출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출로 청소년이 성매매나 범죄 등 폭력에 노출된다”는 우려와 다르다. 실태조사자료에 따르면 청소년들은 가출 전 폭력 경험에 2.8점(매우그렇다:5점, 전혀아니다:1점)으로 응답했으나 가출 후 폭력 경험으로는 1.8점으로 응답했다. 성폭행 경험의 경우는 가정에서(1.6점)와 거리에서(1.6점)의 경우가 비슷한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가출 이후 범죄에 노출되는 것도 사실이지만, 가정도 그에 못지않게 폭력적인 공간이 될 수 있는 것. 가정에서 나왔기 때문에 ‘위기 청소년’이 되는 것이 아니라, ‘위기 청소년’이 가정을 나오는 셈이다.

가출 전후 폭력

가출 전후 성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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