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수경 칼럼] 김미숙과 메이미 틸 그리고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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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11 16:41 | 최종 업데이트 2019-02-12 12:17

스물네 살 청년 김용균 씨의 장례식이 2월 7일부터 9일까지 사흘 동안 ‘민주사회장’으로 치러졌다. 지난해 12월 11일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홀로 야간작업 중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몸이 두 동강이 나 목숨을 잃은 지 62일이 지나서야 그는 땅에 묻힐 수 있었다.

비정규직 청년 노동자 김용균. 역사는 그의 죽음을 잊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를 떠올릴 때마다 그의 어머니를 함께 기억할 것이다. 그의 죽음이 비참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한 해 약 천 명 가량이 일터에서 목숨을 잃고 있다. 하루에 두 세 명 꼴이다. 안전하지 않은 작업 환경 때문에 노동자가 다치고 목숨까지 잃는 것이 이 사회의 일상이 된 지 오래다. 그런 의미에서 김용균 씨의 죽음은 특별하지 않다. 그의 죽음이 단지 하나의 통계수치로만 남지 않게 된 이유는 어머니의 저항 때문이다.

▲故 김용균 씨의 어머니 김미숙 씨가 지난해 12월 열린 추모제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참세상 김한주 기자)

김용균 씨의 어머니 김미숙 씨는 아들의 죽음을 단순히 개인에게 닥친 불행으로 여기지 않고, 아들의 죽음을 넘어 이 땅의 수많은 김용균들의 죽음을 막고자 나서고 있다. 더이상 아들 같은 희생자가 나오면 안 된다고 “남은 청년들을 구하고 싶다”고 했다. “자식이 이렇게 비참하게 먼저 죽는 아픔을 다른 사람들이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아들의 장례도 미루고 싸워왔다.

나는 김용균 씨와 그의 어머니를 보면서, 미국의 뿌리 깊은 인종주의에 균열을 낸 한 소년과 그의 어머니를 떠올렸다. 불과 열네 살의 어린 나이에 백인우월주의자들에게 집단 린치를 당해 죽은 에멧 틸(Emmett Till) 이라는 이름의 흑인 소년이다.

미국 시카고에서 태어나 자란 에멧 틸은 1955년 여름 미국 남부 미시시피 주에 사는 친척 집을 방문했다. 어느 날 사촌들과 한 가게에 들렀다가 그는 죽임을 당할 ‘죄’를 저지른다. 가게를 나오면서 주인의 아내인 백인 여성에게 휘파람을 불었다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그가 그저 인사를 한 것뿐이라고 한다. 에멧 틸이 실제 어떤 행동을 했는지, 그의 의도가 무엇이었는지 이야기가 분분하다. 분명한 것은 에멧 틸이 무심코 했던 행위가 흑백 인종 분리와 차별을 당연시하던 남부 백인우월주의자에게 결코 용납할 수 없는 ‘범죄’ 행위로 여겨졌다는 것이다.

생생하게 폭로된 인종주의의 민낯

곤히 자고 있는 에멧 틸을 백인 남성 두 명이 깨운 건 며칠이 지난 후였다. 에멧 틸이 ‘희롱’했다는 백인 여성의 남편과 그의 동생이 죄를 물으러 온 것이다. 그날 밤 에멧 틸은 이들에게 납치되었다가 며칠 후 탈라하치 강에서 시신으로 발견된다.

시신은 눈을 뜨고 볼 수 없는 처참한 모습이었다. 총살되기 전 구타와 고문을 당한 그의 얼굴과 몸은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한쪽 눈은 도려내어 졌고, 치아는 모두 사라지고 두 개만 남았다. 한쪽 다리와 양쪽 손목뼈는 모두 부서졌고, 머리는 총에 맞은 구멍이 뚫려 있었다. 그의 신원을 확인해주는 것은 손에 끼고 있던 아버지의 유품, 반지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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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참한 시신이 되어 돌아온 아들을 보고 소년의 어머니 메이미 틸(Mamie Till)은 가슴을 치며 오열했다. 그녀 자신도 짐 크로우 시대(Jim Crow, 인종차별법 이른바 '짐 크로우 법'이 시행되던 시기) 남부의 인종테러를 피해 북부로 이주한 수백만 명의 흑인 중 하나였다. 소위 딥 사우스(Deep South, 미국 최남동부 지역)의 인종차별이 얼마나 무서운 지, 그곳에서는 흑인이라는 사실만으로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았다.

하지만 시카고에서 태어나 자란 아들은 그것을 충분히 알 수 없었다. 걱정이 된 어머니는 아들이 미시시피로 떠나기 전에 신신당부를 했다고 한다. 미시시피에서는 특히 백인 앞에서 행동을 조심해야 한다고. 백인이 지나갈 때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여야 한다면 그냥 그렇게 하라고까지 말했다. 낯선 곳에 가는 아들이 걱정되기는 했지만, 설마 그런 처참한 모습으로 아들이 죽어 돌아올 것을 그녀는 꿈에도 몰랐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의 죽음은 어머니에게 하늘이 무너지는 고통이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 슬픔을 개인의 불행으로만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들의 죽음을 앞에 두고 그녀는 어머니로서 정말 힘든 결정을 내렸다. 장례 기간에 관 뚜껑을 열어 아들의 끔찍한 모습을 있는 그대로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했다. 백인우월주의자들이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폭로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인종주의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저들이 아들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온 세상이 다 똑똑히 보아야 한다면서 말이다.

수십만 명이 에멧 틸의 처참한 모습을 직접 눈으로 확인했다. 장례식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들도 잡지와 신문에 실린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인종주의의 민낯이 얼마나 흉악한지 에멧 틸의 처참하게 짓이겨진 모습을 통해 사람들이 직접 보게 되면서 커다란 반향이 일어났다.

세상의 어떤 어머니가 자식의 마지막 모습이 사람들에게 그렇게 기억되기를 바라겠는가. 하지만 에멧 틸의 어머니는 인종주의의 폭력성을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아들의 모습을 공개했다. 그리고 미국 전역을 돌며 아들의 죽음을 증언하는 민권운동가로 변신했다. 인종주의 철폐를 위해 그녀는 남은 생을 헌신했다.

저항 운동의 불씨가 된 죽음

1877년에서 1950년 사이 미국에서 백인우월주의자 손에 린치를 당해 죽은 흑인의 수는 4천 4백 명이 넘는다고 한다. 흑인에 대한 린치는 그야말로 일상적으로 벌어졌다. 에멧 틸의 죽음은 그 수많은 죽음 중 하나로 잊혀질 수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의 결단과 저항으로 에멧 틸은 역사의 아이콘으로 되살아났다.

어머니의 고통스러운 선택은 헛되지 않았다. 비록 전원 백인으로 이루어진 배심원단이 기소된 백인 남성들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어머니의 용기 있는 선택은 그 어떤 법정 판결보다 강력한 역사의 부메랑이 되어 돌아와 결국 미국 흑인 민권운동의 커다란 불씨가 된다.

에멧 틸이 살해당하고 석 달이 지난 1955년 12월 1일, 앨라배마 주 몽고메리에서 로자 팍스(Rosa Parks)라는 흑인 여성이 버스 안에서 백인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뒤로 가라는 버스 기사의 지시를 거부해 체포된다. 짐 크로우 인종분리정책에 반대해 1년 이상 강력하게 지속된 몽고메리 버스 승차 거부 운동으로 발전하게 된 이 사건은 흑인 민권운동의 분수령이 되고, 이 운동 이후 미국 역사는 다시 쓰이게 되었다. 노골적인 인종차별인 짐 크로우 법은 결국 폐지되었다.

로자 팍스는 그날 백인에게 자리를 양보하라는 말을 듣는 순간 에멧 틸 생각이 났다고 한다. 에멧 틸이 떠오르자 순순히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었다고 말한다. 에멧 틸의 죽음에 영향을 받은 것은 로자 팍스 뿐이 아니었다. 소위 ‘에멧 틸 세대’라 불리는 수많은 흑인 민권운동가들이 인종주의에 반대하는 싸움에 동참했다.

나는 김용균의 어머니에게서 에멧 틸의 어머니를 본다. 세상 어느 어머니가 아들의 시신을 두 달 이상 냉동고에 넣어 두고 싶겠는가. 하지만 그녀는 아들의 죽음을 단순히 개인 비극으로만 받아들이길 거부했다. 이 세상에 더이상 아들 용균이 같은 죽음이 없도록, 끊임없이 아들과 같은 죽음을 만들어내는 시스템에 맞서 싸우자고 호소하고 있다. 그래서 아들을 땅에 묻은 어머니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제부터 진짜 시작이다.

지금 이 시각 누구보다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김용균 씨 유가족들에게 위로의 말을 전하고 싶다. 하지만 안다. 자식 잃은 부모 앞에 백 마디 말이 무슨 위로가 되겠는가. 하여 위로의 말보다 더 중요한 것을 말해야 한다. 그것은 그의 죽음을 헛되지 않게 만들겠다는 우리 모두의 다짐이다.

에멧 틸의 죽음을 떠올리며 더 이상 뒤로 물러설 수 없다고 싸웠던 로자 팍스와 그 싸움에 동참한 수많은 사람들처럼, 김용균 씨를 죽인 세상을 바꾸는 싸움에 그의 억울한 죽음을 나의 일로 받아 싸우는 수천, 수만의 한국판 로자 팍스가 나와야 한다. 그것만이 다시는 내 아들 용균이처럼 억울하게 죽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없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어머니의 오열에 답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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